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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로 잡혀온 조선 사람들은 심양외부에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네. 몸값을 내고 고향으로 돌아갈 자들은 거의 다 돌아갔기에 남아있는 자들은 몸값을 낼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이 대부분이라네. 때로 청의 관리들이 종으로 쓸 조선 사람을 팔기 위해 데리고 가기도 하는데, 대부분 양인이거늘 누군들 종살이를 하고 싶겠나? 날마다 그 비참함이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라네.”

“이런 썩을 오랑캐놈들!”

짱대가 분을 이기지 못해 탁자를 쾅 치며 소리치자 정뇌경이 조용히 타일렀다.

“경거망동 하지 말게! 여기 있는 자들이 조선말은 못 알아들어도 자기들 욕하는 말인 건 눈치로 알고 있네! 더구나 도망친 조선 사람을 잡으면 포상까지 있는데 둘의 복색이 이곳과 다르니 그렇게 오해라도 받으면 어찌할 텐가?”

장판수가 주위를 보니 기분 나쁜 눈길들이 여기저기에서 짱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뇌경과 강효원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자저하께서도 이곳에 포로로 잡혀 온 백성들의 참상을 잘 알고 있네. 허나 제 몸 하나 건사 못할 적지인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그 울분이 하늘에 닿아 있는 건 자네들 못지 않네! 부디 무리 말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지 세자부로 찾아오게나.”

장판수는 정뇌경이 간 후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한참동안 우두커니 앉아만 있자 짱대가 그런 장판수를 흔들며 다그쳤다.

“형님! 혹시 세자저하를 모시는 게 더 나을 뻔했다고 생각하는 겝니까?”
“기런거 아니라우.”
“그런데 왜 이리 넋을 놓고 있습니까?”
“행여 내가 하는 일이 저러한 자들의 공치사만 높여주는 게 아닌 게 해서 말이야.”
“허! 그건 형님답지 않은 말입네다!”

평소답지 않게 좀 주제넘다 싶을 정도로 말하는 짱대에게 장판수의 눈이 치켜 올라갔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형님이 언제 어디 누가 공을 세우니 못 세우니 하는 일에 얽매였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우.”
“그럼 뭡니까!”

장판수가 뭐라고 대답하려는 찰나 평구로가 다가와 조용히 장판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빨리 여길 떠야 된다.”

장판수가 주위를 살펴보자 몇몇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어떤 이는 밖을 바라보기도 하는 모습이 무엇인가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장판수는 서둘러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봐! 이봐! 어딜 가!”

삿갓 투구에 칼을 찬 청의 순라병들이 어느 사이인가 음식점의 입구에 버텨 서 있었다. 짱대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고 장판수도 순간적으로 온 몸이 우뚝 얼어붙었다. 그 때 평구로가 나서 유창한 청나라 말로 대답했다.

“내가 이 조선 사람들을 사가지고 가는 길인데 무슨 볼일인가?”

장판수와 짱대는 청나라 말을 못 알아들어 평구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의아해 했고 순라병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쑥덕이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문서를 보자!”

평구로는 웃으며 장판수를 슬쩍 돌아보고선 중얼거렸다.

“뒤쪽에도 문이 있다.”

장판수와 짱대가 순간 몸을 돌려 뛰어나갔고 평구로의 발길질이 손을 내민 순라병의 안면에 꽂혔다. 그 바람에 순라병은 뒤로 벌렁 자빠져 다른 병사들과 포개져 뒹굴며 소리쳤다.

“어이쿠! 저, 저 놈들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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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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