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9일 오후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A은행 PB팀에 전화가 걸려왔다.
"돈 3억 원 빌리려고 하는데 대출 금리가 얼마나 되나? 30평 대 아파트를 팔고, 50평 대 주상복합을 사려니 돈이 필요한데."
3억 원 대출을 원한 고객은 대치동에 위치한 30평대 아파트를 7억6000만 원에 팔고, 인근에 나온 50평대 주상복합아파트 급매물을 10억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을 주고 구입했다. 강남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주상복합아파트로 갈아타기를 시도한 셈이다.
바닥 치고 올라온 강남 대치동
A은행에서 대출 상담을 받은 고객처럼 요즘 강남은 조용하지만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1월 29일 건교부가 발표한 9월~11월 주간 주택거래신고 동향을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8·31 대책 이전 집값이 폭등한 강남, 송파, 서초 지역의 주택거래 건수가 9월과 10월에 비해 11월 들어 3~4배 이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대치동 B공인중개업소 백아무개씨는 "이 지역 아파트 가격이 8·31 부동산대책 이전 수준으로 다 회복했다"면서 "가격이 더 오를 거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백씨는 그 근거로 대치동 은마아파트 가격이 8·31 부동산대책 이전 수준인 31평 8억원대, 34평 9억 원대로 가격이 올라선 예를 꼽았다.
"강남 지역 아파트 가격을 리드하는 곳이 대치동 은마아파트로 봐도 무방하다. 4400세대가 움직인다고 생각해봐라. 정부에서 재건축 기준을 완화한다는 이야기가 조금만 나와도 들썩이는 게 이 곳이다. 8·31 대책이 나오고 가격이 좀 떨어지나 싶더니, 연말이 다 됐음에도 입법화에 진전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저렇게 갈피를 못 잡으면 가격이 더 오를 거다."
그는 "중개업을 하는 입장에서 맞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집값이 더 이상 올라서는 안 된다"면서 "정치권이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8·31 대책을 꼭 원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채도사도 알 수 없는 게 부동산 가격"
강남 재건축 시장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인 송파구 잠실시영아파트와 잠실 주공 단지들. 이 지역 역시 8·31 부동산대책 이전 수준으로 집값이 회복됐다는 게 주변 부동산중개업소의 공통된 분석이다.
2008년 10월 입주 예정인 송파구 신천동 잠실시영아파트(6864세대) 32~33평의 시세는 7억2000만 원 선으로 최고점까지 올라갔던 올해 4~5월 가격을 회복했다. 신천동 C공인 중개소 김아무개 중개사는 가격 상승 요인을 세가지로 꼽았다.
"송파구의 경우 112층 규모의 제2 롯데월드 건축이라는 호재와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8·31 대책이 연말인데도 국회에 들어가서 미적거리고 있는 데 원인이 있다. 8·31 대책이 어떻게 통과되느냐가 관건이겠지만, 대체적으로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롯데월드 건너편에 위치한 잠실주공 5단지 역시 가격이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 34평, 35평, 36평 4000여 세대로 구성된 이 곳은 8·31 부동산대책 통과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34평~36평의 경우 시세는 9억5000만 원-10억5000만 원에 형성돼 있지만 국세청 기준시가는 4억5000만 원~5억5000만 원 사이다. 기준시가의 시세반영률이 50%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나 실거래가가 기준시가에 반영되고, 8·31 부동산대책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대상이 주택 6억 원으로 확정되면 세금고지서에 찍히는 액수가 크게 달라진다.
지난 2000년부터 잠실 5단지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한다는 D공인중개소의 정아무개씨는 "주공 5단지는 정부 정책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이라면서 "8·31 대책 이후 8억 원 초반에 나온 물건이 몇 개 팔리고 나서는 금방 5000만 원~1억 원이 올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씨는 "부채도사도 알 수 없는 게 대한민국의 부동산 가격"이라면서 "2000년에 처음 중개소를 열었을 때 잠실 5단지 가격이 3억 원이었는데 지금 10억 원이 넘는 것을 보면서 요지경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철만 되면 개발공약이 쏟아지고, 정책 일관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과연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부동산 버블이 꺼져야 사람들이 바뀌지 않겠느냐"고 회의적이 반응을 나타냈다.
정치권의 선택, 예의주시하는 강남
종부세 9억 원 현행 유지를 주장했던 한나라당은 30일 "강남 부자들만 대변한다"는 여론을 의식한 듯 열린우리당에 감세안과 종부세 빅딜을 제안했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부동산대책 후속입법은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연내 입법이 다급한 상황에서 어떤 묘안을 내놓을지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8·31 대책이 시장에서 약발을 받기 위해서는 후속입법의 국회통과가 올해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국회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부동산 불패 신화를 이어온 강남은 숨 죽여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