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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청의 김치제조 매뉴얼 창
식약청의 김치제조 매뉴얼 창 ⓒ 식약청
요즘 식약청 홈페이지(www.kfda.go.kr)에 가보면 "알기쉬운 김치제조 매뉴얼 - 보다 안전한 김치를 위하여"라는 창이 뜬다.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이것은 일반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안내문에 적힌 것처럼 "중소규모 김치 제조업체가 안전하고 위생적인 김치를 제조, 가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식약청이 금자씨 못지않게 참 친절해졌다.

이렇게 친절한 내용을 보고 나서 화를 낸다면 뭔가 잘못된 사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화를 넘어서 분노를 느낀 나는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그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지난 일을 다시 들춰야 하겠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이니까 여러분도 기억을 더듬어주기 바란다.

고경화 의원의 밀어붙이기에 식약청 자충수로 응수하다

9월 25일 -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보건복지위 소속), 국감에서 중국산 김치에서 납 성분이 검출됐다고 지적.
9월 26일 - 청와대, 고 의원의 지적을 "타당한 정책 지적"으로 선정.
9월 28일 - 식약청, 그 정도 수치는 유해하지 않다, 안전하다고 답함.
10월 10일 - 식약청, 중국산 김치에서 납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발표. 고 의원, 질병관리본부 국감에서 수입농산물과 김치로 인한 기생충 감염 증가가 우려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
10월 21일 - 식약청,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알이 발견됐다고 발표.
10월 31일 - 중국 질검총국, 한국산 김치와 고추장, 불고기양념장 등 10개 품목에서 기생충 알이 검출됐다고 발표.
11월 3일 - 식약청, 국산 김치에서도 기생충알이 발견되었다고 발표.


중국산 수입 김치에서 납 성분이 발견되었다는 발표를 식약청이 일축하자, 고경화 의원은 이번에는 기생충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납 성분 때처럼 실험결과를 제시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수입식품의 증가와 기생충 감염율 상승이 상관관계가 있지 않은가 하는 개연성 제기였다. 그런데 여기에 식약청이 과민반응을 보인 것이다.

중국산 김치에서 납 성분에 이어 기생충알까지 발견됐다는 한국발 보도를 접한 중국은, 한국산 식품에서도 기생충알이 검출됐다는 발표를 한다. '선전포고는 한국이 먼저 했으니 우리도 맞대응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국감에 중국의 무역압력까지 가해지자, 식약청은 국산 김치에 대해서도 기생충 검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묘한 시기에 묘한 대처방식을 본 국민들은 "애매한 국내 김치 회사 몇 잡겠군" 하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11월 3일, 결과는 역시 예상대로였다.

식양청은 건망증?

얘기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자. 식약청은 8월, 중국산 장어가공품과 붕어에서 말라카이트그린이라는 유해물질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나서 중국의 반발이 예상되자 국내산 양식 물고기를 조사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잘 아는 대로.

불과 두 달도 안되는 사이에 똑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다. 그 순서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중국산에 유해물질이 들었다"는 발표를 한다 - 국민들은 충격 받고, 중국은 발끈하기 시작한다.
2. 아차 싶어서 같은 품목의 국내산 물품을 조사한다 - 역시 마찬가지.


결국 중국의 감정만 건드리면서, 손해는 손해대로, 망신은 망신대로 당하는 꼴이 된 것이다. 순서를 바꾸거나, 양쪽을 같은 기준으로 검사해서 공정하게 발표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장윤정이 '어머나'에 이어 '짠짜라'를 히트시킨 것보다 더 짧은 기간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열린우리당 원혜영 정책위의장도 "더 이상 인내심을 갖고 대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을까.

연이은 자충수 -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검사와 발표

일의 잘잘못 여부는 그렇다 치고, 기생충알 검사 자체만 놓고 얘기해 보자. 이번 식약청 검사에서 가장 큰 문제라면, 김치의 종주국이라면서 가이드라인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생충알은 김치의 검사 품목에 들어있지도 않다. 결국 식약청은 근거도 없는 검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해당 업체에 피해를 주었으니 불법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여기에는 업체에 대한 명예훼손, 영업방해 및 손실, 판매물품에 대한 불법수거 등이 해당될 수 있다.(현재 10개 업체가 법적 대응을 준비중이다)

그렇다면, 검사품목에 없다고 해서 김치에 기생충알이 들어가도 좋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답은 이번 식약청 검사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채소의 경우, 농림부는 1995년부터 전국 도매시장에서 기생충 검사를 중단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 국민의 기생충 감염률이 5%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기생충 감염율이 이렇게 떨어진 것은, 밭작물 재배에 인분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고 식생활에서 채소류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졌다는 직접적인 원인과 함께, 생활 환경이 향상되고 위생 개념이 달라졌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한마디로 해서, 이제는 사는 게 옛날하고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기생충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에서였지, 결코 채소류에 기생충알이 없기 때문에 중단한 것은 아니었다.

삼사십 년 전 같으면 채소 재배에 인분을 사용했지만, 요즘은 인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화학비료만 사용했다가는 배추 속이 실하게 들지 않기 때문에 축산 분뇨의 사용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기생충알이 땅속에서도 수년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경재배를 하지 않는 이상 이번에 발견된 정도의 기생충알이 잔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하 전문가의 의견이라고 쓴 부분은 EBS TV <시선> 11월 11일 '기생충이 알고 싶다!'편을 참조했다.)

그렇다면 논란의 초점은 기생충알의 잔존 여부가 아니라 유해성 여부가 될 것인데, 이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유해하지 않다"라는 답을 내리고 있다.

식약청은 이번에 검출된 기생충알을 '미성숙란'이라 했지만 이것은 틀린 말이다. 기생충은 미발육충란-미성숙란-성숙란을 거쳐 애벌레(이때부터 기생충이라 볼 수 있다)가 되는데, 이번에 발견된 것은 세포분열조차 되지 않은 미발육충란으로서 '기생충알'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이렇다. 식약청이 '회충알'이라고 발표한 것은 돼지회충과 인간회충의 미발육충란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인데, 축산 분뇨를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돼지회충일 가능성이 100%다. 돼지회충알은 섭취후 그대로 배설되기 때문에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발표였다.

'고양이와 개의 회충알'이라는 것도 미발육충란일 때 양자가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의 회충알은 극소수에서 신경계 마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나 미발육충란은 해당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번 식약청의 조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애당초 토양재배한 것을 날로 먹는 생채식품에 현미경을 들이대서 기생충알을 발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결국 식약청은 계획도 없이 중국산 김치를 잡으려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기생충 검사를 국산 김치에게 들이댔다. 그 결과 11월 3일 "502개 국내 회사의 김치를 조사한 결과 16개 기업의 김치에서 기생충알이 발견됐는데 미성숙란이라 괜찮다"는 발표를 한다.

기생충알이 발견됐다는 것은 뭐고 괜찮다는 것은 뭘까? 괜찮다면서 왜 16개 업체의 명단은 발표했을까? (그 중 8곳이 5인 이하의 영세한 업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국민들은 이 아리송한 발표를 접하고서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살생부에 올라있는 김치 제조업체들은 그날로 생산을 중단해야 했고, 남아있던 김치는 식약청이 수거해 갔다. 하지만, 자신의 입으로 "괜찮다"고 한 김치를 어떤 근거로 수거해 갔는지 식약청은 밝히지 않았다. 수년간 거래하면서 쌓았던 신용도 날아가 버렸다. 남은 것은 텅 빈 작업장 뿐.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기자에게 당하고(라면 우지 파동) 검찰에 당하고(포르말린 골뱅이 파동) 경찰에 속아온(만두 파동) 국민들이, 어찌된 일인지 이번 식약청의 발표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식약청의 국민게시판에는, 식약청의 잘못을 업체 죽이기로 막으려 한다는 비난과 함께 이번 일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언론의 보도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과거처럼 터뜨리기와 부풀리기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피해업체의 목소리를 전하려고 애쓴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언론이 변했다기보다는 식약청의 무능한 처신이 불러온 결과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사태 추이를 애써 모른 채 하고 있는 곳이 한 군데 있으니, 바로 당사자, 식약청이다.

친절한 식약청의 매뉴얼이 이상하게 보이는 까닭은?

지난주까지 식약청 홈페이지에 떴던 "채소류의 세척방법에 대해 알아봅시다" 창
지난주까지 식약청 홈페이지에 떴던 "채소류의 세척방법에 대해 알아봅시다" 창 ⓒ 식약청
지난 주까지 식약청 홈페이지에는 오른쪽과 같은 창이 떴다. "채소류의 세척방법에 대해 알아봅시다!"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럴 때 그런 창이 뜰까? 이것이 "배추를 잘 씻지 않았기 때문에 김치에서 기생충알이 발견됐습니다"를 돌려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번 주부터 올라온 "김치제조 매뉴얼" 창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중소업체의 시설로는 감당 못할 사항들이 들어있는 그 매뉴얼을, 과연 중소 김치 제조업체를 위한 친절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것 역시 "안전한 김치를 만들지 못한 책임은 중소업체에 있습니다"를 돌려 말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기자 혼자만의 억지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잘못을 지적하면 딴청을 피우다 일을 그르치는 식약청의 행태로 보면, 그곳은 원래 다음과 같은 사과문이 올라와야 마땅할 자리였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우리가 혼이 담긴 음식이자 세계에 자랑하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김치에 대해 아무런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고, 잘못된 발표로 인해서 국민 여러분께는 불안을, 제조업체에는 손실을 입혔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청장 이하 관련 업무의 간부들은 사퇴하고 새로운 조직으로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은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일부 사항이 사실과 달라 바로잡습니다. 기사 작성에 있어서 치밀하지 못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기사본문] 중국산 수입 김치에서 납 성분이 발견되었다는 발표를 식약청이 일축하자, 고경화 의원은 이번에는 기생충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납 성분 때처럼 실험결과를 제시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수입식품의 증가와 기생충 감염율 상승이 상관관계가 있지 않은가 하는 개연성 제기였다. 여기에 식약청이 동의한 것이다.

[바로잡음] 질병관리본부 국감(10월 10일)에서 고경화 의원이 제기한 개연성 제기에 대해, 질병관리본부는 "김치와 같은 식품문제는 식약청 소관이기 때문에 식약청과 협의해서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식약청이 동의한 바는 없습니다.

[기사본문] 채소의 경우, 농림부는 1995년부터 전국 도매시장에서 기생충 검사를 중단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 국민의 기생충 감염률이 0.05%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바로잡음] 기생충검사를 중단한 것은, 1992년에 실시한 5차 장내기생충실태조사에서 감염율이 3.8% 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1986년에 실시한 4차 조사에서는 감염율이 12.9%였습니다) 5차 조사에서 기생충 감염율이 10% 미만으로 나오자, 전국 초중고교에서 실시하던 채변검사도 폐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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