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자 가지에 얹혀 있던 눈들이 바람을 타고 하얗게 비상했다. 그러자 바로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빛이 하얀 눈가루의 비상을 타고 가지사이로 깊숙히 줄기를 뻗었다. 그렇게 나무줄기는 하늘로 뻗고 빛의 줄기는 나무들 사이로 뻗는다.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영락 없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눈이 내릴 때마다 숲은 완벽하게 축제를 준비하는 셈이다. 그러니 눈이 내릴 때는 그저 축제의 흥겨운 마음으로 그곳을 거닐기만 하면 된다. 숲이 이미 나머지 준비는 모두 갖추어 놓고 있으니까.
원래 이 길은 황토빛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낙엽이 깔렸을 때는 바스락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산을 오르는 우리의 걸음과 함께 한다. 그러던 길이 오늘은 순백의 길로 하얗게 바뀌었다. 뽀드득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내내 우리를 따라온다.
지금 바람은 눈가루를 데리고 잠시 숲을 비행 중이다. 바람이 저 혼자 다닐 때는 숲이 투명하지만 눈가루와 동행하면 숲엔 엷은 반투명의 흰색 채색이 얹혀진다.
한 아버지가 아이를 목마를 태우고 산을 내려온다. 아마도 아버지는 산의 꼭대기에 올라 아이에게 세상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넓은 가슴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훗날 아이는 깨닫게 될 것이다. 산을 오를 때마다 세상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그때마다 가슴이 뿌듯해지는 그 신비로운 느낌의 실체가 사실은 어릴 적 자신을 업고 산의 정상에 올랐던 아버지의 높고 지순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나는 구룡사에서 세렴폭포, 사다리 병창을 지나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내려올 때는 입석대 쪽으로 내려왔다. 지금까지 올라간 산들은 중간중간 경관이 트이는데 치악산은 그런 곳이 별로 없었다. 때문에 나무들 사이로 경관을 엿보아야 했다. 눈들이 산의 여기저기서 하얗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줄지어 산을 내려온다. 산은 호젓하게 홀로 오르는 것도 맛이지만 이렇게 줄서서 함께 가는 맛도 남다르다.
눈이 내리면 산의 굴곡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고 보면 윤곽만 선명하게 드러내는 수묵화는 사실은 세상의 눈내린 풍경이다.
치악산 정상에 있는 돌탑. 모두 3개의 돌탑이 있다. 돌탑의 바로 옆에 있는 비석은 이곳이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임을 알리는 표지이다. 누군가 개인이 전국의 돌을 주워 모아 10년 세월에 걸쳐 이 돌탑을 쌓았다고 들었다. 항상 굴러 떨어지는 돌을 끊임없이 정상으로 밀고 올라가야 했던 시지프스가 생각났다.
높은 곳에 주거지를 갖는 사람은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오르내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평지에 살면 일상은 편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상에 묻힐 때 높이를 잃는다. 산에 오를 때마다 우리는 그렇게 잃었던 높이를 얻는다. 평지의 일상과 달리 높이 오르면 멀리, 넓게 볼 수 있다.
물론 멀리 넓게 본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가까이 세밀하게 보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삶에서는 균형이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산에 오르면 평지의 일상에 살면서 항상 가까운 곳에 몰렸던 우리의 시선이 잠시 넓고 먼 시각을 얻게 되고 그러면서 균형을 찾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산에 올라 멀리 넓게 보며 잠시나마 가까운 곳에 막히거나 항상 올려보기만 했던 시선을 구름까지 내려보냈다.
지상을 살면서 답답하고 힘들 때는 한 번 산에 갈 일이다. 산의 정상이 주는 그 아득한 높이와 그 높이가 주는 풍경을 생각하면 우리는 사실 평지에서 서서 살고 있다기 보다 엎드려 살고 있는 셈이다. 엎드려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끔 일상이 힘들고 답답하다. 산에 오르면 서서 살 때의 균형 잡힌 자세가 우리에게 주는 자유로운 느낌을 얻어올 수 있다. 그러니 답답하고 힘들 때는 조금 높은 산을 택하여 한 번 산에 올라 보시라.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