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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당장 소인을 잡아 청의 관원에게 넘기는 것입네다. 애당초 조선 포로들을 작정하고 데리고 가려한 놈을 잡아 보낸다면 일은 수월하게 풀릴 것이옵네다.”
소현세자는 빙긋이 웃었다.
“너무 속이 보이는 말을 하는 구나. 내 말인 즉 두 번째 방도를 들어주지 않으려거든 차라리 죽이라는 말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장판수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신을 죽여주소서!”
옆에서 보고 있던 정뇌경이 장판수를 거들어 주었다.
“이 자가 무엄한 말을 했으나 딱히 무작정 이리로 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번 말을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옵니다.”
“나 또한 그럴 생각입니다. 어디 두 번째 방도를 말해 보아라.”
“예 저하...... 심양외곽에 있는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곳을 보니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을 묵히고 있었습네다. 어차피 저들을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낼 방도가 없다면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살며 곡물을 팔아 몸값을 갚을 수 있도록 해 주시면 될 것이라 여겨지옵네다.”
소현세자 옆에 있는 강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의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장사치들과 거래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약간의 변통을 하면 될 성 싶습니다.”
“그 일은 지금부터 할 수는 있으나 길게 보아야 한다. 당장의 일이 문제로다. 청에서 이번 일의 책임을 물을 것인데 너는 빠져나갈 방도가 있는게냐?”
“없습네다. 애초 두 가지 방도를 말한 것은 둘 중하나를 택하라는 말은 아니었습네다. 작금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 지은 후 이곳에 힘들게 버려진 백성들을 그렇게 구제해 주옵소서.”
장판수의 말은 진심이었다. 옆에서 꿇어 앉아 있는 육태경은 장판수의 말에 깊이 감명되어 눈물까지 보이고 있었다.
“저 자를 그렇게 보내면 아니되옵니다. 어차피 청의 관원과 병사들은 무사히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용골대를 잘 설득하면 이번일은 눈 감아 줄 것입니다.”
강빈이 설득하자 소현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소. 내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은 받아들일 것이나, 스스로 죽을 길로 간다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소이다.”
“망극하옵네다. 허나 저하께 누가 되고 싶지 않습네다.”
“이러면 어떤가? 지금 심양에 온 장사치들이 세자부에 머물러 있는데 그들 중 몇몇이 조선으로 갈 것이네. 그들과 같이 길을 떠나게. 뒷일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처리할 것이니 너무 염려치 말게나,”
“망극하옵네다.”
장판수는 소현세자에게 거듭 감사함을 표하고 정뇌경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세자저하께서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신 뜻을 짐작이나 하겠는가?”
정뇌경의 말에 장판수는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그저 절 좋게 받아들이신 것이 아닙네까?”
“그도 그렇지만 여기 있는 장사치들이 보통사람들이 아니라네. 이쪽으로 오게나.”
정뇌경은 여러 물건이 쌓여 있는 곳에 장판수와 육태경을 기다리게 한 후 사라졌다. 한참동안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육태경은 금세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이거 청나라 놈들이 눈치를 채고 잡으러 오는 것은 아니오?”
“거 무슨 입방정을 떠는 겁네까!”
장판수가 초조함을 못 이겨 버럭 화를 냄과 동시에 뒤쪽에서 껄껄 웃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 장초관 성질은 아직 여전하시구만!”
장판수가 놀라 돌아보니 정뇌경과 함께 낯익은 이가 눈앞에 서 있었다. 그는 바로 명나라로 갔다는 최효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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