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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폰바이제커 전 독일연방대통령, 강원룡 목사,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이부영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왼쪽부터 폰바이제커 전 독일연방대통령, 강원룡 목사,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이부영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 이부영
폰 바이제커 전 독일연방 대통령.

이 분은 현직 정치인도 아니면서 한국민들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존경받는 인물이다. 어떤 다른 이유보다도 이 분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적극 지지했고 김대중 전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양심수 문제를 80년대초 국제사회에 부각시켜 한국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공인받도록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또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85~94) 독일 연방 대통령으로서 동서독 통일과 소련방 해체 그리고 동구권 붕괴를 직접 지켜보고 관리한 정치인으로서 우리에게 많은 경험을 나누어줄 수 있고 실제 그렇게 하고 있는 분이기도 하다.

12월7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약 4시간에 걸쳐 신라호텔에서 점심식사를 겸해서 이루어진 폰 바이제커 전대통령 내외분과의 대화시간은 강원룡 목사께서 주선하신 모임이었다.

이 자리에는 강 목사님이 이사장으로 계신 평화포럼의 성원들이 주로 참석했다. 강원룡 목사님, 이홍구 전총리, 이인호 전대사, 박경서 인권대사, 박종화 경동교회목사, 이삼열 유네스코 한국위사무총장, 박은정 서울법대교수, 이기호 평화포럼 사무총장, 그리고 본인이 참석했다.

이날의 대화모임은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으로 이어졌다.

먼저 강목사님과 바이제커 전대통과의 오랜 인연에 관한 얘기로 시작되었다. 1966년에 처음 우리와 인연을 맺은 바이제커 박사는 이번까지 12번째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당초 WCC(세계교회협의회)에서 일하면서 강 목사님과 인연을 맺은 박사께서는 60년대에 한국에 도입된 대화문화운동인 크리스찬 아카데미운동에 관해 함께 회고하면서 당시 도시화, 공업화하는 과정에서 소외되고 내몰리던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그들과 대화하는 운동을 벌이던 크리스찬 아카데미운동이 공산당으로 몰렸던 일들이 오늘날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가 건강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만든 밑거름의 주요한 일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1968년 보수정당인 기민당 소속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한 바이제커 박사는 진보정당인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추진한 동방정책(Ost Politik)을 적극 지지했다.

동독을 지원하고 동독체제를 강화시키는 정책이라고 색깔공세를 펼치는 기민당 지도부에 정면으로 맞섰던 바이제커 박사는 당지도부의 경고를 받았지만 그에 개의치않고 연방의회 본회의 발언을 신청, 동방정책에 대한 자신의 지지입장을 다시 한번 천명하고 기민당의 정책재고를 촉구했다.

기민당 우파의 지도자였던 헬무트 콜과는 불편한 관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80년대 중반 서독의 정권을 사민당으로부터 이어받은 기민당은 수상 헬무트 콜, 대통령 폰 바이제커 체제로 냉전체제의 해체와 독일통일의 대업을 이루게 된다.

동방정책으로 통독과 냉전해체의 길을 닦아놓은 진보적인 사민당으로부터 정권을 인수한 보수적인 기민당이 초당적으로 동방정책을 이어받아 역사적 대업을 이루어냈던 것이다.

그 과정에 사민당에는 빌리브란트, 헬르베르트 뵈너, 에곤 바아 등이, 기민당에는 폰 바이제커 등의 위대한 인물들이 초당적인 협력과 조율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으로 이어진 이날 간담회에서의 바이제커 박사의 말씀의 요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한국은 이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세계에서 괄목하는 나라가 되었다. 성숙한 자세가 요구된다. 미국에는 항상 국제주의와 고립주의 두 가지 흐름이 나타난다. 대외개입이 여의치 않고 국내의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 가게 되면 고립주의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1975년 서독이 동방정책을 한창 추진하고 있을 때, 미국은 동서진영 간의 데땅트(Detent 화해)정책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서독은 그해 헬싱키 유럽안보회의가 미국의 국익에 절대적으로 보탬이 될 것이라고 설득해 냈다. 미소 간의 화해무드가 조성되어야 서독의 동방정책이 계속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헬싱키체제는 유럽 데땅트의 바탕이 되었으며 뒤의 경과는 독일의 판단대로 진행되었다.

현재 진행되는 북핵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은 단순히 북핵만을 다루는 기구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고 그래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6일 낮 청와대에서 방한중인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과 오찬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6일 낮 청와대에서 방한중인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과 오찬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6자 회담은 궁극적으로 어떤 기구로 발전해야 할까. 결국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기회를 만드는 지역협력체로 발전할 가능성은 어떤가.

한반도에서 평화공존을 통한 평화통일이 성취되려면 6자회담과 같은 지역협력기구가 작동되어야 할 것이고, 미국의 참여는 필수불가결한 요인일 것이다. 마치 서독이 동방정책을 통한 동서냉전의 해소가 동서독 접근에(통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미국의 참여와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은 지금의 한국에게도 그대로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은 미국과 긴밀한 우호관계를 지속해야 하며 이와 같은 관계 속에 여러가지 이견을 조정해야 하고 당연히 조정될 수 있다.

요즘 북한의 인권침해문제가 심각한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서독의 동방정책 추진과정에도 동독의 인권침해 사례들이 심각한 논쟁거리로 등장했다. 동베르린 장벽을 넘는 동독인들을 사살하는 만행이라든가, 동독 안에서 정치범들을 탄압하고 수용소에 감금하는 일이라든가, 수많은 사례들이 문제가 되었다.

서독의 언론과 의회에서 그리고 다른 서방국가들에서도 큰 논란을 불렀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동독의 인권탄압 사례들을 단 한 건도 국제인권기구나 유엔 등으로 가져간 일이 없었다. 오히려 서독정부는 동독정부와의 회담에서 비공개적으로 거론하거나 정치범들을 대가를 지불하고 서독측으로 석방토록 협상했다. 다수의 정치범들이 석방되어 서독으로 이주했다.

물론 당시 동서독 관계와 현재의 남북한 관계는 크게 다르다. 동독주민들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서방의 사정을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었으며 종교의 자유도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었다.

동방정책을 추진하던 서독과 마찬가지로 대북화해교류정책을 추진하는 한국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대단히 신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밖에도 바이제커 박사는 유럽과 이슬람세계와의 관계, 북아프리카 이슬람인들의 유럽이주로 빚어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 대연정 하에서 진행될 독일사회 안의 경제개혁문제, 유럽연합의 장래 등 폭넓은 주제들에 관해서 참석자들과 논의했다.

본인은 이 자리에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 진영이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비쳐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70, 80년대 군부독재에 반대하고 그들을 후원하는 것으로 비쳐지던 미국을 비판하던 민주화 운동진영이 지금도 모두 반미적이고 미군철수를 주장하고 있다는 편향된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일부 급진적 인사들이 그같은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화운동 진영 전반의 입장인 것으로 확대해석하는 경향은 우리 사회의 오랜 고질인 색깔론에 다름 아니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 진척에 따라 언론자유를 구가하게 된 극우진영이 대북화해교류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이렇게 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치 서독 사민당의 동방정책에 대해서 기민당이 벌였던 공세와 흡사하다. 오히려 전쟁을 치른 한국의 보수진영의 냉전의식은 더욱 단단하다.

85세의 고령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하고 활달하게 대화를 진행시키는 바이제커 박사에게서 진정 Politician이 아닌 Statesman의 풍모를 찾을 수 있었다.

2002년 다른 여러 나라들과 함께 폴란드가 이라크에 파병결정을 했을 때, 독일은 미국의 이라크전 개입과 다른 나라들의 파병을 반대하면서도 인접국인 폴란드의 파병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해서는 안 된다고, 바이제커 박사는 말했다고 한다.

바로 지난날 나치독일이 폴란드에 대해서 저지른 파괴와 만행을 아직도 사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폴란드의 파병에 대해서 한마디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철저한 반성과 도덕성 위에서 독일은 유럽연합을 탄생시켰고, 통일을 달성했으며, 동서냉전을 해소시켰던 것이다. 동서냉전의 주역이 미소 두 거인인 듯이 인식되고 있지만 양거대국을 시야에서 이끌고 간 진정한 주역은 독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다시 눈이 머무는 곳은 일본열도다. 일본의 대외정책과 독일의 그것을 비교해보게 된다. 그럴수록 한반도의, 특히 우리 대한민국의 신중하고 철저한 자기역할 인식이 절실하다.

독일의 동방정책은 유일무이한 타산지석이며 바이제커 박사는 우리를 위한 고마운 고문(顧問)이기도 하다. 박사의 만수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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