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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보내신 겟꾹찌는, 지금은 겨울이면 으레 먹는 음식인 줄 알지만 결혼 전에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음식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태안이나 당진, 해미, 서산 등 이런 지역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솔직히 이름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했다. '겟꾹찌'라는 이름을 통해서는 이 음식의 주재료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드는지 전혀 감이 안 온다.
태안에서는 주로 '겟꾹지'라고 발음하는데, '깨꾹지'라 하는 데도 있고, '게꾹지'라 하는 데도 있지만 정식 이름은 '겟국찌개'라고 한다.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냄새 또한 특별했다. 뚝배기에 담긴 겟꾹지가 끓을 때 올라오는 냄새는 청국장을 압도할 정도였다. 청국장이 먹는 사람은 맛있게 먹지만 냄새는 좀 독특하면서 매우 강한 것처럼 겟꾹찌도 정말 이상한 냄새가 났다. 청국장과 겟꾹찌를 동시에 끓이면 어떤 냄새가 더 진하게 날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주방 공기를 순식간에 바꿔버리는 겟꾹찌 냄새를 '바다 냄새'라고 해야 할지 '소금에 절인 배추 냄새'라고 해야 할지 정말 복잡한 냄새였다.
그러나 맛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한 번 먹으면 계속 먹고 싶어지는 그런 맛이었다. 첫 숟가락에 느껴지는 맛은 강한 짠맛이지만 먹다가 보면 시원하면서 구수하고, 계속 먹고 싶어지는 그런 감칠맛이 있었다. 땅에 묻었던 시원한 김치 한 사발이나 맛있게 잘 구워진 자반고등어 한 토막을 밥도둑이라고들 하는데, 겟꾹찌를 표현하기에 적당한 말 또한 밥도둑이다.
시댁이 있는 태안 지방은 어느 집을 막론하고 김장할 때 겟꾹찌도 꼭 함께 담갔다. 특히 우리 어머님은 겟꾹찌를 잘 담그셔서 시누이인 고모는 친정에 오면 꼭 겟꾹찌 좀 달라고 해서 한 통씩 얻어갔다. 고모도 태안에 살기 때문에 자기 집에도 겟꾹찌를 담가 놓았지만 어머님이 만든 게 특히 맛있다고 얻어가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어머님이 담근 겟꾹찌가 맛있다며 뭐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맛있느냐고 한 마디씩 한다고 하셨다.
"뭘 어떻게 하기는, 지들은 돈 아깝다고 김치나 절여서 만들지만 난 꽃게에 생새우에 조갯살에 맛있는 거 많이 넣으니까 맛있지, 맛이 뭐 별거인가. 좋은 재료 많이 넣으면 맛있어 지지."
우리 어머님은 겟꾹찌를 담글 때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무조건 아끼는 것에 길들여진 시골 사람들하고는 좀 다른 어머님의 성격도 한 몫 하는 편이다. 시골 노인네들이 아까워서 좋은 재료 팍팍 넣지를 못하는데, 먹는 거에는 절대로 돈을 아끼지 않는 어머님은 태안 장에서 새우, 꽃게 등 싱싱한 해산물을 사와 듬뿍 넣는다고 하셨다.
싱싱한 해산물 뿐 아니라 겟꾹찌에 들어가는 야채 또한 어머님이 직접 키우신 맛있는 야채를 쓰시고 마늘이나 생강 등 양념도 어머님은 듬뿍듬뿍 넣는 편이었다. 재료 때문인지 어머님 손맛인지는 모르지만 어머님은 겟꾹찌 만큼은 당신이 최고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다.
겟꾹찌는 태안 등 서산반도에서 주로 담가 먹는 찌개용 김치다. 이 지역은 농사도 짓고 갯벌에서 조개나 낙지, 꽃게 등 해산물도 동시에 얻을 수 있는데, 육지와 바다가 공존하는 이런 지역적 특성이 겟꾹찌와 같은 음식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인 듯 했다. 겟꾹찌는 밭에서 나오는 무, 배추와 바닷가의 해산물이 어우러진 음식으로 태안 등을 여행하면 겟꾹찌 백반이라고 해서 식당에서도 사 먹을 수 있는 향토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