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오늘, 나는 엄니께서 드실 곰국을 다시 끓이고 있습니다. 엄니의 연세가 곧 '여든 여덟이 되신다'는 점이 지난해와 다를 뿐입니다. 엄니께서 건강하게 다시 한 해를 버텨준 것이 제게는 얼마나 큰 다행인지요.
나는 생질이 첫 돌이 막 지났을 때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늦게야 본 이 막내를, 쉰이 가까운 이 나이까지 항상 어린애처럼 염려를 하십니다. 엄니는 고사리를 꺾고, 정구지(부추)를 팔아 제 공납금을 마련했습니다. 엄니의 그런 사랑이 있었기에, 세마지기 농사를 짓는 가난한 시골살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팔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진작 나는 <오마이뉴스>에 글을 쓴 첫돌이 되는 날, 100꼭지의 글을 쓰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내년 봄 승진시험이 있는데도, 나는 이 글을 적으려고 펜을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VJ-특공대'에서도 '곰국을 끓이는 정경'을 취재하고 싶다는 요청이 왔지만, 나는 그 의미가 퇴색할까봐 거부를 했습니다.
지난 10일(토), 우리 부부는 김해 장유에 있는 '농산물 유통센터'를 찾았습니다. 지난 달에 배추를 사기 위해 갔다가 미리 곰거리를 파는 곳을 보아두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곰거리를 할인 가격에 팔고 있습니다. 그러나 잡뼈와 사태라서 나는 꼬리를 파는 매장을 찾았습니다.
"선택 잘 하셨어요. 진한 맛을 즐기려면 사태가 좋지만, 나이 드신 분들의 원기를 돋우는 데는 역시 '우족'이나 '소꼬리'가 최고랍니다."
판매원총각은 '내 선택이 옳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나는 다른 뼈도 조금 더 사서 보태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우리 부부는 시골로 향합니다. 그러나 집에는 엄니가 계시지 않습니다. 곰국을 끓이기 위해 가마솥 뚜껑을 여는데, 가마솥 바닥에 구멍이 나 있습니다. 우리는 옆에 임시로 걸어둔 백솥(알루미늄으로 만들어서 하얀 색)을 철수세미로 빡빡 문질러 씻었습니다.
이제 미리 집에서 대여섯 시간 동안 찬물에 담가 피를 빼 둔, 곰거리를 솥에 안칩니다. 종이에 불을 붙여서는 장작불을 모았습니다. 조금 있으니, 김이 나서 솥뚜껑을 여는데 끓고 있습니다. 피가 엉긴 물은 버리고, 다시 고기와 곰 솥을 깨끗하게 씻습니다.
한 시간쯤, 부엌에서 센 불을 때고 있는데, 마산에 계신 막내형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왔습니다. 엄니는 '오늘 자고 오려고 했는데, 왠지 오고 싶더라'며 활짝 웃습니다. 형님은 방아를 찧고 엄니와 나는 부엌 앞에 앉았습니다. 아궁이에 장작을 넣는데, 오래 되어서 삭아 있습니다.
"막내야! 푸르던 나무도 베어서 두면 사그라지고, 강하다는 저 무쇠 솥도 오래되면 구멍이 난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초록 같은 청춘이 퍼뜩 지나고 나니, 어느새 흰머리만 가득 이고 있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한평생 살다가 가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지만, 나는 아프지 않고 자는 듯이 세상을 떴으면 좋겠구나."
어머니는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나는 울컥 가슴 아래쪽이 아릿해 옵니다. 솥뚜껑에는 김이 서려 있다가, 솥이 소리를 내지르자 눈물을 주룩 주룩 쏟아 냅니다.
"기촌댁 아들하면 동네사람들이 '경우가 밝다'고 치하를 해서, 나는 항상 너희 형제가 고맙다. 또 나는 너희 팔남매 낳아서 아직까지 하나도 앞세우지 않은, 복 늙은이다. 아마 내가 지금껏 큰 죄는 안 짓고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죽을 복도 타고 났지 않았겠느냐?"
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다가, 이제 휘잉 말울음소리를 내며 울부짖습니다. 그런데 찻소리가 나서보니, 작은형님도 '동창생 상가에 들렀다 온다'며 내립니다. 막내형님은 '큰형님도 모시고 올 걸' 하며, 입맛을 다십니다.
이제 장작불을 땐 지도 네 시간이 넘었습니다. 솥뚜껑을 열자 물은 이미 반으로 졸아 있습니다. 초물 곰국을 퍼내고, 곰 솥에 첫 번째보다는 적게 2/3 가량만 물을 붓습니다. 다시 장작불을 모아놓고 식구들과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습니다.
아내가 곰국을 내어 놓는데, 아직 진한 맛은 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후루룩 국물을 마십니다. 밥을 먹자마자, 나는 다시 부엌 앞에 앉았습니다. 다시 하얀 김이 나고, 솥뚜껑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말울음 소리가 나더니 무쇠 솥뚜껑이 들썩 거립니다. 더 이상 장작을 넣지 않자, 불길이 조금씩 잦아듭니다.
아들은 '고구마를 구워먹고 싶다며, 두 개를 내어 놓습니다. 나는 이글이글 불타는 잉걸불을 헤집어서, 그 속에 고구마를 넣어 둡니다. 형님들이 떠나고, 이제 우리 가족만 남았습니다. 아들이 고구마를 꺼내는데, 너무 오래 두어서 새까맣게 탔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은 '맛있다'며, 호호 불면서 잘도 까서 먹습니다.
두 번째 끊인 국물은 참으로 뽀얗게 잘 우러났습니다. 살코기도 흐물흐물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머뭇거리자 엄니는 '내일 한 번 더 끓여내고는 첫물과 둘째 물을 섞어서 다시 끓여낼 테니 염려마라'고 합니다.
엄니는 '시간이 늦었다'며, 기어이 우리를 쫓아냅니다. 할 수 없이 우리 가족도 집으로 향합니다. 나는 엄니께 '추운데 나오시지 마라'며 서둘러 방문을 닫고 나오는데, 엄니는 기어이 마당에 내려섭니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는 바로 출발합니다. 떠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니의 배웅시간도 길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당신 봤어요. 어머님 머리에 까만 머리카락이 나서 아래는 제법 까맣던데, 회춘하시나 봐요!"
아내의 말처럼 엄니가 다시 기력을 찾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지금처럼 건강하게 지내시다가, 엄니의 소망처럼 자는 잠에 아무런 고통 없이 그렇게 가셨으면, 그 복은 정말 타고 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열린 차창 사이로 매서운 겨울의 칼바람이 들어옵니다. 나는 전신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납니다.
덧붙이는 글 | 기념일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일년을 채워서 100번째 기사를 쓰는 것은 제 개인적으로는 의미있는 일입니다. 당분간 개인적인 사정으로 기사를 적지 못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여기에 두고 있겠습니다.
일년을 <오마이뉴스>와 가까이 지내면서, 저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십수년동안 열독했던 종이신문을 끊은지도 벌써 4개월이나 지났습니다.(신문지가 없어서 그러니, 괜찮은 종이신문 있으면 추천해 주십시오.)
그 동안 과분한 사랑을 주신 <오마이뉴스>와 독자여러분께 머리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 아직 남은 스무날 동안, 마무리 잘들 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