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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이야기
“그러니까 얘기는 이괄의 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군.”
최효일, 장판수, 짱대 등 십 여 명은 의주를 향해 길을 떠난 첫날밤, 서첩에 적힌 얘기를 듣고 옛 이야기를 덧붙이는 평구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괄 장군을 처음 마주 대한 날은 잊을 수 없다. 평소에 병사들의 조련에 여념이 없던 분이 하루는 술에 취해서 부하들을 점고하겠노라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지.”
인조2년, 인조반정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이괄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오히려 좌천이나 다름없는 인사를 당하고 말았다. 도원수 장만 휘하의 부원수 겸 평안병사로 임명되어 평안도 영변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조정에서는 당시 후금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평안도에 전력을 집중시키고 방비를 굳건히 하기위해 이괄을 보낸 것이라 하였지만, 조정안에서 제대로 실력행사를 할 수 없도록 한양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괄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이놈들아! 오랑캐를 맞아 싸워야 할 놈들이 무기손질이 이게 무엇이냐! 이렇게 무딘 날로 오랑캐 멱 줄이나 제대로 따겠느냐!”
어느날, 이괄은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창을 든 병사들을 꾸짖은 후 항왜병들이 도열해 있는 곳으로 가서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봐 너!”
“예.”
이괄이 지목한 항왜병은 바로 평구로였다. 이괄은 은근히 구슬리는 목소리로 평구로에게 물었다.
“넌 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아닙니다. 이곳이 좋습니다.”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또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칠지 모르는 이곳을 말인가?”
평구로는 힘주어 대답했다.
“왜국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닙니다. 조선은 왜국에 문물을 전한 은혜의 나라인데 침공을 했으니 마땅히 저희들이 군역으로 그 죄 값을 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은혜라? 허허허… 내 왜인들이 조선을 은혜의 나라로 여기는 것은 몰랐네! 그런데 저 한양의 임금과 공신이라는 놈들은 은혜를 개똥으로 아니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닌가?”
이괄을 수행하던 이수백과 기익헌은 그 말에 깜작 놀라 이괄의 곁에 붙어 조용히 말했다.
“나으리, 듣는 귀가 많습니다. 어찌 그런 소리를 하시는 지요?”
“그럼 내가 틀린 소리라도 했느냐!”
이괄은 더욱 크게 화를 내었고 수행하던 자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수백과 기익헌의 염려대로 그런 이괄의 행동을 몰래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숨어 있었고, 이런 이괄의 태도는 한양의 공신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대로 놔두면 큰일을 저지를 자가 아니오! 그가 가진 병권은 매우 강대하오! 이괄의 식솔들이 이곳에 있으니 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그들부터 잡아넣고 압송해 와야 하오!”
서인이 중심이 된 김류, 김자점 등의 공신들은 이괄이 반란을 획책한다고 부풀려서는 수차례 상소를 올렸고 처음에는 이를 믿지 않던 인조도 결국 이괄의 벼슬을 빼앗고 아들을 구금하라는 어명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울분에 차 있던 이괄은 아들이 구금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는 급히 수하의 이수백, 기익헌, 허전, 서아지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너희들이 날 따르지 않으려거든 당장 이 자리에서 날 잡아 금부도사에게 보내도 좋다. 난 지금부터 나와 함께 모반을 획책했다는 누명을 쓰고 이미 한양으로 압송되어가고 있는 순변사 한명련을 구해내고 한양을 치러 내려가겠다.”
이괄 휘하에는 조선 최정예 부대와 편곤으로 무장한 기마부대가 있었다. 그 수는 1만2천이었으며 도검과 총포를 잘 다루는 항왜군 130명까지 있어, 이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면 조선에서 이를 제대로 막아 싸울 부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능히 해볼만한 일입니다. 제가 가서 순변사 나리를 구해오겠나이다.”
칼과 철퇴에 능한 서아지가 나가 병사들과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압송되어 가는 한명련을 구했고 이괄은 자신을 잡으러 온 금부도사와 선전관의 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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