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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나오면서 도어 록 장치를 눌러 문을 잠근 후 다시 철창 문을 열고 다녔기 때문에 그 날도 그렇게 했다. 무심결에 도어 록을 누른 후 밖의 철창 문을 열려고 하는데 주머니에 열쇠가 없는 것이었다. 열쇠가 없다는 것을 느낀 순간 재빨리 안쪽 문을 잡으려고 했으나 스프링 힘에 당겨진 문은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잠겨 버렸다.
평소 같으면 안에 사람이 있으니 문제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집안에 아무도 없었다. 이 난감한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서 있으니 꼭 우리에 갇힌 원숭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휴일 새벽이라 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렇지만 그 새벽에 누구네 집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겠는가? 이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인기척이 있어 살펴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이 쪽으로 오고있었다. 남자 분이면 부끄러움이 덜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하려는데 이 아주머니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힐끗 쳐다보더니 외면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다시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에도 여자 한 분이 나타났다. 남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번에는 다급하게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들은 아주머니는 집으로 돌아가 열쇠가게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를 전해주고는 별일 다 본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 버렸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열쇠가게에 연락을 했지만 30분도 더 기다린 끝에 열쇠전문가가 도착을 하여 겨우 그곳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열쇠전문가는 문을 열어 준 대가로 10만 원을 요구했다. 휴일에다 철창의 열쇠가 정밀하여 열기 어려웠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새벽 댓바람부터 이런 홍역을 치르고 나니 모든 것이 귀찮아져서 얌전히 그냥 집에 있었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12시가 다 되어서였다.
근교 산으로 등산을 가자는 권유에 따라 기분 전환도 할 겸 등산로 입구에서 친구를 만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간쯤 올랐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하필 피할 곳도 없는 중간지점이었다. 서둘러 내려 왔지만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다 내려왔을 때는 완전히 생쥐 꼴이었다.
한기가 드는 듯 싶어 서둘러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 오는 도중이었다. 내리막 길에 차가 밀려 있어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는데 옆 차선의 차가 내 차의 뒤쪽을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3차선을 달리던 차가 빗길에 미끌어지면서 2차선을 달리던 내 차의 뒷 범퍼에 추돌한 것이었다.
뒷 차량의 운전자도 미안해 하고 차량의 파손이 심한 것이 아니어서 서로 연락처를 교환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 옷만 갈아 입고 경찰서에 신고하러 갔더니 담당 경찰은 내 차가 그 차의 앞으로 무리하게 들어가려 해서 뒤차가 추돌했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진술서를 쓰라고 강요하는 것이었다.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항변을 했더니 이제는 그 사실을 입증할 목격자를 데리고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상대는 어디서 찾았는지 목격자라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이미 진술서 작성을 끝낸 상태였다.
억울한 느낌이 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문의를 했으나 일단 목격자가 없으니 불리한 상태인 데다 차량은 보험 처리 할 수 있고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니니 그냥 인정하고 끝내는 것이 편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렇게 무려 4시간이나 경찰서에서 보내고 기운없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밤10시가 넘은 생각이었다. 생각해 보니 새벽부터 밥 한 숟갈 먹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정말 재수없는 날이었다.
월요일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운 나빴던 어제의 상황을 분풀이 하듯 열심히 설명했다. 모두들 공감하는 표정이었고 어떤 사람은 분개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딱 한 사람이 분위기와 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어제 정말 운수가 좋았군요."
"……?"
이 사람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 보니 그 사람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그렇게 많은 일을 당하고도 건강하게 여기 있으니 얼마나 운수가 좋아요?"
정말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