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바뀌는 세상의 모든 소식들, 긴 밤 공을 들였을 영상과 활자들이 새 아침의 문턱에서 독자들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 많은 이야기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보는 넘쳐나고 가치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하지만 시간을 다투는 바쁜 일상사, 때로는 풀어 쓴 장엄하고 유려한 사설보다 압축의 그림 한 컷이 사람들의 눈길과 마음을 붙든다. 시사만평은 그렇게 텍스트와 화면이 전해주지 못한 세계로 독자들의 손을 잡아끈다.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는 지난 9일 총회를 갖고 김상돈 화백을 제5대 회장으로 선출하며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했다. 김 화백은 <경인일보>와 <오마이뉴스>에 시사만평을 제공하며 이미 탄탄한 독자들을 갖고 있기도 하다.
14일 오후 1시, <경인일보> 편집부에서 그를 만나 앞으로 1년간 시사만화 작가회의가 걸어나가야 할 길과 인터넷 매체 시대 시사만평이 자리 잡아야 할 여러 방식과 존재 의의에 관해 진지하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다.
'평화 만평전', 평양서 개최하고 싶다
- 시사만화작가회의에 대해 소개해 달라
"2000년 출범했다. 처음에는 비교적 진보적이고 개혁지향적인 이들로 구성이 됐다. 이후 사회민주화와 평화통일지향이라는 두 개의 큰 축 아래서 활동을 해 왔고 강원, 제주, 부산, 광주 등 전국 일간지와 주·월간지, 인터넷 매체 화백들이 주축이다. 지금은 조·중·동과 몇 개의 경제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매체의 만평가들이 회원이다."
- 회장직을 맡아 부담은 없는지
"그간 장봉군 한겨레 화백이 초대회장을 맡아 많은 기반을 닦아 놓았고 뒤를 이어 백무현 서울신문 화백이 중흥기를 열었다. 손문상 화백, 조민성 화백을 이어 자리를 맡게 됐다. 사실 부담이 된다. 한 곳에 신경을 쏟아도 좋은 만평을 그리기가 쉽지 않은데…. 전임회장들의 경우 많은 일을 하면서도 좋은 작품을 내는 걸 봐왔는데, 존경한다(웃음)."
- 임기 중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시사만화의 저변확대가 우선이다. 첫째,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국 시사만화 공모전을 개최할 계획이다. 예비 아마추어 작가들의 장을 마련하고 그를 통해 시사만화가 친근하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또 우리의 사이트(www.newstoon.net)를 통해 카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등용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두 번째로 국제교류를 넓히려 한다. 가깝게는 아시아 작가들의 연합회를 만들어 학술대회 등을 통해 정보교류를 넓히려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평양에서 '평화 만평전'을 개최하려 한다. 시사만화가 민족과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민족은 하나다'라는 기치 아래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만평전을 열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줄타기나 기계적 중립을 택할 바엔 붓을 꺾어라
- 일간지들의 경우 매체 특성에 따라 만평의 논조도 따라가는 현상이 있다. 현업 만평가로서 이에 대한 생각은
"화백의 논조가 신문사의 편집방향과 '전혀 불가분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비근한 예로 <경향신문>에서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기며 논조까지 따라간 김상택 화백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독립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나 역시 대선 기간 등 중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회사(경인일보)의 논조와 자주 충돌을 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화백 스스로 자신의 위상과 논조를 지켜 내야 하는 것이다."
- 그에 대한 현실적 대안이 있을까
"화백들이 자신의 만평을 시장에 내놓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언론사들이 '장보기'를 하는 것이다. 그때그때 자사의 논조와 맞는 만평을 골라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만평이 계속해서 실리는 것도 의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다양한 만평이 지면을 장식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 인터넷 매체가 성장하며 아마추어 작가들의 작품도 늘고 있다. 참여가 높아지는 장점이 있는 반면 책임성과 신뢰도 담보의 문제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문제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대중화 기여 측면의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정제되지 않았다는 단점이 있을 수 있다. 언어의 순화 문제와 논점의 일관성 결여, 특히 중요한 윤리적 문제점 등이 지적 될 수 있다. 실제 법적인 문제로 비화된 경우도 있다.
특히 인터넷 매체에 만평을 올리는 이들이 빠지는 가장 큰 유혹이 '자극적'인 측면이다. 강하고 독한 것만이 좋은 풍자가 아니다. 기본적인 공감대 위에 풍자를 섞어내야 한다. 자극의 유혹을 떨쳐내고 독자의 피드백을 얻어내야 사랑받는 만평가가 될 수 있다."
- 특정사안에 대해 만평가들의 시각이 나뉘는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만평은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논설위원이 특정 사안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듯 만평가 역시 분명한 시각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단순 '삽화'가 되고 마는 것이다. 다만 그 주장이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는 없다.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고 그 안에서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이 민주사회다.
이를테면 국보법을 지켜야 한다, 혹은 철폐해야 한다는 두 가지 만평이 있을 수 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만평가는 '만평에 의해' 정확한 자기 소신을 밝히는 것뿐이다. 줄타기나 기계적 중립을 택할 바엔 붓을 꺾고 삽화를 그리는 편이 낫다. 물론 양비론이 화살을 피해 장수를 할 수는 있겠지(웃음)."
<오마이뉴스>의 강점은 가장 낮은 곳의 이야기, 실제 많은 도움을 얻는다
- 2002년부터 <오마이뉴스>에 만평을 실어왔다. 그간 정치적 지향점이 달라진 것은 없는가
"정치적 지향점은 정파적 이해가 아닌 삶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개혁과 진보를 화두로 중심은 국민이라는 기본 관점에는 변함이 없다. 사실 <조선일보>에 만평을 그리는 이도 기조는 국민이다(웃음).”
- 인터넷 매체를 통한 독자들의 반응이 오프라인 매체와는 다르지 않은가
"그간 <오마이뉴스>에 만평을 올리며 얻은 것이 많다. 특히 독자의 반응 면에서 그렇다. 바로 반응이 온다. 때로는 비난도 쏟아지지만 그것조차도 작가 입장에서 대단히 긍정적인 면이다. 어지간한 논설위원을 뺨치는 논객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건 큰 행복이다. 그런 분들은 독자로 있기에 너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여론이 있어 사회 개혁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론 작가에게 거울을 들이미는 것과 같다고 본다. 인터넷 매체를 통해 스스로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오늘은 뭐가 묻었고 무엇이 잘못 됐구나 하고 반성할 수가 있다. 기존 오프라인 매체 때는 경험할 수 없던 일이다. 그만큼 반응이 빠르다는 것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근간이 된다."
- 언론매체로서 <오마이뉴스>가 가지는 강점이 있다면
"가장 낮은 곳의 '사는 이야기'이다. 그 진솔함은 다른 매체에서 절대 다룰 수 없는 것이다. 시사만평을 하는 이들은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 마음으로 소통하고 실제 많은 것을 얻어간다. 다른 만평가들 역시 그런 면에서 <오마이뉴스>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간 지켜 본 냉정한 평가의 결과다."
- 시사 만평가이기도 하지만 <오마이뉴스>에서는 시민기자이기도 하다. 혹 그림이 아닌 기사를 써 볼 의향은 없는지
"글 실력은 서툴지만 쓸 기회가 있다면 전문분야에 한해서 게재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웃음). 단 만평가는 만평 자체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말을 잘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웃음)."
김 화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독자와의 부단하고 끊임없는 소통이라고 한다. 그런 관계 속에서 만평의 위상이 정립된다고 믿는 그는 통일의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도 만평가들 역시 시대와 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북측에도 만평가가 있습니다. 그림 실력이 대단하더군요. 실질적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작가회의 내부에서도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요. 통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이루는데 시사 만평가들이 어느 정도 기여를 해야 하는 것이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꼭 이룰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전, 그는 그동안 모아 놓았던 <오마이뉴스> 원고료로 지난주에 결혼 13주년 기념으로 태국여행을 다녀왔노라고 슬쩍 자랑을 내비쳤다. 난생 처음 가 본 해외여행이었다며 원고료 한두 푼 모으는 재미를 이제야 느낀 것 같다는 그의 웃음이 다른 시민기자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