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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새벽까지 벌어진 과격 시위로 호의적인 입장에서 비판으로 돌아선 홍콩 언론.
18일 새벽까지 벌어진 과격 시위로 호의적인 입장에서 비판으로 돌아선 홍콩 언론. ⓒ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홍콩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 항의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던 한국 농민시위대 900여 명이 12월 18일 새벽 전원 연행됐다.

17일 오후부터 WTO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홍콩 도심에서 불평등한 무역과 농업협정에 비난하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저녁이 되면서 시위 허가구역에서 벗어난 시위대는 WTO 각료회의가 진행되는 완짜이(灣仔) 부근의 국제컨벤션센터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시위대는 최루탄을 쏘면서 해산을 도모했던 홍콩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여 시위대 70여 명이 부상을 입었고 경찰도 10여 명이 다쳤다. 홍콩 경찰은 새벽까지 홍콩섬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던 농민시위대를 포위한 뒤 한 명씩 차례로 전원 연행하여 각 경찰서에 분산 수용했다.

앰브로즈 리(李小光) 홍콩 보안국장은 17일 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시위대가 경찰의 지시를 존중하지 않고 폭력적인 수단으로 홍콩의 치안을 파괴했다"고 비난하면서 시위 주동자를 홍콩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18일 영문 일간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를 비롯한 홍콩의 모든 신문매체는 한국 농민시위대의 시위 장면과 최루탄까지 등장했던 격렬한 충돌 장면을 여러 면에 걸쳐 전했다.

줄곧 반 WTO 시위대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18일 새벽까지 1천여명의 시위대가 지난 10년 이래 가장 악랄한 폭력시위를 벌였다"며 "시위대로 인해 완자이 일대가 무법천지로 변하고 모든 교통수단이 두절되어 극심한 혼란과 불편을 겪었다"고 보도했다.

한국 농민시위대의 평화시위 이후 호의적인 기사를 잇따라 내보냈던 <문회보> <대공보> 등 친중국계 일간지들 또한 "홍콩에서 1960년대 말 이래 가장 심각한 난동과 진압 장면이 나타났다"면서 "경찰이 홍콩 시내에서 장갑차에 최루탄까지 사용하며 시위를 진압한 것은 30여년 만에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대공보>는 "한국 농민시위대가 대부분인 반WTO 시위대가 각목을 휘두르며 경찰의 곤봉과 방패까지 빼앗고 경찰차를 불사르며 컨벤션센터로의 진입을 시도했다"면서 "후추 스프레이와 소방기를 뿌리며 저지에 나선 홍콩 경찰은 시위대가 수차례에 걸쳐 방어선을 맹렬히 공격하면서 돌파하려고 하자 최루탄을 발사하며 적극 진압에 나서게 됐다"고 전했다.

한국 농민시위대가 주축이 된 시위로 홍콩은 30여 년 만에 최루탄이 발사됐다.
한국 농민시위대가 주축이 된 시위로 홍콩은 30여 년 만에 최루탄이 발사됐다. ⓒ 문회보
해상시위를 시작으로 삼보일배, 촛불집회, 문화행사 등 의표를 찌르는 다양한 시위 전술로 홍콩인들과 언론의 호평을 받던 원정시위대는 17일 밤과 18일 새벽까지 이어진 과격 시위로 인해 홍콩의 민심을 일정 부분 잃게 되었다.

<문회보>는 "연일 계속된 시위대의 연성공세 때문에 적지않은 홍콩 시민들이 시위대를 지지하고 심지어 시위 행렬에 함께 참여했다"면서 "17일에도 평화집회와 시위행렬에 박수를 보내며 지지하던 홍콩 시민들의 일부는 시위대에 참가하거나 시위대가 컨벤션센터로 진입하는 것을 응원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문회보>는 이어 "일부 홍콩 시민들은 경찰이 한국 농민시위대에 최루탄을 사용한 데 대해 비난했다"면서도 "폭력 시위를 비판하고 지지하지 않는 시민들도 적지않다"고 전했다.

한편 17일 밤 900여명의 시위대가 연행되기 전 홍콩주재 한국영사관과 농민시위대 지도부는 홍콩 경무처와 시위대의 안전귀가를 놓고 협상을 벌였다. 홍콩 경무처는 이번 한국 원정시위대의 과격 시위가 홍콩인들에게 전파될 것을 우려하여 전원 연행을 결정했다.

최근 들어 홍콩에서는 특별행정구 수반인 행정장관의 직선제 도입과 정치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빈발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홍콩 시민 10만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16일까지 WTO를 반대하던 각종 시위에 유연하게 대응하던 홍콩 경찰도 어제 시위에 최루탄까지 동원하면 강경 진압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홍콩에까지 원정 시위에 나선 한국 농민시위대의 이날 시위 행태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일부 시위자이긴 하나 각목을 휘두르며 컨벤션센터로의 진입을 시도하거나 바리케이트로 이용된 경찰차량을 뒤엎으려고 하는 등 한국에서와 같은 극단적인 시위문화를 외국에서 되풀이한 점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문회보>는 18일 "연일 계속되는 반WTO 시위와 이에 대한 홍콩인들의 열렬한 호응 등 여론의 압력으로 WTO 각료회의가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 폐막되는 분위기"라고 보도했다.

세계 유수언론에서 한국 농민들의 처지를 주목하고 홍콩 시민들의 참여까지 늘어난 시점에서 농민 시위대가 컨벤션센터로의 무리한 진입을 택한 것은 잘못된 전략이었다.

홍콩이 세계 주요 언론매체가 진출한 아시아의 미디어센터라는 점에서 다양한 문화시위 전술로 홍콩 시민들과 함께 반WTO 메시지를 더욱 강렬히 표출했다면 전세계 여론을 우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거침없이 벌어지는 우리의 시위문화와 시위 지도부의 사려깊지 못한 전략이 아쉬운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송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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