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가 농민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폭행당한 뒤 사지마비와 폐렴을 앓다 18일 숨진 고 홍덕표씨에 대해 깊은 애도와 함께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정부가 최근 잇따라 생긴 농민 사망이나 부상과 관련, 공식 입장을 표명한 것은 11월 24일 고 전용철씨 사망사건 이후 26일 만이다.
정부, 8년만에 처음으로 시위 참가자 사망에 대해 사과
이 총리는 19일 오전 이강진 총리실 공보수석이 대신한 총리 명의의 사과문에서 "고 홍덕표씨의 명복을 빈다"며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로서 최근 시위에 참석했던 농민들의 일부가 부상을 당하고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 데 대해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정부가 경찰 폭력에 의해 숨진 시위 참가자에 대해 공식 사과한 것은 지난 1997년 조선대생 류재을(당시 20세)씨 사망 사건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이는 정부가 전용철·홍덕표씨 사망 등 최근 잇따른 시위참가 농민들의 부상과 사망사고에 큰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강진 총리실 공보수석은 "농민 사망 사건에 대해 정부가 신속하게 입장을 발표한 것은 8년 만에 발생한 시위 중 사망사고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림부 장관, 경찰청장도 홍씨 빈소 조문 예정
정부는 이날 공식 사과 발표와 함께 홍씨와 전용철씨 사망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평화적인 집회·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정부는 무엇보다 이번 사고의 진상과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불법 행위자는 물론 과잉 행위자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강진 수석은 "18일 오후부터 진상조사에 나섰으며 조사결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경찰청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홍덕표씨 사망에 대한 유감의 뜻을 밝혔다.
허준영 경찰청장은 "현재 자체 수사, 감찰을 하고 있으며 부검 결과와 인권위원회 조사결과가 모두 나온 뒤 종합적으로 판단해 최종 입장을 발표하겠다"며 "금명간 홍씨 빈소를 찾아 조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박흥수 농림부 장관도 홍씨 빈소를 방문해 조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범대위 "허준영 청장, 사퇴하고 문상오라"
한편 '농업의 근본적인 회생과 고 전용철·홍덕표 살인진압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19일 발표된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애초 범대위가 요구한 ▲대통령 사과 ▲경찰청장 파면 ▲현장지휘자 및 책임자 구속처벌 등 조건이 하나도 충족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석운 범대위 공동위원장은 "정부가 홍덕표 농민에 대한 폭력 살인진압을 인정한 것은 진일보한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범대위 투쟁 일정은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박 위원장은 "(정부가 홍씨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전용철 농민과 관련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비난했다.
범대위는 또 허준영 경찰청장의 홍씨 빈소 조문도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허준영 청장이 홍씨 빈소를 찾으려면 먼저 사퇴하고 문상하러 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