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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마음이 착해서 거짓이 없고 욕심이 없는 사람은 하느님을 닮아 갑니다. 여기 제 마음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너무 착하고 거짓이 없고 욕심이 없어서 사흘을 굶으면 그냥 굶어 버리는 재수씨. 또 한 사람은 너무 욕심이 많아 사흘을 굶기도 전에 남의 집 담을 넘는 기철씨입니다.

"재수씨, 하루 온종일 고물을 모으면 얼마 벌죠?"
"몇 천원 벌어요. 재수 좋은 날은 만원도 벌고요."

"재수씨, 고물을 줍다가 주인이 안 보면 슬쩍 담기도 해야 돈을 벌지요."
"에이, 남의 것에 손을 대느니 차라리 굶고 말지요. 비록 없이 살아도 마음이라도 편해야지요."

재수씨는 '민들레국수집'(무료급식소)의 VIP 손님입니다. 민들레국수집 초창기부터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몇 년 후 조그만 전셋집 하나 얻어 준다는 말만 믿고 고물상에서 일을 도와주는 재수씨는 털털거리는 50cc짜리 고물 오토바이를 타고 하루 두 번씩 식사를 하러 오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재수씨가 환자복 위에 겉옷을 걸친 채 허름한 차림새의 노인 한 분을 모시고 민들레국수집에 들어왔습니다. 노인이 치아가 하나도 없어서 좀 드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합니다. 자장밥을 해드렸더니 아주 맛있게 드십니다.

젖먹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재수씨는 동네 아주머니들 젖을 얻어먹고 살았습니다. 재수씨의 초등학교 시절 소원은 고아원에 들어가는 것이었다는데 그렇게 되면 밥을 굶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공공근로를 할 때가 가장 행복했고 그래서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트럭 짐칸에 몸을 싣고 일하러 가다가 그만 트럭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습니다. 공공근로를 하는 중이었고 관공서의 작업차량을 타고 일하다가 떨어져서 다쳤는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치료라도 받게 해 주어 감지덕지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몇 년마다 한 번씩 허리뼈를 고정시켜 주는 금속을 바꾸고 조절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받는 돈은 허리 통증을 치료하는 약을 사는 데 거의 다 씁니다. 요즘 병원에서 그 치료를 받고 있는데 병원에서 주는 식사는 재수씨에게 턱없이 모자라는 양입니다. 그래서 입원해 있으면서도 이삼일에 한 번 정도는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옵니다. 그러면서도 치아가 없는 노인을 걱정합니다.

기철씨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가 새고 허물어져 가는 단칸 셋방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습니다. 좁은 방에는 한 사람이 한 해를 먹어도 남을 만큼의 쌀과 라면이 쌓여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기철씨의 죽음에 대해 담담합니다.

기철씨는 어릴 때부터 상습적인 범죄로 수감 생활을 여러 번 했습니다. 교도소를 나온 다음에는 동인천역 근처의 성매매 여성들을 괴롭히며 그들에게서 뺏은 돈으로 살았습니다. 그 일도 힘에 부치자 그가 다음으로 노린 이들은 노숙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기철씨의 수법은 아주 절묘합니다. 처음에는 아주 살갑게 잘해 줍니다. 밥도 사고 술도 사고 담배도 사 줍니다. 친형제보다도 더 살갑게 걱정해 주는 척하다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그 순간 코걸이 수법을 구사합니다. 순진한 노숙자들은 거의 대부분 기철씨의 수법에 걸려들어 꼼짝 못합니다. 처음 기철씨를 사귀는 사람은 "이렇게 좋은 사람을 사람들은 왜 싫어할까?"라고 의아해 합니다. 그러다가 가진 것을 다 털린 뒤에야 기철씨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흔듭니다.

신용카드 업체가 사용자의 신용도 보지 않고 카드를 남발할 때 그는 카드로 수천만 원을 대출받아 흥청망청 썼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된 후에는 기초생활수급권자 신청을 해서는 자기 통장으로 입금되는 생활비를 챙겼습니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119에 전화해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갑니다. 의료보호 카드가 있으니 약간의 자기부담금을 감수한다면 편히 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부담금마저 내는 것이 아까워 병원에서 도주합니다. 그리고서는 "이 병원말고 다른 병원이 인천에는 몇 군데 더 있다"고 말합니다.

기철씨가 어느 날 민들레국수집에서 밥을 먹다 말고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참 바보 같아요. 민들레국수집 음식이 내 입에 딱 맞아서 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오는데 공원에 있는 친구들은 바보처럼 하루에 한 번만 오거든요?"

저는 잘 압니다, 그들이 바보라서 하루에 한 번만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기철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기 일주일 전부터는 민들레국수집이 시끄러웠습니다. 국수집 문을 열기도 전부터 기철씨는 술에 취해 밥을 달라고 했습니다. 챙겨 주면 반쯤 먹는 것도 힘겹습니다. 119를 불러 달라고 해서 병원으로 갔지만 몇 시간 후면 또 나타납니다. 죽기 전날에는 두 번이나 119에 실려 갔습니다. 119에 실려서 간 병원마다 기철씨가 떼어먹은 돈이 있어서 치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당장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어떤 병원도 그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반인권적인 사람이 또 다른 반인권에 의해 고통 받는 악순환은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마음 착한 재수씨의 거짓 없고 욕심 없는 모습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키워 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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