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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던 사학법 개정안이 약 6년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사학법인쪽은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겠다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고, 한나라당은 장외투쟁을 통해 '무효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사학법 개정안'에 대해 호의적이다. 대다수 언론 매체들의 여론조사에서도 사학법 개정안 찬성이 과반을 점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사학 비리를 고발해 오히려 피해를 봤던 내부고발자, 지금까지 비리와 전횡을 일삼고 있는 사립고교, 관선이사 파견 후 비리사학에서 건전사학으로 거듭난 사립대 사례를 기획기사로 보도한다. 이 기사는 기획 마지막, 사립대 이야기다. <편집자주>
"설립자 김문기는 공사대금 부풀리기, 학교 등록금 횡령 등 전형적인 사학비리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으나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선고를 받고 사면 복권되었습니다…(중략)…1993년 설립자 김문기가 강제적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후 지금까지 상지대는 '상교협'이라는 일부 교수집단에 의해서 점령군식으로 운영되고 관선 이사들도 그들의 꼭두각시 역할을 할 뿐입니다…(중략)…교육부와 일부 교수들의 유착에 의해서 학교법인의 사적재산을 불법으로 빼앗았으며, 이는 전대미문의 '사학탈취행위' 입니다."

지난 8월 26일 한나라당 최고위원 가운데 한 명인 이강두(경남 산청·함양·거창)의원이 국회에 접수시킨 '공권력에 의한 상지학원·상지대학교 강제탈취 진상조사 청원서'에 담긴 내용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엉터리 청원서

상지대 김문기 전 이사장 복귀 청원서를 냈던 한나라당 이강두 최고위원(가운데)과 이 청원서에 서명한 이규택 의원(왼쪽)
상지대 김문기 전 이사장 복귀 청원서를 냈던 한나라당 이강두 최고위원(가운데)과 이 청원서에 서명한 이규택 의원(왼쪽)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 청원서에 담긴 핵심 내용은 상지대(강원도 원주 위치)를 김문기 전 이사장에게 돌려주자는 것. 그러나 청원서 내용 가운데 대부분은 거짓으로 판명됐다.

청원서에는 김문기 전 이사장이 무죄 선거를 받고 사면 복권을 받았다고 돼있지만, 김 이사장은 이미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사실까지 있다.

상지대는 김문기 이사장 재직 시절 사학 비리의 대명사로 불렸다. 민자당 3선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불법 부동산 투기, 부정입학, 학교 공사비 횡령, 족벌경영 등 각종 비리가 드러나면서 93년 구속됐다. 이후 대법원에서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상지학원과 상지대학교 설립자가 김문기 전 이사장이라는 청원서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2004년 10월 28일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르면 상지학원과 상지대학교의 설립자는 고 원홍묵씨로 돼 있다.

청원서 접수 이후 이강두 최고위원은 <시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상지대 김문기 전 이사장 복귀 청원과 한나라당의 개방형 이사제 반대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되자 꼬리를 내렸다. 거짓으로 가득 찬 이 청원서는 결국 흐지부지됐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이 청원서에 넓죽 서명한 의원은 이강두 의원을 비롯해 김충환·안택수·이규택·이진구·정두언·최구식·홍문표 (이상 한나라당) 의원과 김학원 (자민련) 의원 등 모두 9명이다. 이 가운데 이규택 의원은 현재 '사학법 무효투쟁 및 우리아이지키기 운동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다.

2년마다 반복되는 김문기 전 이사장의 복귀시도

지난 2003년 12월 정식 이사 체제 출범을 선언하고 정상화된 상지대학교.
지난 2003년 12월 정식 이사 체제 출범을 선언하고 정상화된 상지대학교. ⓒ 상지대학교
이강두 의원이 주도한 청원서를 보면 현재 상지대에 마치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김문기 전 이사장의 비리로 인해 93년부터 11년간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됐지만, 상지대에는 강만길·김성훈·김찬국·한완상 등 명망 있는 인물들이 총장으로 재임했고 이들은 학교 구성원들과 함께 학교 정상화와 민주적 운영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강원도에서 입시 경쟁률이 가장 높은 대학으로 성장했으며, 장학금 수혜율이 26%에 육박하는 등 건실한 사학으로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교육부에서 파견하는 관선 이사 임기가 2년이었던 탓에 2년마다 한 차례씩 김문기 전 이사장의 집요한 복귀시도가 있었다. 상지대 교수협의회 공동 대표인 정대화(정치학)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문기씨는 정치권이나 교육부 등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끊임없이 복귀 시도를 했어요. 95년에 교육부 감사 때 김문기 전 이사장 측 인사들에 의해 김찬국 총장이 부당하게 해임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학내 구성원들이 위기 의식을 강하게 느꼈죠. 잘못하다가는 학교가 다시 김문기씨 손에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또 90년대 말에는 김문기씨가 전국에 있는 2만 명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상지대가 부패했다'는 요지의 문서를 배포해 복권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상지대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임시 이사 체제를 이어가다가 2003년 12월 교육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해 결국 2004년 1월 1일 정식 이사 체제로 전환했다.

초대 이사장은 경제학계의 거두인 변형윤 서울대 전 교수가 맡았다. 재단 이사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이영수 <교수신문> 사장, 김범일 가나안 농군학교 교장, 김승오 신부, 그리고 교육부 추천 3인을 선임했다. 신망이 두터운 학계·시민단체·지역·종교계 인사를 아우르는 이사진을 구성한 셈.

사실 상지대는 일찌감치 개방형 이사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개정된 사학법과는 무관하다. 진작 이사회를 개방하고 공익적 이사 구성을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정대화 교수는 상지대 정상화의 원동력은 학내 구성원들의 강한 단결력과 지역사회 및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원과 연대라고 말한다. 여기에 임시 이사 체제 속에서도 학내 민주화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고 발전적 모델로 '시민대학'을 제시한 것이 큰 힘이 됐다.

시민대학은 대학 구성주체가 시민사회와 협력해 공동으로 대학을 운영하는 것으로 상지대의 교육목표이자 운영방식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포괄적 개념. 시민사회와의 협력으로 부패 사학이 탈바꿈한 만큼 이들과 함께 대학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학교에 십일조내는 교직원들, 학생과 함께 하는 총장추대제

부패 사학의 대명사 상지대학교가 10년이 넘는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부패 사학의 대명사 상지대학교가 10년이 넘는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 상지대학교
상지학원 소속의 교수와 직원 480여명은 매달 기본금의 10%를 학교 발전기금으로 자발적으로 내고 있다. 월급 10%를 내놓는다는 게 웬만한 애정과 소속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 이 발전기금은 시민대학의 운영 자금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그렇게 모은 돈이 30억원에 이른다.

상지대는 소속감이 높은 구성원들 덕에 말도 많고, 토론도 많고, 갈등도 많다. 그러나 이를 조정할 민주적 훈련이 돼있다. 상지대는 총장 선출에 있어서도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 교직원 노조가 합의하는 방식의 '총장 추대제'를 이어가고 있다.

이뿐 아니라 등록금 인상이나 직원 임금 문제 등의 민감한 사안도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박병섭(법학) 상지대 부총장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구성원간의 공동 의사 결정과 실천이 학교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상지대 정상화가 안착화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허점을 보이는 순간 김문기 전 이사장이 언제고 복귀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병섭 부총장은 "정상화 이후 내부 이해관계들이 갈등으로 불거질 수 있는 만큼 민주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갈등 관리를 해 나가는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면서 "그 터전 위에 상지대가 시민대학으로 경쟁력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지대는 10년이 넘는 지난한 싸움을 통해 가장 중요한 과제였던 공익적 이사진 구성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개교 50년이 되는 2012년까지 시민대학의 완성을 목표로 구성원들이 움직이고 있다. 실천 목표들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연구 능력을 높이고, 장학금과 복지 혜택을 늘리고, 대학 캠퍼스를 지역 사회에 개방해 문화·교육·휴식·학습의 공간으로 만들고, 지역과 NGO연대 사업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부패 사학의 아름다운 변신, 살아있는 상지대의 변화는 현재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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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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