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나간 지 채 한달이 지나지 않은 지난 20일. 방송 그 후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병원에서 만난 휘파람 아저씨는 외관상으로도 많이 달라 보였다.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제작진도 "이발하셨네요" "얼굴 너무 좋아지셨어요"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개그맨 윤정수씨 역시 "얼굴이 너무 선하다"며 "아저씨의 경우 특정 개인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게 아니고, 이렇게 치료가 잘 되고 있으니 이 선한 눈매를 방송에 내보내도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가정폭력 솔루션 프로 <긴급출동>의 두 달
올 한해 많은 솔루션(해결) 프로그램이 선보여졌다. 형편이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에게 무료로 개안수술을 해 주고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쳐 주는 등 TV는 여러 방면에서 '해결사'를 자처했다.
<긴급출동>은 높은 시청률만큼이나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솔루션 프로그램. 그도 그럴 것이 '가정폭력'이라는, 여전히 집안일이나 사생활로 치부되는 문제를 정공법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나 주변인의 제보를 받은 제작진은 피해자의 동의 하에 영상 등으로 증거자료를 확보하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와 정신과 의사, 경찰, 변호사 등으로 이루어진 솔루션 위원회가 대책을 논의한다. 이어 법적 처벌이나 격리 수용, 입원 치료, 상담과 같은 처방이 뒤따른다.
두 달간 총 16건의 사례가 선보여진 현재, 제작진은 지금까지 방송된 사례들은 대부분 순조로운 해결 과정을 밟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디까지 얼마만큼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는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
이병호 피디는 "솔루션 진행 과정에서 가해자들이 얼마나 따라주느냐가 가장 걱정"이라고 밝혔다. 일례로 각종 흉기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한 가해자는 연락을 끊고 사라진 상태.
정희선 작가는 직접적인 결과보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작가는 "가해자들이 한두 번 처벌 받고 치료·상담을 받는다고 변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부분 가해자들이 가정폭력의 또 다른 피해자라는 점 역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고 덧붙였다.
<긴급출동>의 해결책은 크게 피해자 격리와 가해자 치료로 나뉜다. 일차적으로는 피해자 격리가 중요한데 피해자들은 이미 죽음에까지 내몰릴 수 있는 극한 처지이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이 과정에서 방송이라는 매체의 힘이 많이 반영된다. 피해자를 돕거나 가해자를 처벌·치료하려면 각종 기관이나 단체의 협조가 필요한데 방송은 어렵지 않게 협조를 구할 수 있다는 것.
가해자 단번에 변하지 않아... 시청자들 기대 부담
그러나 제작진은 방송을 통한 가해자의 변화에 대해서는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정희선 작가는 "방송이라고 해도 가해자를 하루아침에 변하게 할 수는 없다"며 "사회 안전망이 아무리 구축되어 있어도 가정폭력은 제3자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변호사, 경찰 등 사회 안전망을 연결해 주고 사회적인 보호를 받게 하는 게 그것이다.
여전히 가정폭력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나 어린이 같은 약자들이 많다. 특히 주부들은 경제력 등의 이유로 이혼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처방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 <긴급출동> 제작진은 지속적인 사후 관리를 위해 내부에 전담 스태프를 두고 있다. 사회복지사인 박민선 팀장은 방송 후에도 피해자들의 상황을 계속 확인하고 있다.
부모님이 안 계신 상태에서 동생을 구타하고 여동생을 성폭행하기까지 했던 <무서운 큰형> 편에 나온 남매는 지금 학교를 옮기고 새 거처도 마련한 상태다. 제작진은 이 거처를 이들뿐만 아니라 비슷한 상황의 다른 피해자들도 지낼 수 있는 쉼터로 운영할 계획이다. 또 앞으로 방송 횟수가 늘어나면 사후 관리에 추가 지원을 검토할 예정.
사내 시사 때도 "폭력 수위 너무 높다" 논란
그런데 제작진은 왜 가정폭력 해결사를 자처했을까. 사실 올 5월에 기획해 7월 말 사내 시사를 했을 때도 반응은 격렬했다. 내부에서도 "기획 의도는 좋지만 폭력 수위가 너무 높다"는 반발에 부딪혀 시사 후 편집만 4~5회를 거치며 수위를 조절해야 했다.
이병호 피디는 "화면 자체의 폭력성 수위가 기존 프로그램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지금 방송에서 방영되는 것은 실제 촬영분의 1/10에 불과하며 나머지 영상은 증거 자료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만큼 가정폭력 양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폭력성과 선정성 논란은 <긴급출동>을 끈질기게 따라다니고 있다. 한 누리꾼은 "하루 종일 그 (때리는) 소리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면서 "그렇게까지 안 해도 얼마든지 문제점을 보여줄 수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나 <긴급출동> 시청자 게시판에는 비판보다는 옹호가 많다. 그 중에는 가정폭력 경험자라고 밝힌 시청자의 글도 종종 볼 수 있다. 다음은 한 누리꾼이 올린 '폐지 주장 내시는 분들만 보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이다.
"단순히 이 프로가 폭력적인 장면이 많고 혹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기타 짧은 생각으로 키보드로 폐지를 주장하시는데, 이 프로는 매주 죽어가고 희망도 없이 고통 받는 가정을 구하고 있습니다. … 그런 가정에서 자란 저로서는 매회 매회를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공감대를 느끼고 아울러 그 가정의 '희망'에 'ㅎ'자를 보고 있습니다."
피해자 보호와 연출 논란, 긴장 늦추지 말아야
과제는 또 있다. 피해자 보호와 '연출' 논란 등은 제작진에게 늘 긴장할 것을 강조하는 경고메시지다.
<무서운 큰 형>편에서 친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동생을 성인 남자들과 일대일로 마주하게 했던 설정은 피해자 보호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 또 첫 방송된 <차라리 아들이 없었더라면...>에서는 어머니를 구타한 아들이 쓴 편지에서 "200만 원만 만들어주세요"라는 문장이 보이면서 작위적인 연출이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정희선 작가는 "제작진은 가해자의 눈물과 편지를 완전한 해결이 아니라 변화의 가능성 정도로 본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변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논란이 됐던 것 같다. 연출에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정 작가는 "예전 한 프로그램에서 피해자가 방송이 끝난 후 전과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며 "그런 의미에서 <긴급출동>은 매우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자평했다. 이제 자극 수위를 계속 높여 가는 선정적인 프로그램이 되느냐,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재활의 희망을 주는 프로그램이 되느냐하는 것은 이제 제작진의 몫으로 남겨졌다.
| | "웃어도 되나 안 되나, 가장 고민했죠" | | | [인터뷰] <긴급출동> 진행자 개그맨 윤정수 | | | |
| | ▲ 고심 끝에 <긴급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개그맨 윤정수씨. | ⓒ심은식 | | 개그맨 윤정수가 <긴급출동> 진행자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이다. <아시아 아시아> 같이 사회성을 가미한 코너를 하기는 했지만 <긴급출동>은 그보다는 '센' 가정폭력을 다루기 때문이었다.
"처음 제의 받고 사실 너무 부담이 됐다. 솔직하게 말하면, '휩쓸려서' 시작하게 됐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단 시작하고 나니,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 정의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어도, 가정폭력에 고통 받고 도움의 손길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연을 접하면서 안할 수가 없었다. 고생하는 제작진을 보면서도 그랬다. 지금은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윤정수는 처음 촬영장에서 가장 먼저 "웃어도 되나 안 되나"를 제작진과 상의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가만히 있어도 웃는 것 같은 얼굴' 때문에 지적을 받기도 했다.
정희선 작가는 "개그맨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사 아이템이지만 '이웃의 문제'로 전달하고 싶었고, 딱딱한 진행자보다 친근함을 주는 진행자가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윤정수 역시 "'<긴급출동>의 윤정수'지 '윤정수의 <긴급출동>'이 아니기 때문"에 가벼워 보이지 않게 자신의 노출을 자제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지금까지는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무겁게 흐르지 않고 적당한 선을 지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윤정수는 "방송이 완벽한 해결사가 될 수 없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며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범죄 사실을 자각시키고 인식 변화와 상황 개선에 도움을 주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변화가 얼마나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걱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프로그램이 어려운 이유는 책임감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긴급출동> 진행을 맡다 보니 내게 개인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공인으로서 위치가 더욱 강화되는 느낌이다. 역으로 공인으로서 과연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된다."
윤씨는 기회가 되면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할 의사가 있냐는 질문에 "그것 역시 책임감의 문제"라고 답했다.
"활동 영역의 확대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책임감을 부여 받게 된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역량을 고려하게 된다. <긴급출동>도 고민하긴 했지만 지금 진행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어느 정도 해결책도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남북 이산가족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내 역량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부분 때문에 몹시 부담스러워서 못할 것 같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