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순검>은 '추리다큐'라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한 드라마다. 조선 시대 형사 사건을 집대성한 수사 보고서인 <중수무원록>을 바탕으로 했다. <중수무원록>은 형사사건에 대한 법의학적 분석과 과학수사의 다양한 방법, 그리고 실제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자세히 적고 있다. <해신>과 <불멸의 이순신>처럼 <별순검> 역시 원작이 흥미로워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하지만 <별순검>은 토요일 오후, 오락과 연예 프로그램의 협공 속에서 장렬히 '사망'했다. 시청률 저조라는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예상 가능한 '덫'에 걸려 결국 빠져 나오지 못했다. 드라마 소재로는 익숙하지 않은 '추리'와 '다큐'를 결합한 것도 모자라, 황금 시간대인 토요일 오후 5시50분에 편성해 놓고는 6~7%를 오르내리는 평균 시청률만을 탓하다니.
시청률로 인해 침몰한 프로그램이 어디 <별순검>뿐일까마는 아쉬움이 더 컸던 것은, 지난 추석의 파일럿 방송 때는 반응이 상당했다는 데 있다.
어쨌든 <별순검>은 중도하차했고, 이후 40대 시청자를 중심으로 거센 항의와 반발이 일었다. 나 역시 궁금함과 분노에 시청자 게시판을 찾았는데 당시 1만여 건의 항의 글이 올라 있었다.
시청률 저승사자, 시청자·연출자 여럿 잡았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별순검>같은 프로그램이 '시청률'에 의해 조기 종영됐는데 다른 프로그램은 어떨까. 내친 김에 TV를 잘 안 봤던 나지만 오기로라도 한 번 짚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과학수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실관계는 따져 봐야겠다.
자료를 찾아보니 <별순검>을 비롯, 올해 유난히 많은 프로그램들이 시청률 때문에 예정보다 빨리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시청률 지상주의' '시청률 저승사자'라는 말도 나옴직하다.
<맨발의 청춘>(MBC), <해변으로가요>(SBS), <돌아온 싱글>(SBS), <사랑찬가>(MBC- 10회 분 축소), <사랑한다 웬수야>(SBS- 전작이었던 <꽃보다 여자>의 8.2%보다 높은 10.8%의 시청률을 보였지만 24부작을 18부작으로 축소) 등이 조기 종영된 대표적인 드라마다. <귀엽거나 미치거나>(SBS)는 14%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가던 중 조기종영이 된 경우.
신동엽이 새롭게 시작했던 시트콤 <혼자가 아니야>(SBS)는 6개월을 계획하고 들어갔지만 평균 시청률이 9.3%에 머물자 한 달 만에 막을 내렸고, <영웅시대>(MBC)의 경우 100부작을 70부작으로 줄이기로 발표한 뒤 오히려 시청률이 오르는 기현상을 겪기도 했다. 이효리 효과를 등에 업고 시작한 <세 잎 클로버>(SBS)는 첫 방영 때 12%의 시청률을 올렸지만 4회 만에 시청률이 6.8%로 떨어져 연출자가 교체되는 유례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조기 종영한 프로그램은 대개 시청자들의 항의를 듣는다. 어쨌든 고정적으로 시청하는 이들에게는 불만이니까. 하지만 조기 종영이 환영을 받은 적도 있었다. 바로 <사랑찬가>(MBC)의 조기 종영이다. <사랑찬가>는 억지스런 내용 전개와 호적상 이모와 조카의 사랑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반대로 시청률이 높다는 이유로 방영이 연장되는 경우도 있었다. <패션70's>(SBS)가 대표적인데, 평균 시청률 20%대를 유지하는 속에서 무리하게 방영 연장을 계획하는 바람에 출연하던 연기자가 중도하차를 선언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찌됐든 조기 종영이든 연장이든 시청자나 스태프와 마찰을 일으킨 점은 분명해 보인다.
보통사람은 재미없어? 스타들, 퀴즈프로그램 독차지
드라마가 시청률 때문에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반복하고 있던 사이 다른 프로그램들은 어땠을까? 한때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퀴즈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사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퀴즈가 좋다>와 같은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을 즐겨 봤다. 실제로 예심을 보러 가기도 했으니까 단순히 즐긴 것만은 아니지만.
그런데 가만 보니, 어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퀴즈 프로그램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퀴즈 대한민국>(KBS1)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유독 일반인 출연자를 대상으로 하는 퀴즈들만 사라졌다. <퀴즈의 힘>(MBC, 2005년 1월 29일~4월 16일), <퀴즈쇼 최강남녀>(SBS, 2005년 3월 5일~4월 16일) 등이 대표적인데 이 역시 시청률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일반인 참가자들의 퀴즈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낮아 조기 종영됐다는 의심은,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상상플러스>(KBS)의 '세대 공감 Old & New'를 보면 굳어진다. 세대 차이를 보여주며 바른 말을 사용하자는 의도는 돋보이지만, 여기에는 '노현정'이라는 새로운 스타 아나운서와 탁재훈과 이휘재라는 스타가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MBC)의 '전원정답 참! 잘했어요', <스타 골든벨>(KBS) 등도 마찬가지다.
난 방송사에게 사과 받고 싶다
어찌 보면 나는 시청률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는, 땡기는 것만 골라 보는 열성적이지 않은 한 명의 시청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상업방송도 아닌 공영방송에서까지 나의 그 소소한 즐거움을 단지 시청률을 이유로 빼앗아 갈 수는 없다.
<별순검>의 한 작가는 게시판에 "이렇게 무책임하게 물러가게 됨을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라고 글을 남겼다. 나는 그 작가의 사과를 받고 싶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시청자들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은 시청률로만 모든 것을 재단하면서도 정작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은 게을리 하는 무책임한 방송사다.
그렇다면 일반인들 대신 스타를 끼워 넣고, 조기종영에 맞추느라 졸속결말을 만들어내면서 시청률을 챙기려했던 방송사들은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별순검> 자리를 메운 <강력추천 토요일>의 저조한 시청률이나 여전히 "볼 게 없다"고 말하고 있는 시청자들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렇게도 시청률이 중요하다면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곰곰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