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폭설에 힘없이 내려 앉은 전남 나주 산포면 채소 비닐하우스. 피해지역 농민들과은 물론 정치권도 '특별재난지역선포'를 촉구하고 있지만, 정작 시급한 것은  "당장에 응급복구 지원대책"이라고 말한다.
폭설에 힘없이 내려 앉은 전남 나주 산포면 채소 비닐하우스. 피해지역 농민들과은 물론 정치권도 '특별재난지역선포'를 촉구하고 있지만, 정작 시급한 것은 "당장에 응급복구 지원대책"이라고 말한다. ⓒ 전남도청
지난 4일 폭설로 양계축사 5개동이 내려앉는 피해를 입은 원항연씨. 그는 "우리는 하루가 바쁜데 정치권은 너무 느긋하다"며 정치권을 비판하고 조속한 정부 지원책을 촉구했다.
지난 4일 폭설로 양계축사 5개동이 내려앉는 피해를 입은 원항연씨. 그는 "우리는 하루가 바쁜데 정치권은 너무 느긋하다"며 정치권을 비판하고 조속한 정부 지원책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이주빈

"지금 같아서는 농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 피해농가들은 당장에 죽게 생겼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너무 느긋한 것 같다."

지난 4일 첫눈에 양계장이 무너져버렸지만 20여일이 지난 후에야 복구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한 농민은 여야 지도부와 장관 등 정치권의 피해 현장 방문에 대해 "고맙지만 씁쓸하다"고 말했다. 복구작업을 위해 이 농민은 절단기를 들고 손을 쉼없이 놀리고 있었다.

"정치인들 방문은 연례행사 아니냐"

지난 4일과 5일 폭설로 양계장 5개 동이 폭삭 주저앉았다는 원항연(45·전남 나주시 봉황면)씨는 "푹 꺼진 양계장을 보면 잠도 잘 오질 않는다"며 "철거작업을 하려고 두어번 군 장병들이 왔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폭설이 이어져 이제야 철거작업을 하고있다"고 말했다.

원씨는 육군205특공여단 장병과 부산동부경찰서 기동대 대원 등 200여명의 도움으로 이날 오전부터 쓰러진 복구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복구작업은 무너진 축사의 철구조물과 보온 덮개, 전기 시설 등 잔해물을 치우는 것이 고작이다. 실제로는 철거작업인 셈이다.

닭을 사육해온지 올해로 16년째인 원씨는 "그동안 태풍도 불고 했지만 이렇게 많은 피해를 본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며 "지금 같아서는 다시 일으켜 세워서 닭을 기를 엄두가 안 난다"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다행히 그는 지난 4일 폭설 이전에 한 가공업체와 맺은 계약에 따라 자신이 길렀던 7만여마리의 닭을 제값에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설물을 다시 세우려면 적어도 2억에서 3억원 정도가 있어야 한다"며 "지금도 빚이 몇천만원이 남아있는데 또 빚을 내서 다시 설비할 생각을 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해볼까 고민도 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와 정치권의 지원대책 마련에 불만을 터트렸다. 특히 정치권 인사들의 방문이 "고맙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는 반응이다. 그는 정치인의 방문에 "고맙기도 하지만 연례행사 아니냐"며 "우리에게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 농민들은 당장에 죽어 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하루가 급한데 정치권은 너무 느긋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정말 답답한 것은 우리는 하루빨리 부서진 것들을 철거하고 빚이라도 얻어서 다시 하든지 해야 하는데 정부가 실직적 보상책이나 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으니까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다"며 "철거 작업도 장비가 없다보니까 늦어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소한 폭설 피해 복구라도 할 수 있는 예산을 정부가 지원해줄 것을 바랐다.

이날 원씨는 자신의 피해현장을 찾은 최인기 민주당 의원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에게 "말로만 어떻게 하겠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밑바닥에서는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아야 한다"며 "재난지역으로 선포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같은 마을 한 농민은 "현장와서 사진찍고 맨날 '특별재난지역 선포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선포가) 돼야하는 것 아니냐"며 "'선포' '선포' 하지말고 지금 당장에 필요한 것을 빨리 챙겨줘야 한다"고 비판했다.

"다시 일어설 엄두가 안 난다"... 장비·인력부족으로 더딘 복구작업

원씨는 피해를 입은지 20여일만에 군 장병 등의 도움으로 축사 철거작업을 벌였다. 이 같이 복구작업이 한 창이지만 복구장비 등이 부족한 실정이다.
원씨는 피해를 입은지 20여일만에 군 장병 등의 도움으로 축사 철거작업을 벌였다. 이 같이 복구작업이 한 창이지만 복구장비 등이 부족한 실정이다. ⓒ 오마이뉴스 이주빈
한편 전남도의 경우 크리스마스인 25일에도 군인 2556명, 공무원 630명, 자원봉사자 370여명 등 모두 6700여명의 인력과 장비 400여대가 동원돼 복구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부족한 장비와 인력으로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는 전남도청 한 관계자는 "작업이라고 해봐야 지금으로서는 손으로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있다"며 "무너진 하우스에서 구부러진 철골 등을 제거해야하는데 절단기 등 장비가 없어서 비닐을 걷어내는 작업만 했을 뿐"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중앙정부의 재난 관련 예비비가 모두 18억원밖에 없다보니 신속한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재난재해지역 선포가 있어야 하지만 당장에 응급복구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정치권 관계자들이 현장을 방문하거나 일손을 도와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면서도 "피해현장에 발길이 잦아지는 만큼 재정지원이나 시급한 대책이 실제로 집행돼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전북도청 재해대책본부 관계자도 "눈삽, 전동 글라이더, 사다리 등 작업도구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며 "정부의 응급지원비가 3억정도밖에 지원되지 못해서 도와 시군 예비비를 집행하고 있지만 부족하다"고 밝혔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피해액, 특별재난지역 선포 가능할까?

지난 21일 전남지역 폭설피해 현장을 방문한 이해찬 총리는 "특별재난지역에 준하는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지원금은 내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여 피해 농민들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 21일 전남지역 폭설피해 현장을 방문한 이해찬 총리는 "특별재난지역에 준하는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지원금은 내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여 피해 농민들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 전남도청
소방방재청과 전남과 전북도 등에 따르면, 폭설로 인한 피해규모는 25일 현재 3311억5천여만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 중 전남과 전북, 광주시 등 호남지역 피해는 3천억원에 육박했다.

전남도의 경우 25일 현재 잠정집계 결과 피해액이 1780억8천여만원으로 조사됐다.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폭설 피해액은 205억여원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피해액은 2배 이상 불어날 수도 있다. 지난 20일 폭설피해액이 하루만에 100억이 늘어나기도 했다.

또 피해금액에 포함되지 않았던 시설하우스 재배 작물과 가축까지 포함한다면 농가 피해규모는 3000억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지역은 나주(428억)이고, 영암(396억), 함평(211억) 등 4개 시군이 100억원을 넘어섰다.

전북도 역시 눈덩이처럼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일 이전까지의 피해액이 433억여원이었지만 지난 20일 폭설로 540억여원의 추가 피해를 입었다. 25일 현재 974억1200만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광주시는 23일 현재 90억 2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시도의 피해액 보고에 대한 조사를 30일까지 심의 확정 통보할 예정이다. 한편 특별재난지역선포 기준은 광역시와 도의 경우 사유재산 피해가 3000억원 이상, 일선 시군의 경우 600억원 이상 규모의 피해가 발생해야 가능하다.

피해 지역주민들이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촉구하고 있고 정치권이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지만 희망사항으로 그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여야 대표 등 정치권과 총리 등 정부 관계자들의 "발길만 바빠진 모습"에 '립서비스'에만 신경쓰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해찬 총리가 밝힌 "특별재난지역선포에 준하는 지원을 하겠다"고 밝히자 지원 규모에 전남도 등은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지원책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정치권이 어떤 실질적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