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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의 생가가 있는 부여군 은산면 홍산리 입구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필귀정'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황우석 교수의 생가가 있는 부여군 은산면 홍산리 입구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필귀정'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 윤형권
지난 23일 서울대조사위원회는 황우석 교수가 2005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관련 논문은 조작된 것이라고 결론은 내렸다. '황우석 신화'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서울대조사위원회의 중간발표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가운데 황 교수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집에 가보고 싶었다. 황 교수의 생가를 가보고 싶었던 것은 서울대조사위원회의 충격적인 발표를 접한 그의 고향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또 황 교수를 낳아주고 길러준 땅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자꾸 치밀어 올라서였다.

부여에서 청양방면으로 국도를 타고 약 10여 분 정도 승용차로 달려가니 부여군 은산면 홍산2리 마을 입구가 나타났다. 인적이 드문 마을입구에는 현수막 두 장만이 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지나가는 행인을 쓸쓸하게 맞이한다.

"존경. 60억 인류에 꿈과 희망을 주시어, 한국을 빛내고 세계를 감동시킨 황우석 박사님."
"황우석 박사님 사필귀정입니다. 힘내세요!"


황우석 교수가 태어나고 초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살았던 집
황우석 교수가 태어나고 초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살았던 집 ⓒ 윤형권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탯줄을 묻고 초등학교까지 자란 부여군 은산면 홍산리 2구 마을은 5~6가구가 올망졸망 모여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황 교수의 생가는 동네에서 맨 위쪽에 있는데 흙돌담이 쳐진 조그마한 초가집 형태의 세 칸 방 집이다. 지금은 양철지붕으로 개량하고 벽과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여 아담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한 동안 영웅의 탄생지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갔음을 짐작케 하는 간이화장실이 집 오른쪽 텃밭에 있다. 황 교수가 어릴 적 감을 따먹었다고 하는 감나무 세 그루가 요즘의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서 있고, 어른들은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방 문짝은 구름 낀 동쪽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가 죽을 때 살던 굴 쪽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말로 '고향을 그리워 한다'는 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고향은 어머니 품처럼 따뜻해서 힘들어 할 때 고향을 찾으면 언제나 반겨준다. 황 교수를 낳아주고 유년시절의 정서를 심어준 그의 고향은 황 교수에 대해 관대했다.

황 교수의 생가 바로 아랫집에 사는 황모(70, 남)씨는 "황우석이가 거짓말 할 사람이 아니다. 얼마나 성실하고 착하게 자랐는데…, 아마도 미즈메디라고 하는 병원에서 줄기세포가 바뀌었다는 부분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서울대조사위원회의 중간발표에 대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황 교수가 태어날 때 당시 열대여섯 살이었다고 하는 또 한 분의 할머니를 만났는데, "속상해서 오늘 점심도 못 먹었어. 말 시키지 마"라며 '홱' 돌아선다. 황 교수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해 못마땅하다는 반응이다.

부여읍내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30대의 청년 박모씨는 "황 교수 같은 사람이 논문을 조작했다면, 나름대로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았겠냐?"며 황 교수를 옹호했다. 황 교수의 논문조작에 대해 국민 여론은 황당하고 허탈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데 비해 그의 고향 사람들은 비판적이기보다는 온정적인 시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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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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