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꽃잎들이 떨어져 흩날린다. 그 꽃잎들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요절한 예술가들인 듯 애처롭다. <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은 11명의 예술가들의 생애와 재능, 작품을 어루만지듯 써내려간 책이다. 천재적 재능을 세상에 펼쳐보였지만 영광은 짧기만 했던 그들의 삶이 부러움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첫 인물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배우 장국영. 홍콩영화의 부흥을 이끌었고 연기력을 인정받은 아시아의 스타였지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그의 외모는 배우로서의 활동에 어려움을 가져오기도 했다. 2003년 만다린 호텔 24층에서 투신, 목숨을 잃었다. 당시 나이 46세,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에곤 실레. 두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정도로 천재적 소질을 보인 화가. 자신의 이른 죽음을 예감한 것인지 실레의 그림은 죽음을 소재로 한 것이 유독 많으며, 굳이 죽음을 소재로 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그림의 상당수는 죽음의 음울함으로 가득 차 있다. 독감으로 급사할 때까지 28년 동안 3000여점의 그림을 남겼다.
'10년간 성장하고, 10년간 배우고, 10년간 춤추고, 30년간 나락에 떨어져 있었다'(리처드 버클)는 '발레의 신' 바슬라프 니진스키. 61세에 타계했지만 그가 무대에서 춤출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전성기는 5년 남짓. 그 짧은 기간 동안 '인간의 동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경이적인 춤들을 보여 주었고 삽시간에 무대에서 사라졌다.' 25세에 정신착란이 찾아들었고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은 암흑과도 같은 광기의 세계에서 헤매었다.
<위대한 개츠비>로 명예와 인기, 부를 한꺼번에 획득한, 그 자신 개츠비와 같은 삶을 살았던 F. 스콧 피츠제럴드. 화려한 생활로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위대한 개츠비>에 버금가는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후에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은 <라스트 타이쿤>을 채 마무리하지 못하고 알콜중독과 약물남용으로 44세에 사망했다.
3대 여성 재즈 보컬로 불리는 빌리 홀리데이. 영혼을 담아 부르는 그의 노래는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셨지만, 흑인이라는 점이 활동 내내 걸림돌이었고, 폭력적인 남편들로 인해 고통받았다. 마약남용과 알콜중독으로 44세에 세상을 떠났다.
'검은 피카소'라는 별명의 장 미셸 바스키아. 낙서풍의 독특한 화풍으로 명성을 얻었고, 인종주의, 흑인 영웅, 도시 풍경, 만화 주인공 등을 다룬 작품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앤디 워홀과 공동작품을 제작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가 27세의 나이에 코카인 중독으로 급사했다.
이외에도 비틀즈의 리더이자 평화운동가인 존 레논, 10년 남짓한 연주기간 동안 30여장에 달하는 음반을 남긴 첼리스트 자클린느 뒤 프레, '인터내셔널 끌랭 블루'라는 색채를 창조했고 모노크롬 작업으로 유명한 화가 이브 끌랭, 우아한 라인으로 특유의 스타일을 구축한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가장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의 삶이 담겨 있다. 저자는 또한 각 예술가의 작품 하나를 선정하여 '최후의 마스터피스'로 소개한다.
어쩌면 이 책은 천재적 예술가들의 생애를 다룬다는 소재의 측면에서는 평범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한편 매혹적인 것은, 잘 모르던 예술가의 작품을, 별 관심이 없던 분야의 예술을 접해보고 싶게 만든다는 점이며, 작품의 새로운 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배우의 영화가, 가수의 노래가, 작가의 글이, 발레리노의 공연이 그리워졌다.
저자의 찬사에 다시 찾아보게 된 <패왕별희>의 장국영에게서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훌륭한 연기는, 그의 미모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홍콩 예술기관 '헨더슨 아트리치'가 중국영화사 100년을 돌아보며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장국영은 최고의 남자배우로, <패왕별희>는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기뻐했을까.
덧붙이는 글 | * 장궈룽이라고 해야 옳겠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름인 장국영으로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