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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집 주인은 당의에 묻은 티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내가 가리키는 앞섶의 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인은 내 처분만 바란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침묵했다.
이번 겨울방학에 나는 두 딸에게 한복을 맞춰주기로 했다. 사실 한복은 일상복이 아닌지라 자주 입게 되는 옷은 아니다. 명절이나 축제가 있을 때 그저 한두 번 입게 되는 옷이다. 하지만 외국에 살다보면 우리의 전통 의상을 입게 될 일이 가끔은 있어 그때마다 빌리는 게 여의치 않아 이참에 아예 큰 맘을 먹고 맞추기로 한 것이었다.
한복집에 비치된 카탈로그에는 다양한 한복들이 선을 보이고 있었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한복들을 구경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어울릴 한복을 골랐다. 꽃처럼 피어난 두 딸들이 입게 될 예쁜 한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일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드디어 주문한 한복을 찾기로 한 날, 나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OO 주단'이라는 화려한 간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나 한복집 주인이 내놓은 두 벌의 당의를 보는 순간 그만 실망하고 말았다.
앞섶에 가뭇가뭇한 티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티만이 아니었다. 당의 소매 끝도 제대로 맞지 않아 한 쪽이 5밀리 정도 삐져나와 있었다. 한복 전문점 매장의 환한 불빛과 대형 쇼 윈도우가 보여주는 화려함이 무색할 정도였다.
"아니, 어떻게 양 소매 끝이 맞질 않아요? 한복 전문가가 하신 거 맞아요? 그리고 고름은 웬 흰색이에요? 남색으로 하기로 했잖아요. 그리고 여기 섶에 삐죽 나와 있는 것은 또 뭐예요?"
처음 한복을 맞출 때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한복을 보고 있노라니 실망스럽고 화가 나기도 했다. 마음 같아선 한복집 주인에게 큰 소리라도 치면서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점잖은(?) 체면에 그렇게 함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흥분을 가라앉히며 나는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아니, 외국에 선 보일 옷이라며 더욱 신경 써서 해 주신다더니 어떻게 이렇게 성의 없이 하셨어요. 바느질을 처음 하신 분도 아니실 텐데 말예요."
"당의는 한복보다 더 어려워요. 이 분이 솜씨가 있는 분인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듯 말끝을 흐린 한복집 주인은 곧장 전화를 걸어 당의를 지은 아주머니를 가게로 불러 들였다. 조금은 미안한 얼굴로 양해를 구할 줄 알았던 바느질 아주머니의 태도는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영 딴 판이었다.
"이거 티 말예요? 원래 있던 거예요. 천에 있던 거니까 할 수 없어요. 소매 양끝이 안 맞는다고요? 이런 정도는 괜찮아요. 그리고 그건 물실크라서 그래요. 본견보다 어렵거든요. 양 끝 맞추기가 쉽지 않아요. 물실크는 말을 안 들어요. 손에서 잘 빠져 나가기 때문이에요. 입으면 이런 거 잘 안 보여요. 그러니 괜찮아요. 대충 입으면 되는데 굉장히 꼼꼼하신 분인가 보네요."
'아니, 당신 전문가 맞아요? 어떻게 대충 입으라는 거예요. 눈이 다 있는데…. 물실크라서 어렵다고요? 소재가 문제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 하시지요.'
"어떻게 대충 입고 다녀요? 큰 맘 먹고 한 옷인데요. 그리고 여기 묻은 티 말이에요. 원래 한복 천에 그게 묻어 있었다면 그 부분은 피해서 재단을 했어야죠. 이렇게 눈에 띄는데 어떻게 그렇게 무신경하게 옷을 지을 수 있나요. 그리고 여기 소매말예요. 전문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아마추어도 아니신데…."
"입으면 잘 안 보인다니까요."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 채 소재 탓만을 하고, 대충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는 바느질 아주머니와 논쟁을 벌이는 건 무의미했다. 결국 잘못된 옷고름과 소매는 다시 고쳐받고, 머리에 쓰는 '아얌'을 보상으로 받기로 하고 나는 이 껄끄러운(?) 합의를 끝내고 말았다. 물론 내 솔직한 생각은 당의를 다시 물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도 없고, 매몰차게 물리는 것도 인정상 마음에 걸려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번 '한복 사건'을 보면서 나는 전문 기술자를 칭하는 한복의 '장이'가 "입으면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다" "대충 입어도 되는데…"라며 도리어 나를 까다로운 사람으로 모는 걸 보면서 문득 황우석 박사의 기자회견이 생각났다.
"발표된 11개의 맞춤형 줄기세포가 한 개면 어떻고, 세 개면 어떠냐."
과학에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저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만큼 어처구니 없는, 아니 부끄러운 과학자의 해명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지난 여름에 말했던 황 박사에 대한 발언을 취소하고 싶어졌다.
"TV에서만 보던 황 박사를 직접 보니까 대단하대요. 건장한 경호원들이 그를 호위하며 다니는데 대통령이 따로 없더군요."
지난 8월, 우리와 가깝게 지내던 A교수가 캘리포니아 대학의 어바인 캠퍼스에서 개최된 재미과학자들의 연례 학술대회인 'UKC 2005'에 참석하고 돌아와 황 박사 이야기를 전하며 놀라워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럼요.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낸 '대한민국 국보'인데 그런 정도의 경호는 당연하죠.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 과학상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인물이니 그보다 더한 대우가 필요할지도 모르죠.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그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으니까요."
'황우석 신화'가 철저히 깨진 이 시점에서 이제 우리는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한복장이의 "그깟 티, 잘 안 보이니까 대충 입어도 괜찮다"는 말이나 "한 개면 어떻고, 세 개면 어떠냐"는 과학자의 '대충주의'가 정말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를….
그동안 우리가 숱하게 목격한 사건, 사고들 역시 알고 보면 이런 '대충주의'가 잉태한 자업자득의 사건들이 아니었던가. 우리 사회에 만연된 '대충주의'의 쓴 뿌리를 이제는 확실히 제거해 나가야 한다. 중병이 든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선 정말이지 '대충 대충' '빨리 빨리'의 못된 태도를 버릴 때에만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