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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모습.
회의 모습. ⓒ 전희식
교장선생님이 제시한 방안은 아주 이상적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돈을 잃어버린 학생이 생기면 공동모금을 통하여 그 돈을 마련해준다'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은 이렇게 하면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00학교공동체 안에서 남의 것 훔쳐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각성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피력했다.

차례대로 간단하게 의견을 내놓기만 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다수의견으로 전체의 동의를 모아가는 회의기법인 '원탁회의'로 진행된 이날의 회의에 처음 등장한 의견들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대안학교다운 색다른 고심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범인을 꼭 잡자. 교장선생님이 찾아 달라.'
'범인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돈을 훔쳐간 사람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장난으로 했을 수도 있다.'
'범인을 잡되 공개하진 말고 비밀리에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마음을 고치게 하자.'
'범인을 잡으려고 하지 말자. 반성할 기회를 더 주자.'
'모금해서 돈을 주면 돈 잃어버렸다고 거짓말 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잡히지 않고 처벌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 도둑질하고 강도질 할 것인가?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범인을 잡아 처벌하면 다시는 절도사건이 안 생길 것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처벌의 공포를 가지고 예방하기보다 도덕적 자각과 양심의 회복으로 예방되게 해야 한다.'
'처음도 아닌데 이번에는 범인을 잡아내자.'
'이 회의의 가장 큰 목표는 남의 물건 훔치지 않는 학교 만들기이다. 돈 훔친 사람 잡는 것이 마치 유일한 대안이라는 생각부터 바꾸고 더 고민해 보자.'


근 마흔 명에 육박하는 식구총회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서너 번씩 발언을 하는 동안 다수의 의견은 여러 갈래로 뭉쳐졌다 흩어지곤 했다. 세 시간여만에 모든 참석자가 합의에 이른 결론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고 그 결론에 따라 진행된 다음 순서는 감동의 시간이었다.

- 우리 학교에서 또 다시 도난사건이 발생한다면 이렇게 참회하겠다는 각자의 결의를 밝힌다.
- 개학할 때까지 돈 훔쳐간 사람이 스스로 뉘우치고 고백할 기회를 준다.
- 개학해도 돈 훔쳐간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각자의 결의대로 참회활동을 일제히 시작한다.
- 잃어버린 돈의 액수에 이를 때까지 공동모금을 실시하여 잃어버린 사람에게 전달한다.


이 결정에 따라 모든 회의 참석자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합장을 하고 결의를 밝히기 시작했다. 한 학생은 그랬다. 또 다시 도난사건이 생기면 자기는 알 수는 없지만 돈 훔친 친구에게 정성어린 편지를 써서 게시판에 붙이겠다고 했다. 어떤 학생은 물건을 잃어버린 학생에게 위로의 안마를 해 주겠다고 했다.

뽀뽀를 해 주겠다는 학생도 있었고 모금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학생은 식당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고 또 다른 학생은 화장실 청소를 하겠다고 했다. 신발장 신발을 정리하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학교가 내 건 '밝은 사람'이라는 교육이념에 맞게 절도사건을 다루는 이날의 회의는 내내 밝은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돈을 잃은 학생에게 위로의 뽀뽀를 해 주겠다고 한 학생이 밝히자 그 옆의 학생은 볼이 아니고 입술에 뽀뽀해 주겠다고 했고 또 그 옆의 학생은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물론 그 학교 모든 사람들에게 뽀뽀해 주겠다고 하여 폭소가 일었다.

밝고 진지했던 이날의 회의를 모든 참석자는 만족스러워했다. 그 밝은 기운이 도둑질은 물론 학교 안의 모든 어두운 기운을 몰아내리라 여겨졌다. 회의가 끝나고 모든 참석자는 어깨동무를 하고 "모두 사랑합니다. 모두 믿습니다"라고 합창을 하는 것으로 세 시간여의 회의를 마무리했다.

덧붙이는 글 | 여기 나온 대안학교는 강화도의 '마리학교'이다. 나는 학부모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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