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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빛 좋은 개살구'를 결사 반대했지만, 후배는 고민을 쉽게 정리하지 못했다. 그 회사와 관련된 모든 노동계 소식을 알아본 나는 반대의 이유를 더욱 확고히 했고, 후배에겐 지역기업의 장점들을 줄줄이 나열해주었다.
"진짜 간다고 하면 면접 보러 가는 날 서울행 철도레일에 확 드러누워 버린다! 농담인 것 같지!?"
설마 그러진 않겠지만 내가 너무나도 강하게 나오자 후배는 서울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후배가 어딜 가든 무슨 상관이냐며 얘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후배가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직장생활하길 원치 않았다.
우리는 바로 면접준비에 돌입했다. 시간은 빠듯했다. 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모의면접을 몇 번 본 경험이 있는 나는 직접 실전에 써보진 않았지만 터득한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인사 각도에서부터 마무리 표정까지 내가 취업 컨설팅 쪽에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닌가 잠시 착각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알려주었다. 후배의 취업에 너무 깊숙이 빠져든 나머지 그 회사 인사담당 '김' 부장이 되어 직접 면접을 보는 희한한 꿈을 꾸기도 했다. 드디어 면접 날이 다가왔다.
면접을 두 시간 남겨놓고 후배한테 전화가 왔다.
"선배, 치마가 안 맞아요! 어떡해요? 난 몰라∼ 한 달 전에 산 건데…."
"다른 건 전혀 없어?"
"꽃무늬밖에 없는데, 그건 안 되겠죠? 아, 잠시만요. 선배, 이따가 지하철에서 봐요."
무슨 좋은 생각이 났는지 후배는 급히 전화를 끊었고 언니 것인지 어머니 것인지 모를 좀 고상한 검정색 치마를 입고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나는 치마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면접 때문에 화장을 한 후배는 예뻤다. 얼굴을 마주하자 갑자기 정신 못차리고 벌렁거리는 마음을 나는 급히 진정시켰다.
"선배, 어디 아파요?"
"괜찮다. 자, 프리젠테이션 연습은 해왔지?"
면접장소로 향하는 한 시간 동안 프리젠테이션과 함께 그 회사의 경영이념, 사업내용 등과 관련된 예상 질문을 던지며 답변을 연습했다. 후배의 목소리는 또랑또랑했고 나는 이동하는 내내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도착해서 마지막 '아자!'를 외치고 후배는 잠시 머뭇거렸다.
"선배, 저 잘할 수 있을까요?"
"내가 면접관이라면 바로 뽑는다! 잘할 수 있는 거 마음껏 뽐내고 와! 압박 질문에 절대 기죽지 말고, 너의 큰 목소리로 먼저 기선을 제압하는 거야. 알겠지?"
"네! 선배, 여기까지 같이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말로만? 나중에 첫 월급타면 나도 내복 한 벌 예약이다. 빨간색 말고."
그리고 며칠 뒤, 면접 통과 소식에 인적성검사 시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우린 얼싸안고 기뻐했다. 후배는 뭔가 보답을 하고 싶어했지만 나는 사양했다.
"이제 들어가서 어떻게 생활할지가 문제야. 빨리 커서 나도 덕 좀 봐야지.(웃음)"
나중에 각종 신입사원 관련 책들만 소개해주고 후배의 취업에서 손을 뗐다. 회사에 들어가면 앞으로 신경 쓸 일이 많을 테니 연락할 틈도 없을 거라고. 너는 이제 그 조직 사람이니까 나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고 있겠다고 말했다. 후배도 이제 학교를 벗어나면 '정신적 지주'를 그곳에서 찾아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허둥대지 않고 잘하고 있을까? 요즘은 후배 소식이 무척 궁금하다. 아니, 무척 보고싶다.
덧붙이는 글 | '2005 나만의 특종' 응모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