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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학련 3인방(왼쪽부터 유인태, 이철, 서경석)과 박근혜 대표.
민청학련 3인방(왼쪽부터 유인태, 이철, 서경석)과 박근혜 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화해할 뻔했는데…."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까지 선고받았던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이 최근 한 사석에서 한 말이다. 유 의원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만났던 1995년 당시를 또렷이 기억했다. 장소는 선릉역 근처 모 한정식집이었다. 박 대표 정계입문 전의 일이다.

이날 모임에는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전 의원)과 서경석 목사(선진화정책운동 공동대표)가 함께 했다. 이들 역시 민청학련 사건으로 각각 사형과 20년형을 선고받았다. 식사를 겸한 이날 만남은 이철 사장이 주선했다.

이철과 박근혜의 인연 아닌 인연

이 사장과 박 대표의 '인연'은 부모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절은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으로 서슬퍼런 공안 정국이 조성된 1974년경. 이 사장의 부친은 중앙고등학교 상담교사였다. 박 대표의 동생인 지만씨가 이 학교에 입학하면서 두 집안의 인연은 시작됐다.

지만씨가 입학한지 얼마 안돼서 학교 선배에게 얻어맞는 일이 발생했고 상담교사였던 부친과는 여러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던 것. 학교생활 적응이 걱정된 박정희 대통령 내외는 어느 토요일 오후 이 학교 교사 모두를 청와대로 초청했는데 아들이 수배 중인지라 마음이 부대낀 이 사장의 부친은 당직을 자처해 학교에 남았다. 하지만 육영수씨가 차까지 보내는 바람에 뒤늦게 오찬에 참석했다고 한다. 이 사장의 부친을 대하고 얼굴이 붉어졌던 박 대통령과 달리 육씨는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라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고 한다.

이후 이 사장은 박지만씨가 마약 문제로 경찰에 구속되었을 때 면회도 가고 탄원서도 제출했다. "우리도 희생자이지만 그 역시 시대의 희생자 아닌가"라는 생각에서다. 또 박 대표가 야인으로 지내던 80년대 중반엔 가끔 만나 함께 테니스를 치기도 했다고 한다.

10년 전 민청학련 출신들과 박근혜 대표의 만남은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었다. 이 사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연 유족이 있기 때문에 과거 잘못을 바로잡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화해 시도였다.

"당시 분위기는 좋았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서경석 목사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얘기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철 사장은 "박 대표가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무리한 사건인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위로를 표시하기도 했고…. 그래서 다음날 우리가 박 대표측에 성명서라도 발표하자고 제안했다. 사적으로 만난 자리였지만 성명서를 내서 (인혁당 사건에 대한) 국민 감정을 움직이는 전기를 마련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거절했다. 공개적으로 하는 걸 싫어하는 것 같더라."

박정희 정권과 '화해'의 단초를 마련하려던 시도는 이렇게 무산되었다.

달라진 박근혜 "안타깝다"→"모함"

그후 10년이 지나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재심 결정이 났다. 이른바 인혁당 사건은 1974년 국정원의 전신기관인 중앙정보부가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민청학련 배후에 '인혁당 재건위'가 있다고 발표한 대표적인 간첩 조작사건이다. 최근 국정원은 과거사진실위원회를 통해 두 사건을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 발표했고, 대법원 판결 후 불과 20여 시간만에 이뤄진 사형집행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가 있었다는 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지금 "가치 없는 모함"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달라진 태도에 대해 이철 사장은 "자신들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 아니겠냐"라며 "안타깝다, 오히려 앞장서서 풀 수 있는 문제인데…"라고 말했다.

유인태 의원은 "유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며 "공인이 되었으면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대신해서 풀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정말 박근혜 대표와 화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경석 목사는 "박정희 과오에 있어 공에 대해 정직하게 인정해야 하듯이 과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인정하는 태도가 맞다"고 꼬집었다. 또한 법원의 재심 결정에 대해 서 목사는 "박정희 정권 하에서 가장 억울했던 대표적인 사람들"이라며 "마땅히 되었어야 하는 일"이라고 크게 환영했다.

법원의 재심 결정이 난 후 박 대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계진 대변인은 "따로 보고하지 않았고, 말씀이 없으셨다"고 밝혔다.

10년 전 민청학련 3인방과의 만남에서 '유감을 표시한 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박 대표측은 공식적인 확인을 피하며 "비공식적인 자리였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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