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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매
<카스트로의 쿠바(원제 Fidel's CUBA)>는 쿠바혁명 40주년을 맞이하여 발간된 사진 에세이집으로 '쿠바혁명과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체 게바라'를 생생한 감동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

이 사진 에세이집에 수록된 100여 장의 흑백사진들은 세계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또한 사진들마다 사진가의 회상이 수필 한 편씩을 이루고 있는데 사진만큼이나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로, 사진을 통하여 보는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이 독특한 매력으로 전해진다. 흑백의 사진들마다 강렬하고 의미 또한 깊으며 사진 한 장마다 감동적인 이야기 한편들이다.

사진을 찍은 주인공은 '오스왈도 살라스'와 '로베르토 살라스' 부자로 이들은 혁명의 현장에 늘 밀착되어 있었다. 그것도 혁명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카스트로가 선택한 사진가여서 그만큼 가까이 밀착하여 수많은 이야기들을 사진으로 찍어 냈으며 관련한 이야기들을 많이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들의 사진은 혁명을 성공하게 하였으며 세계인들의 가슴에 깊고 강렬하게 파고들었다.

책 속에서 만나는 흑백의 사진들은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 낼 줄 알았던 살라스 부자에 의한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쿠바혁명 생생한 기록들이다. 또한 사진가 자신들의 이야기다. 이 책을 펼쳐들 독자들은 사진과 짧은 에세이로 구성된 이야기가 지닌 방대함에 놀라고 말 것이다. 이들의 사진을 통하여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뒤를 따라가는 동안 이들의 인간적인 매력에 또한 놀랄 것이다.

쿠바 혁명은 성공했지만 쿠바인들의 삶은 더 나아진 것 없이 여전히 힘들다. 그러나 쿠바인들에게 최고의 지도자는 변함없이 피델 카스트로뿐이다. 체 게바라는 39살의 나이에 죽었지만, 책은 물론 영화로도 끊임없이 제작되는가 하면 여전히 세계인들의 많은 관심과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가?

한 순간도 혁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사나이 피델 카스트로의 이야기와 쿠바혁명의 현장이, 살라스 부자의 탁월하고 독특한 감성과 사진가의 열정으로 생생하게 전해져온다.

혁명의 숨 가쁜 현장과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그리고 민중들

▲ 피델 카스트로
ⓒ 황매
센트럴 파크 앞을 지나고 있는 변호사 카스트로의 모습이다. 세계인들에게 혁명 지도자 카스트로의 모습은 구김이 많은 푸른 제복과 덥수룩한 수염에 모자를 쓴 모습, 민중에게 연설하는 모습 등으로 많이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사진 에세이집에서는 이런 모습과는 다른 의외의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굵은 역사의 줄기 속에 가려진 이면의 이야기들이나 모습이 또 다른 감동으로 전해져 온다.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사진이 그 중 하나로 아버지 오스왈도 살라스가 찍었다. 카스트로는 게릴라가 되기 전에 말끔한 정장을 즐겨 입는 변호사였고 소일삼아 가난한 노동자의 사진 스튜디오에 자주 들렀다. 책 속의 사진마다 회상을 적고 있는 아들 로베르토 살라스는 이때 14살로 카스트로에게 커피를 자주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사진마다 들려주는 회상기가 독특하고 재미있다.

▲ 야구하는 피델 카스트로
ⓒ 황매
쿠바인들은 야구를 좋아하며 카스트로 역시 야구를 좋아하고 즐겼다고 한다. 책 속 사진들을 보다가 시계를 두 개 차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카스트로는 산 속에서 늘 두 개의 시계를 찼는데 이것은 하나의 시계가 멈추는 만약의 경우에 또 다른 시계로 동료들과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이런 이야기만이 아닌 카스트로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들과 이야기가 많이 보인다. 그래서 집어 든 순간 여간해서 놓기 힘든 책이다.

▲ 연설하는 피델 카스트로
ⓒ 황매
1964년의 피델 카스트로. 연단에 서서 청중을 매혹하는 피델 카스트로의 능력은 대단하였으며 이와 관련된 전설적인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온다. 대부분의 웅변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되고 밤새 계속되기도 예사였으며 민중들은 열광하였고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웅변가의 어깨에는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오랫동안 평화롭게 즐기다 가곤 하였다. 청중들은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쿠바의 종교에서 비둘기는 마법을 상징).

피델 카스트로는 자석 같은 연설가였다고 사진가는 회상한다. 부패한 정권 바티스타에 대한 청중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고 양키달러로 대표되는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와의 만남
ⓒ 황매
아르헨티나 출신의 게릴라 게바라에게 쿠바인들은 아르헨티나식 최고 감탄사 'Che(hey man)'를 붙여 '체 게바라'라고 부르길 좋아하였다. 전직 변호사 카스트로와 전직 의사 게바라는 29살과 27살에 만났지만 만나기 전부터 각각 다른 곳에서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나 쿠바 혁명을 이끌었다. 5장에서 체 게바라 이야기를 풍성하게 접할 수 있다.

게릴라가 되기 전의 체 게바라는 사진으로 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기자들의 카메라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언론 앞에 늘 수줍어했다고 한다. 카스트로는 물론 체 게바라와도 밀착되어 있었던 사진가의 회상을 통하여 체 게바라의 인간적인 면모를 더 깊은 감동으로 만날 수 있다. 세계에 많이 알려진 체 게바라의 사진들은 대부분 이 사진가에 의해서다.

▲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 최고의 지도자다
ⓒ 황매
이 사진은 사진가의 열정 덕분에 멋지게 탄생한 사진이다. 카스트로의 조각상 같은 이 사진을 쿠바인들은 좋아한다. 사진가를 미처 알아보지 못한 군인에 의해 폭행당한 사진가가 아픈 배를 움켜잡고 트럭에 누운 채 찍어서 이런 구도의 사진이 탄생했다. 사진가의 열정도, 사진도 멋있다.

이 사진집은 순수하게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멋진 기회가 될 것이다. 사진을 따라 혁명가와 함께 고산지대의 오솔길을 걷는가 하면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작전을 짜며 가득 피워 올린 시가연기로 자욱한 방안도 엿볼 수 있을 것이며 쿠바 민중들과 함께 카스트로의 자석 같은 힘에 열광하기도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카스트로의 쿠바-체 게바라와 함께 한 혁명의 현장>

-그레고리 토지안 글/오스왈도 살라스, 로베르토 살라스 사진/홍민표 옮김/황매 2005.12,26/1만 2천원

오스왈도& 로베르토 살라스는 1959년 카스트로의 혁명이 성공한 후 새 정부의 기관지인 <혁명>에서 수석 사진기자로 일했다. 그들은 쿠바 포토 저널리즘(1959~65)의 황금기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유명한 사진으로 쿠바의 가장 극적인 기간을 기록했다.

아버지인 오스왈도 살라스는 1992년 사망했고 로베르토 살라스는 현재 아바나에 살고 있으며 사진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카스트로의 쿠바 - 체 게바라와 함께 한 혁명의 현장

그레고리 토지안 지음, 홍민표 옮김, 오스왈도 살라스.로베르토 살라스 사진, 황매(푸른바람)(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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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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