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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첫 해가 솟았습니다
병술년 첫 해가 솟았습니다 ⓒ 박희우
처남이 자기가 다니는 회사를 손으로 가리킵니다. 장모님은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이렇게 큰 회사는 처음 본다고 말합니다. 장모님은 처남더러 열심히 근무하라고 당부합니다. 바닷가가 보입니다. 처남이 방파제 옆에 차를 세웁니다.

"간절곶은 차가 밀려서 못 들어갑니다. 바로 저기 있지요? 저곳이 바로 간절곶입니다."

처남이 조금 떨어진 곳을 가리킵니다. 등대불이 보입니다. 바로 그곳이 간절곶입니다. 처남은 간절곶에서 해돋이를 보나 이곳에서 보나 똑같다고 말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곳도 간절곶입니다. 간절곶보다 위치가 조금 낮을 뿐입니다.

바닷가 널찍한 공간에서 모닥불이 활활 타오릅니다.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농악대가 한바탕 놀고 있습니다. 아직 해가 뜨려면 조금 있어야 합니다. 고사상이 보입니다. 상 위에 돼지머리가 올라 있습니다. 시루떡도 올라 있고 과일도 올라 있습니다. 고상상 앞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큰절을 올립니다.

조금 있으면 2006년 병술년 새해가 떠오릅니다. 사람들이 바다를 향해 서 있습니다. 낚시꾼이 갯바위에 대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지 낚시꾼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바다는 아직 어둡습니다. 저는 장모님, 아내, 처남, 처남댁에게 차례로 새해 소망을 물어봅니다.

갯바위 틈새에 해가 떴습니다
갯바위 틈새에 해가 떴습니다 ⓒ 박희우
장모님 : 자식들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 내 : 우리 새하 아토피 좀 나았으면 좋겠어요.
처 남 :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처남댁 : 얘 아빠 담배 좀 끊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바다를 바라봅니다. 어둠이 걷히는지 등대불이 희미합니다. 이제 수평선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고깃배가 수평선에 걸려 있습니다. 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며 바다 위를 날고 있습니다. 구름이 붉게 달아오릅니다. 이제 얼마 안 있어 해가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구름이 차츰 연분홍색을 띱니다. 구름을 타고 붉은 기운이 퍼져나갑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합니다. 수평선에서 바로 해가 솟아오르지 않습니다. 작년에는 아니었습니다. 수평선에서 해가 바로 솟았습니다. 그 모습에 모두들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그제야 깨닫습니다. 올해는 수평선 바로 위에 구름이 끼었습니다.

구름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합니다. 마치 산 능선에 불이 붙은 것 같습니다. 강렬한 태양에 밀려 구름이 옆으로 쫙 퍼집니다. 드디어 해가 구름 사이를 비집고 머리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숯덩이처럼 빨갛습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습니다.

빨간 불덩이입니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가슴에 품고 싶은 충동 같은 걸 느낍니다. 형언 못할 감동 같은 게 밀려옵니다. 아내, 장모님, 처남, 처남댁은 솟아오르는 해를 향해 두 손을 모았습니다. 경건하게 소원을 빕니다.

간절히 소망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소망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 박희우
해는 계속해서 소록소록 올라옵니다. 벌써 반쯤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급하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정말 잠깐이었습니다. 어느새 해가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눈부신 태양이었습니다. 저는 손으로 눈을 비볐습니다. 그때 아내가 묻습니다.

"당신 소원은 뭐예요?"

저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마땅히 소원 같은 게 없습니다. 저는 겨우 "가족들 건강하면 되지 뭐"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알 수 없는 것이, 새로운 희망 같은 게 새록새록 솟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이었습니다.

올해는 병술년입니다. 저 또한 1958년 개띠입니다.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바로 거기에서 나왔을 겁니다. 저는 속으로 은근히 기대해 봅니다. 올해는 좋은 소설 한 편쯤 썼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저는 비로소 활짝 웃어 보입니다. 아내와 장모님, 처남, 처남댁도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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