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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해를 맞이하여 개처럼 다른 사람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는 삶을 살아야겠다. 나보다 어렵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내 삶의 한 부분을 내놓아야겠다. 이런 생활이 인생의 절반을 넘게 살아온 나의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줄 것이다. 사회와 경제의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최대의 관심사이자 풀어야 할 숙제가 되어버렸다. 쉽게 풀 수 없는 문제다. 아니 우리 자신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로 남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우선 다른 사람보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조금이라도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자꾸 빈손만 내밀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있는 사람이 자꾸 빈손을 벌린다는 것이다. 사회에 정치에 국가에. 재벌도 그렇고 권력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고 떼도 쓰고, 가끔은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지금 보다 더 많은 권력과 힘을 갖기 위해 약한 자의 편에 서기보다는 강한 자의 편에 서서 더러운 웃음 짓는 사람들을 볼 때면 너무나 슬퍼진다. 아니 우리나라의 희망이 손바닥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느껴진다.
재벌은 더 많은 이익을 만들어 내기 위해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과 공장의 분사를 통해 재벌의 부 축적만을 위해 노동자들을 이용하고 악용한다. 이럴 땐 자본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 신자유주의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부의 대물림이나 권력의 대물림과 마찬가지로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다. 언론도 그렇고 교회도 마찬가지다. 대형화와 집중화가 심해지고 있다. 이런 대형화와 집중화는 결국 양극화를 가져오게 된다. 언론의 집중화와 대중화는 '황우석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언론의 자만과 권력화가 언론의 사명과 본분을 망각하여 일어난 일이다.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육은 더더욱 큰 양극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모든 양극화 문제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겨레> 신문을 보면 앞으로도 이러한 교육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현재 전국의 특수목적고는 122곳이다. 이 가운데 이미 '입시 목적고'로 자리를 잡은 과학고와 외국어고가 각각 18곳, 25곳이며, 학생 수는 전체 일반계 고교생의 1.8% 정도인 2만3천여명이다. 전국 6개 자립형사립고(자사고)의 학생 5100여명을 더하면 2.2%가 '입시 명문고'에 다니는 셈이다.
이에 더해 교육인적자원부는 내년부터 자사고를 20곳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산술적으로 보면 과학고와 외국어고, 자사고 졸업생만으로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이른바 명문대 신입생 정원을 채우고도 남는다.
특수목적고는 이미 '특수목적고'가 아니다. 상위 5%를 다니는 학생들과 나머지 95%의 학생들의 학력차가 갈수록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해 보인다. 실질적으로 평준화의 무력화나 마찬가지다.
여기에 내년부터는 수준별 이동수업이 전국 초·중·고등학교로 확대된다고 한다. 수준별 이동수업은 긍정적으로 보면 수요자의 능력과 실력에 맞추어 이루지는 맞춤식 학교수업이지만,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문제가 심각성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수준별 수업이라는 것 자체가 실질적으로 우열반으로 편성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수업의 연속성이나 유연성이 부족하여 대부분의 반편성이 학기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습효과가 반감되고 학생간의 학습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그리고 평가에 대한 기준이나 제도가 뒷받침이 되지 않기 때문에 교재의 획일화가 발생하여 교육내용의 차별화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학습교재와 수업시간, 학과 담임은 1년 단위로 편성 되기 때문에 1년 동안의 학습 후에 수준별 수업의 효과에서도 심한 양극화가 발생한다. 상위 수준반에 편성된 학생들은 더 많은 학습 결과를 얻는다. 반면에 하위 수준반에 있는 학생들은 상위 수준반의 학생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수준차가 고착화되어 버린다. 물론 상위 수준반에서도 상위와 하위가 수준차가 더 벌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수준별 수업도 상위 30%를 위한 변칙적인 우열반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수준별 수업은 평준화 교육이라는 측면과 교육의 형평성에서도 문제 많다. 그리고 같은 반에서 이루어지는 상위 학생과 하위 학생간의 모델링(modeling)을 통한 긍정적인 학습효과가 사라져 '살아남기 위한 경쟁'과 '자기 수준의 합리화와 만족화'가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수준별 이동 수업은 교육의 양극화를 세밀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이런 교육의 양극화는 '입시경쟁'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심화된 입시경쟁으로 고생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의 아이들이고 우리 사회다. 아이들도 골병이 들고 사회도 결국 골병이 들게 된다.
많은 연구과 보고서에 따르면 저출산의 가장 원인중의 하나가 과도한 입시경쟁과 사교육비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이들이 많으면 부모의 경제적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하나만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다 보니 경제적으로 많은 여유가 없는 가정은 아예 아이 낳는 것을 포기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 저출산을 솔직히 젊은 사람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교육과 입시의 틀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젊은 사람들의 자구책으로 이해해야 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런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진 사람이 빈손이 아니라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을 한 줌 씩 사회에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나눔과 배려와 공존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내 손 안에 있는 물고기가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많은 물고기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먼 바다에 있는 고기만 생각하다보면 내 손 안에 있는 고기는 하찮게 보일 수도 있다. 남의 것도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라는 사고방식은 이제는 버려야 할 때이다.
그리고 내 호주머니가 가득 차면 찰수록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는 비어간다는 사실도 올해에는 나부터 명심해야겠다. 내 이득은 결국 다른 사람의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 내가 편하면 그 만큼 다른 사람이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 사회의 사람들이 가질 때 우리 사회는 더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