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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책 리뷰 프로그램 'TV, 책을 말하다'가 아니더라도, 정말 읽고 싶어서 한쪽 가슴에 고이 품어 두었던 책들이 있다. 당장 사지 않는 이유는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이 읽다만 부분이 접힌 채 영영 책장에 묻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였다.
사실 인터넷을 통해서 몇 권의 책들을 모아서 구입하고 결재할 때의 뿌듯함. 그리고 나서 그 책이 도착할 때까지의 조바심이 왠지 기분 좋다. 택배기사가 전해준 박스 안의 책이 도착하면 포장을 뜯기 전의 기쁜 마음은 정말 어디다 비할 데가 없다. 빨리 열어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왜, 그런 책들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걸까. 나의 생각과 이 사회에서 미처 보지 못하는 미숙한 눈을 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아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마치 종이 한 장과 같거나, 끓어서 김이 나기 전의 물의 상태와 같다.
그러하니 교과서에서 말하던 '카타르시스'가 과연 어떤 것인가 알 것도 같다.
책을 읽으면 속이 후련하거나 또는 오히려 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지적 욕구에 대한 해소나 의문의 증폭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것이라면 소설이나 수기, 수필에는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탐구심과 호기심 등을 대리 충족해주고 또는 가슴에 품은 작은 생각을 충동질해서 온몸을 휘감을 정도로 크게 해주는 힘이 있다.
몇 년 동안이나 걸어서 세계여행을 다닌 저자는 이미 여행기로 대여섯 권의 책을 출판해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라 있으며, 이 시대 한국 젊은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중년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성지도자상, 신지식인 등의 수식어를 제외하고라도 그녀처럼 험난한 길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용기라면 누구나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덕택에 이 시대를 방랑하는 여러 젊은이들 또한 적지 않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책은 세계여행을 마치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국토종단여행을 마친 저자가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 들어가면서 여태껏 겪었던 일들을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쉽게 풀어서 쓴 책이다. 흔히 학자들이 범하는 오류라 생각되는 잘난 체나 동종집단만의 공유물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일들에 대한 홍보서라 볼 수도 있다. 정말 애써서 자신의 경험을 쉬운 말과 솔직하고도 담백한 글로 담으려 노력한 점이 엿보인다.
7초에 한 명씩 세계 어디선가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 그네들은 단지 그런 곳에 태어났다는 '원죄'를 가지고 부푼 배와 앙상한 팔 다리, 퀭한 눈, 탈색되는 머리칼을 가지고 얼마 살지 못하고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영화 한 편 보는 돈이면 그네들은 일주일을 잘 먹을 수 있고, 또는 태어나면서부터 심각한 병인 에이즈에 걸리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 나 살기도 바쁜데 무슨 남의 나라 어린이들이냐. 일부는 맞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나 살기 바쁘지 않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사실은 오히려 살기 바쁜 이들이 기부한 돈이 구호단체의 운영과 난민, 빈민 구제에 대한 기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다. 국내 빈민촌에 대한 지원이나 봉사자들의 면면을 봐도 마찬가지다.
책을 보면서 생각의 전환을 극적으로 이룰 수 있었던 부분도 있었는데, 내 자신도 가지고 있던 생각 중에 하나인 "왜 우리나라도 굶는 이들이 많은데 그 먼 나라까지 가서 그런 일을 하고 있느냐"하는 통속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이었다.
책을 읽다보니 무척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자신을 되돌아 보건데, 자신은 실제로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은근한 시기가 담겨서 나온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누구든 나누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행복을 아는 이들은 그런 질문을 할 수 없다. 그러기 이전에 벌써 움직이고 있겠지.
올해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해외에 아이를 하나 두어야겠다. 후원입양 한 명당 한달 2만원이면 한 아이의 밝은 미래에 초석이 될 수 있다 한다. 우리야 하루저녁 유흥비로 맥주 몇 잔과 골뱅이 무침 몇 젓가락이면 없어지는 돈이지만, 지구 곳곳에는 그 돈이 없어서 식구와 떨어져 있고, 하루 18시간이 넘는 노동에 시달리며, 학교에 죽도록 가고 싶은 아이가 있는 것이다.
한비야. 그녀가 전하는 말이 귓가에 생생하다. 마치 옆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왜 내가 이 일을 하느냐구요. 그건 그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죠."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참 불행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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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푸른숲(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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