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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생전의 김광석.
생전의 김광석. ⓒ 위드33 뮤직

"이 기사는…, 정말 쓰기 싫다."

하루에 수건, 한 달에 수십건, 일 년에 수백건의 기사를 써대고도 또 다시 기사거리가 없나 찾아다니는 기자에게도 쓰고싶지 않은 기사가 있을까? 적어도 지난해 12월 7일 있었던 서울중앙지법 판결은 그랬다.

단지 죽은 아들 또는 죽은 남편이 남긴 음반을 두고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어머니와 아내가 법정에까지 서야 했느냐는 씁쓸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그냥 '가수'가 아니었으며, 그의 노래는 그냥 '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노래는 여전히 기자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고 김광석이 떠난 지 10년, 그러나 그의 음악을 둘러싼 가족들의 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김광석에게 노래는 "애달픈 양식"... 유족들에겐 저작권

89년 '동물원'에서 나온 김광석은 '기다려 줘' '너에게'를 담은 1집을 내놓으며 홀로 활동을 시작했고, 1년 간의 열애 끝에 90년 서모씨를 만나 결혼을 했다. 이후 그는 91년 '사랑했지만'이 담긴 2집을 냈고, 92년 '나의 노래'가 담긴 3집을 냈다.

'거리에서'부터 '광야에서'까지 그의 세계를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다시부르기 1집'이 나온 93년, 불행한 가족간 분쟁의 서곡이 울린다. 그의 아버지 김모씨가 그 해 10월 12일 K레코드사와 '3집' '4집' '김광석 다시부르기' 음반에 관해 계약을 체결한 것. '(음반에 대한) 로얄티는 K레코드사가 아버지 김씨에게 지급한다'는 등의 내용이 골자였다.

96년 1월 6일 김광석은 죽었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그의 죽음을 오래 기억하지 못했다. 김광석이 사망하자 아버지 김씨는 K레코드사와의 계약을 근거로 그의 음악저작물에 대한 모든 권리를 양도받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부인 서씨는 자신의 딸과 함께 남편의 권리를 상속받았다고 맞섰다.

특히 서씨는 K레코드사를 상대로 아버지 김씨에게 로얄티를 지급하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로얄티지급금지가처분을 신청한 데 이어, 아버지 김씨와 K레코드사를 상대로 로얄티청구권확인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분쟁을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그 해 6월 26일 합의를 도출해낸다. 당시 합의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부인) 서OO은 (아버지) 김OO가 '김광석 다시부르기' 등 기존 4개 음반에 대한 판권 및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2) 김OO가 사망하면 가지고 있던 권리는 서OO의 딸이자 김OO의 손녀에게 양도된다. (3) 김OO는 서OO가 김광석의 노래와 관련 향후 제작할 라이브음반에 한하여 권한을 갖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합의를 통해 종결되는 듯 보였던 가족간의 분쟁은 이후 아버지 김씨가 모호한 행동을 취하면서 불씨를 남겼다.

김씨는 서씨와 합의한 지 1주일 뒤, 부인 이모씨와 장남에게 K레코드사와 체결한 계약으로 갖게 된 김광석 음반에 대한 권리를 유증(遺贈)하고, 2004년 10월 사망했다. 유증이란 '유언으로써 자기 재산의 일부를 무상으로 타인에게 주는 행위'를 말한다.

그 뒤 10년... 끝나지 않은 소송

ⓒ 위드33 뮤직
부인 이씨와 장남은 김씨가 사망하자, 생전에 김씨와 서씨가 합의한 것을 '사인증여'로 규정했다. 이들은 "사인증여 계약은 서씨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것이기 때문에 유증에 의해 취소되고, 사인증여는 유증에 관한 규정에 준용되기 때문에 유언자의 최후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지적재산권 확인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는 지난해 12월 7일 "(김씨와 서씨의) 합의가 사인증여임을 전제로 유증에 의해 취소되었다는 (원고 측) 주장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며 아내 서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주장하는 사인증여라 함은 증여자가 생전에 무상으로 재산의 수여를 약속하고 증여자 사망으로 그 약속의 효력이 발생하는 계약을 말하는데, 김씨와 서씨의 합의는 소송에 대한 원만한 해결을 위해 체결한 대가성있는 약정이기 때문에 사인증여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당시 서씨와 김씨의 합의가 서씨의 강압에 의해 체결하였다고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김광석 음반에 대한 모든 권한은 부인 서씨와 그의 딸에게 귀속됐다. 하지만 가족간의 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 김씨가 사망하기 전 서씨를 상대로 김씨가 갖고 있는 지적재산권의 일종인 저작인접권을 침해했다며 제기한 형사소송이 아직 법원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판사 김진동)은 지난해 11월 19일 "서씨는 김씨에게 저작인접권이 있는 '거리에서' 등 노래 2곡을 동의없이 음반으로 발표, 김씨의 저작인접권을 침해했다"며 서씨에게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서씨는 판결에 불복, 곧바로 항소를 제기했다.

"하늘에서 쓰는 그의 일기장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시어머니와의 법적 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부인 서씨는 CD 2장으로 구성된 '김광석 10주기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다. 앨범에는 최초로 공개되는 김광석의 자필 일기장과 노래 24곡이 수록돼 있다.

현재 음반기획사 '위드33'의 대표이기도 한 서씨는 "남편이 작고하고 10년이 지난 후에 발표된 앨범이라 매우 의미가 있다"며 "아직까지 우리 마음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는 노래를 중심으로 베스트 앨범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음유시인 김광석, 그는 갔지만 그의 노래는 많은 사람의 가슴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의 '노래'를 둘러싼 가족간의 분쟁 또한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는 하늘에서 행복할까? 지금 하늘에서 쓰고 있을 일기장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

기사를 쓰는 내내 기자의 입 속에서 맴도는 그의 노래가 왠지 서글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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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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