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아들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랫동안 형이 하나 있었다.
묘한 뉘앙스를 주는 문장으로 출발한 이야기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정제된 톤을 이어간다. 화자인 소년은 몸이 허약하고 내성적이다. 체육시간에도 건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교실에 있곤 하는 소년은 늘 어딘가에 틀어박혀 뭔가를 공상하고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늘 혼자여서 외로운 탓인지 언젠가부터 스스로에게 형이 하나 있다고 상상하게 되고 이 상상속의 형은 점점 실제하는 인물처럼 소년의 일상에 자리잡아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알게 되는 가족의 역사. 가족들 누구도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던 그의 형이 실존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시작으로 소년은 가족사에 얽힌 커다란 비밀을 알게 된다.
열다섯 살에 가족의 역사에 얽힌 비밀과 만나는 소년은 당혹스럽고 놀랍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예견했던 일임을 알고 당연한 듯 비밀을 껴안는다. 어머니의 우울한 시선과 아버지의 허망한 눈빛은 오랜 세월 동안 소년의 가슴에 비밀에 대한 예감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일상을 함께 나누어가지는 사람들이 품고 가는 아픔은 비록 말로 표현되어 표면에 떠오르지 않더라도 결국 옆 사람에게 전이되게 마련이다. 소년은 부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가슴에 떠안고 열다섯 해를 살았다. 그리고 이제 표면에 떠오르지 않았을 뿐 오랫동안 그들 가족과 함께 살며 자라온 비밀에 손을 내밀고 문을 연다. 당혹스럽지만, 자연스럽게.
소년이 열어젖힌 비밀에는 인류 최대의 비극이었던 나치의 대량 학살이 끝을 알 수 없는 무게로 자리 잡고 있었고, 이 학살이라는 역사적 암초에 소년의 부모 각자가 인간 개인으로서 피해갈 수 없었던 욕망, 이기심, 무의식적 바람, 그리고 사회적 금기 등이 얽혀서 복잡한 양상을 이루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와 대면한 열다섯 살 소년의 반응은 어떨까.
...나는 곧 복도를 가로질러 부산한 상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니었고, 루이즈의 가게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내가 얼굴을 맞댈 그들 역시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벗겨진 두 개의 가면 뒤에 짐작조차 못했던 고통스런 맨얼굴이 숨겨져 있었다. 부모님은 내 안색이 창백한 것을 알아차리고 걱정을 했지만 나는 미소를 지어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러고는 몰래 그들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함구했던 것처럼, 나도 내가 알게 된 사실을 함구하기로 했다. 내가 어떤 계기로 그 침묵을 깨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에는 내가 그들을 보호할 차례였다.
비밀의 한가운데에서 태어나 무의식중에 거대한 무엇이 배후에 숨어있음을 느끼고 자란 소년은 민감하고 사려 깊은 성격을 갖게 되었고 이 성격은 소년이 비밀과 맞닥뜨렸을 때도 침착하게 부모가 받을 상처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배려할 수 있게 만든다. 나약하고 예민했던 소년이 비밀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면서 강한 자아를 갖게 되는 장면부터 이 소설의 힘있는 반전이 시작된다.
...나는 그때 열다섯 살이었고, 돌연 새로운 요소가 등장함으로써 내 이야기는 줄거리를 대폭 수정하게 되었다. 헐벗고 야윈 내 그림자에 달라붙어 있는 ‘유태인’이란 말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결함들을 적어놓은 목록에는 항목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나는 볼품없고, 약골인 데다가 유태인이었다. 줄곧 함구되었던 그 사실은 루이즈의 입 밖으로 튀어나오자마자 즉각 나를 변화시켰다. 나는 변함없이 나였지만 전과 똑같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더 강한 내가 되었다...
인간의 상처는 영원히 지속된다. 한 번 받은 상처는 가슴에 깊숙이 각인되어 비가 올 때나 바람이 불 때, 문득 유사한 상황이 연상 되는 때에 가감없이 살아나 한 사람의 일생에 두고두고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처가 인생에 최소한의 영향으로 남게 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상처를 끌어올려 지상화시키는 것. 표면에 과감하게 널어놓고 말려야 하는 것이다. 햇볕에 바짝 마른 상처는 그 자체가 인생의 환경이 되고, 바짝 마른 상처는 이후 개인 살아가는 일상적인 풍경의 하나로 그 무게를 덜게 마련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렇게 표면으로 끌어올리기엔 너무나 깊고 아픈 상처가 있다. 인간이 특정 종족이라는 선천적인 이유 하나로 인해 차갑게 분류되어지고, 경멸받고,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던 기억.
...루이즈는 금지된 장소들과 모욕적인 표지판들 그리고 유태인을 의미하는 글자를 한가운데 새긴 노란 별에 대해 들려준 후 또 한 가지 사실. 그러니까 가장 고통스런 사실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나치가 저지른 범죄는 유태인 학살이라는 신체적인 살인만이 아니었다. 학살이 일어나기 전 유태인에게 가해졌던 각종 차별과 제재는 학살 그 자체보다 더한 모욕이었고 정신적인 고문이었다. 이러한 차별과 학살, 그 역사적인 비극 상황 한가운데에서 개인적인 욕망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부모는 이후 평생에 걸쳐 무거운 죄책감에 짓눌리며 살아가게 된다. 인간이기에 억누를 수 없었던 간절한 욕망, 그 최고점인 사랑을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적인 비극까지 자신들의 책임으로 떠안고 가야 했던 것이다.
금지된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바로 그 아이가 훗날 자라 이 비밀을 열어젖히고 부모의 상처를 치유해준다는 것은 이 소설이 갖는 아름답고도 슬픈 아이러니이다. 인간의 온갖 비열함과 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생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생명과, 그에 내포된 희망이 예기치 않은 곳에서 불쑥 튀어나와 인생을 지속시키는 것. 소년은 자라서 다른 이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는 심리학자가 된다.
소설의 문장은 맑고 정제되어 있다. 어느 한 순간에도 흥분되거나 감정이 물씬 묻어나오는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맑은 문장을 따라 그 끔찍한 역사의 현장을 따라가던 독자는 대단원에 이르러서는 결국 눈물을 흘리게 된다. 장식이 많은 문장보다 정제되고 담백한 문장이 어쩌면 더 콧등을 시큰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역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작품을 쓰는 데는 두 달이 걸렸지만 살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 데 꼬박 일 년이 걸렸다고 밝힌 지은이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는 다시 한 번 납득이 갔다. 그는 들끓는 고통과 동요와 분노를 미련 없이 솎아내고 뼈만 추려낸 것이다. 감히 말하건데 이 작품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무척 수다스러워지거나 제 팔자야말로 어느 누구보다 기구하며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은 없다고 자부하는 등등)을 완벽하게 피해간 담백한 고백이다...
뼈만 추려낸 담백한 고백. 역자는 작가의 문체가 가지는 특성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이 대목을 읽을 때면 책을 읽는 내내 한번의 막힘도 없이 술술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번역서엔 웬만하면 수상해 보이는 문장들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캐보면 오역이나 부자연스러운 말로 인한 경우일 때가 많다. 번역서는 좋은 역자를 만나지 못하면 결국 온전히 가치를 느낄 수 없는 법, 좋은 번역으로 작품을 즐기게 해준 역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누구에게나, 망설임 없이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 참고서적: 데들레프 포이케르트 <나치 시대의 일상사:순응,저항,인종주의>(개마고원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