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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여전히 초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그해 5월. 그래도 중학생으로 중간고사에 대비하겠다고 처음 공공도서관을 찾았습니다.
그 공공도서관은 대구 시내 중심가에 있었지만, 그 진입로가 음침하기로 소문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길도 넓어지고 담도 없어져서 한결 밝아졌고, 또 공원이 들어서 시민들의 쾌적한 휴식공간이 되고 있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속칭 '삥' 잘 뜯기기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저도 그런 소문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내가 걸릴까'하며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저는 좀 더 빨리 도서관에 도착하기 위해 지름길인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골목길 끝 양 옆으로 저보다 두세 살은 많아 보이는 형들이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설마 아니겠지…', '그냥 지나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걸어갔습니다.
그들과의 거리가 점차 줄어들자 그들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본능적으로 위기임을 직감한 저는 그 자리에서 딱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다시 돌아서 도망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잡히면 더 큰 일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 중 두 명이 제 양 옆으로 다가오더니 이내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 하지 말고, 웃어라!" 하며 나지막하지만 강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뒤져서 나오면 10원에 피 한 방울이다!"
공포에 질린 저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그들에게 이끌려 인적이 드문 막다른 골목으로 끌려갔습니다.
저에게 어깨동무를 했던 두 명은 제 몸을 벽에다 세차게 밀어붙였습니다. 그리고 제일 날카롭게 생긴 나머지 한 명이 제게 다가와서 "뒤져서 나오면, 10원에 피 한 방울씩 뽑을 테니깐 알아서 다 토해봐!" 하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깨동무를 했던 두 명은 각각 송곳과 칼(검정색 연필깎이용 접이식 칼)로 시멘트벽을 긁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말과 흉기로 위협하던 그들이 참 어설펐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생애 최대의 공포였습니다. 잔뜩 겁에 질린 저는 가방에 든 만 원 상당의 버스 승차권과 그 날 저녁 값으로 들고 온 2천 원을 몽땅 내어주었습니다.
그 걸로도 모자랐는지 그들은 제 가방과 옷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돈이 더 이상 없다는 걸 확인한 그들은 "또 보자…"라는 섬뜩한 한 마디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그 일을 당한 후 저는 얼마 간 골목길을 제대로 다니질 못했습니다. 그러다 차츰 그 때의 공포가 사라지자 이번엔 분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다시는 힘이 없어서 그렇게 돈을 뺏기는 일은 당하지 않겠다는 투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다시는 안 당하려고 복싱에 뛰어들다
그래서 싸움을 할 때 가장 잘 써먹을 수 있는 운동이 복싱이라는 말을 누구에겐가 듣고 복싱체육관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름 정도 줄넘기와 스텝 밟기만 하다 보니 무척이나 재미없고 지루했습니다. 또 계속되는 반복 훈련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강해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지루함과 힘겨움을 견디고 점차 시간이 흐르자 저는 어느덧 발끝에 체중을 실어 이동할 줄 알게 되고, 주먹에 체중을 실을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스파링(연습경기)과 미트 치는 연습을 통해 상대가 뻗는 주먹을 보고 피할 수 있는 눈도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턱을 때리면 머리가 흔들려 균형감각을 잃고 쓰러진다는 것, 상대가 숨을 들이마실 때 복부를 가격하면 그대로 쓰러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부 선배를 다운시키다
복싱을 배운 지 1년 정도 지나면서 저는 진짜 시합을 준비하는 고등부 선수들의 스파링 상대로 링 위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제가 체육관에서 유일한 왼손잡이여서 시합을 앞둔 선수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프로복서를 꿈꾸는 고등부 형들 중에는 스파링만 하면 유독 저를 심하게 약 올리는 형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딜 주물러 드릴까…"하며 조소 섞인 미소를 흘린다든지, 스파링 중 클린치할 때 목을 조른다든지, 또 가끔씩 시합에서나 있을 법한 강펀치를 날린다든지. 그럴 때면 저는 정말 약도 오르고, 화도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꼭 한 번 그 형을 링 위에 쓰러뜨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그 형의 복싱스타일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주 쯤 지나자 제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형은 스트레이트를 뻗고 난 직후 두 팔을 내려 한 번 털었다가 다시 올리는 습관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형이 두 팔을 내리는 그 틈을 공략하는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또 '위빙과 더킹'(상체를 움직이며 상대의 공격 타이밍을 흩트리고, 주먹도 피하는 기술)으로 거리를 좁혀 들어가 복부를 가격하는 연습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또 2주가 흘러, 저는 드디어 그 형과 다시 스파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형이 방심하도록 만들기 위해 일단 샌드백처럼 가만히 맞아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형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관찰했습니다. 두 팔을 내리는 습관은 여전했습니다.
1라운드가 끝나고 2라운드가 시작되자, 저는 공격 타이밍을 잡기 위해 리듬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 형은 때리다 힘이 빠졌는지 팔을 내렸다 올리는 것이 점차 느려졌습니다. 2라운드가 끝나갈 무렵 저는 연습했던 '위빙과 더킹'으로 서서히 상체를 움직이며 다가갔습니다.
갑작스런 저의 움직임에 그 형은 약간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은 듯 잽을 날린 후 스트레이트를 뻗었습니다. 저는 그 형이 스트레이트를 뻗은 주먹을 거두는 것과 동시에 스텝을 밟아 들어가 그 형의 복부에 펀치를 작렬시켰습니다. '윽'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그 형의 상체가 앞으로 꺾였습니다. 저는 스텝을 밟아 뒤로 빠졌다가 다시 앞으로 체중을 이동시키며 그 형의 안면에 펀치를 적중시켰습니다.
'KO!'
그렇게 저는 그 형의 '빈틈'과, 우월함에서 오는 '방심'이라는 약점을 잘 파고들어 통쾌한 승리를 맛본 것입니다.
복싱을 하면서 이렇게 타격기술도 좋아졌지만 무엇보다도 달라진 것은 어느 누구와 붙어도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었습니다.
그렇게 복싱을 2년 넘게 배우면서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보다 키가 15cm나 자라고, 몸무게도 20kg 이상 늘어난 저는 누가 봐도 '힘 좀 쓰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컸습니다.
'그놈'과 다시 맞닥뜨리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평상시처럼 운동을 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마른체구에 키가 저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 열아홉, 스물쯤 되어 보이는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이 무척 낯익었습니다.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순간, '10원에 피 한 방울'이라는 말이 확 떠오르면서 중학교 1학년 때 제 돈을 뺏어 간 바로 '그놈'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때의 강렬한 기억이 여전히 제 뇌리에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묘한 흥분에 빠졌습니다. 복싱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려오던 바로 '복수'의 순간이었습니다.
저와 '그놈'과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짐에 따라 긴장감도 더해졌습니다. 저는 어떻게 선제공격을 해서 박살을 내 버릴지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놈'과 바로 코앞에서 마주선 저는 의도적으로 어깨를 부딪치고, 그를 노려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놈'은 저를 아래위로 한 번 훑어보더니 이내 "미안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계속해서 노려보자 '그놈'은 당황한 듯 주춤하며 한 발 물러섰습니다.
저는 다시 바짝 다가섰습니다. 그러자 '그놈'의 얼굴이 일순간 흙빛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놈'의 얼굴과 중학교 1학년 때 공포에 질렸던 저의 얼굴이 겹쳤습니다.
그 순간 제가 그 당시 '그놈'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복수를 해야겠다는 마음보다 찝찝함이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명확하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적이었지만 그런 생각이 든 저는 바짝 조인 시선을 거두고, "괜찮습니다"라고 한 마디 내뱉고 돌아섰습니다. 그렇게 돌아서서 다시 체육관을 가는데 왠지 미소가 흘렀습니다. 싸우지는 않았지만 꼭 복싱시합에서 힘겨운 상대를 KO시킨 기분이었습니다.
세월이 꽤 흐른 지금, 만일 그 때 제가 '그놈'을 시원하게 때려눕혔다면 그 순간은 통쾌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처럼 오랜 세월 개운해 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처럼 이런 글도 쓰지 못했겠지요.
지금 생각하면 중학교 1학년 때의 '공포'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인내' 혹은 '여유'는 어쩌면 '싸움의 최고 기술은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세상 사는 방법을 제게 가르쳐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