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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겉그림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겉그림 ⓒ 까치글방
서책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이런 요건을 두루 충족시키는 문제작이다. 그것은 이 책이 자연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며, 글쓴이의 거대한 욕망이 절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의 사생활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으로 인한 난삽함이 생기기도 하고, 더러는 독자들로 하여금 방향타를 잃고 헤매게 하는 경우까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세 가지 관점에서 읽어보려고 한다. 그 하나는 17세기 이후 20세기까지 유럽이 주도한 '자연과학의 성취와 의미를 추적'하는 일이고, 그 둘은 성취과정에서 발생한 '조작사건' 여부를 살펴서 오늘의 우리를 반추함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떤 결과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공간을 갖는 것이다.

유럽이 주도한 자연과학의 성취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지나치게 많다. 그 가운데 극히 일부분만 발췌하도록 한다.) 1686년 아이작 뉴턴은 <프린키피아: 자연과학의 수학적 원리>를 완성한다. 이 저작은 천체의 궤도를 수학적으로 설명하였고, 천체를 움직이는 중력의 개념을 풀어쓴 책이다. 이로써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는 근본적인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물체는 미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다른 힘에 의하여 속도가 느려지거나 방향이 바뀌기 전까지는 직선을 따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게 되며,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있다는 뉴턴의 세 가지 법칙과 중력의 보편적인 법칙이 <프린키피아>에는 담겨있다." (62쪽)

화학을 정립한 로버트 보일의 <회의적 화학자>가 1661년 출간된 것을 비롯하여 1735년 지구나이와 질량측정을 위한 프랑스 왕립과학원의 페루탐사, 1769년 제임스 쿡이 성공한 금성통과관측 (그 결과 조제프 랄랑드의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측정), 1797년 헨리 캐번디시의 지구질량 측정성공, 1830년대 출간된 찰스 라이엘의 삼부작 <지질학의 원리>.

어디 이뿐이겠는가. 1717년 다니엘 파렌하이트의 화씨온도계 발명, 1742년 안데르스 셀시우스의 섭씨온도계 발명, 1735년 분류학의 선구자 칼 린네가 <자연의 체계> 출간, 1808년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존 돌턴의 저작 <화학원리의 새로운 체계> 출간, 1859년 찰스 다윈의 불후의 저작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혹은 <생존경쟁에서 선택된 종의 보존> 출간, 1865년 그레고르 멘델의 유전인자 실험결과발표.

자연과학에 관한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서책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지은이는 다윈과 멘델의 과학적 성취에 담겨진 역사적인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다윈과 멘델은 20세기에 시작된 생명과학의 기초를 닦아놓은 셈이었다. 다윈은 모든 생물이 '단 하나의 공통선조'를 가지고 있기에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멘델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시하였다." (412-413쪽)

자연과학의 성취의미

자연과학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지은이 빌 브라이슨은 꼬박 3년 동안의 발품과 고된 노역을 들여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서책은 매우 드문 경우를 빼면 유럽과 미국 과학자들의 성취만을 집필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타 지역 연구자들의 업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저한 상대적 빈곤함 때문으로 보인다.

문제는 17세기 이후 3세기 동안 유럽이 주도하였고, 20세기 이후에는 유럽과 미국이 공동으로 이끌어왔던 자연과학이 자체의 성과로 머무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주지하듯이 자연과학분야의 성과는 끝없는 기술발전과 혁신으로 연결되었고, 그것은 1970년대 이후 '과학기술혁명'으로 불리면서 인간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점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지난 400여 년 동안 유럽이 주도한 '근대' 혹은 '근대성'의 실체 가운데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근대라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를 양적으로 해결해주는 '과학기술'과 질적으로 해결해주는 '자유민주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이 문제를 결코 주도하지 못했다.

오늘날 미국은 로마제국 이래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세계의 정치와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미국의 힘은 유럽의 후예로 축적한 과학기술문명의 성과와 유럽식 자유민주주의를 미국식으로 대체하여 얻어낸 것에 기인한다. 따라서 자연과학 영역에서 잇단 성공과 좌절은 신기술과 접목하여 21세기의 새로운 출발을 예비하였던 셈이다.

학문세계의 조작사건

연말연시에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배아 줄기세포 논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한다. 과학적 혹은 학문적 진실과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사이의 거리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 내지는 국가가 도달해야 마땅한 윤리성과 도덕성까지 깊이 숙고하도록 인도하였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도 짧지만 과학적 조작사건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1912년 영국의 필트다운 코먼의 사력층에서 발굴된 유골이 현생인류의 조상일 것이라고 하여 세간의 관심을 모았으나, 조작된 것이었음이 1954년에 밝혀진 사건이 이른바 필트다운 사건이다." (51쪽)

인류의 뼛조각을 찾는 일은 너무도 어렵다. 그것도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유골을 찾아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고인류학자나 고생물학자들은 언제나 그런 발굴가능성에 대한 개인적인 유혹에 시달린다고 한다. 반면에 국가적인 목적으로 개인이 사건을 조작한 경우도 있었으니, 그것이 2000년 11월 일본열도를 강타한 후지무라 사건이었다.

고대에서도 일본이 아시아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확신한 '신의 손' 후지무라 신이치가 일본 구석기문화를 70만 년 전으로 끌어올린 미야기현 가미타카모리 유적현장을 완전히 조작한 것으로 드러난 희대의 사기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마이니치신문은 그가 구석기유물을 구덩이에 파묻는 장면을 촬영함으로써 사건전모를 밝힐 수 있었다고 한다.

후지무라 조작사건도 줄기세포 조작사건과 마찬가지로 마이니치 본사로 날아온 전자우편 제보가 진실구명의 단초였다. 일본 고고학계는 씻기 힘든 상처를 입었고, 세계 고고학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진실은 마침내 밝혀지고야 만다는 엄정한 순리는 의연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다보면 우리가 아직도 모르고 있는 자연현상이 숱하게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를테면 1970년대 말까지도 과학자들은 왜 바닷물의 염도가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법이 없이 언제나 일정한가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기에 걸음마를 시작한 해양학과 지구물리학 분야의 낙후성이 원인이었다. 문제의 해답은 무엇일까.

"심해분출구에 대한 특수 잠수정 '알빈'의 발견이 해답을 제공해주었다. 지구물리학자들은 바닷속 분출구들이 어항속의 필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이 지각 속으로 스며들 때 소금이 걸러지는 것이다. 결국 바닷속 굴뚝을 통해서 깨끗한 민물이 다시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295쪽)

이와 함께 몸길이 33m에 몸무게가 179t에 이르는 흰긴수염고래나 무게가 1t에 달하고 눈이 축구공만한 자이언트 오징어, 150살까지 사는 바닷물고기 러피, 머리와 꼬리의 온도차가 80도에 이르는 알비넬리드 지렁이 등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또한 꾸준한 지구탐사에도 불구하고 12.2km를 파들어 간 시추기록이 최고라고 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자들은 자연의 신비 대부분을 밝혀냈다는 만족감에 젖었다고 저자는 기록한다. 하지만 거시세계에서 미시세계로 접어드는 양자의 시대를 그들은 예측하지 못했다. 오늘도 자연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은 인간의 끈질긴 연구와 탐사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만족과 순간의 좌절에 머무르지 말고 줄기차게 앞으로 나아갈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런 책을 읽고나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하는 문제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가. 그것이 오늘날 불러온 결과는 어떠한가. 21세기 벽두에 불거져 나온 줄기세포 조작사건은 과연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 깊은 자괴감마저 느껴진다. 과연 언제까지 질질 끌려 다니면서 남의 뒤통수나 들여다볼 것인가.

세계최초라는 몇 가지 기록에 안주하고 만족하기에는 우리가 도달한 과학기술 방면의 성과와 축적은 매우 미미하다. 오늘날 이공계 기피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앞날이 그렇게 유망해 보이지도 않는다. 과감하고도 꾸준한 투자와 유능한 후속세대육성, 과학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변화가 너무도 절실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는 수많은 수치와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다보니 심심찮게 오류들이 발견된다. 한 가지 예를 든다. 인간의 뇌세포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쓴다.

"뇌세포는 평생을 함께 한다. 출생할 때 1000억 개 정도의 뇌세포가 만들어지면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매시간 500개 정도가 죽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심각한 고민을 하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간세포와 마찬가지로 뇌세포의 경우에도 구성성분들은 대략 한 달 만에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뀌게 된다." (393쪽)

하루는 24시간이므로 하루에 죽는 뇌세포는 1만2천개. 1년은 365일이므로 1년에 죽는 뇌세포는 438만개. 인간이 80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평생 죽어나가는 뇌세포는 3억5040만 개. 이것은 전체 뇌세포 1000억 개의 0.35%에 불과하다. 더욱이 뇌세포 구성성분이 매달 새롭게 교체되기 때문에 심각한 고민을 아무리 많이 해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까치글방, 2004.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양장, 특별판)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까치(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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