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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세상은 거기 있었지만 저는 어머니로 하여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게 저의 존재의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가신지 벌써 120일. 저만 이렇게 혼자 남아 속울음을 웁니다.

어머니!
참으로 죄송합니다. 그동안 저지른 불효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 날은 어찌 그리 잠이 오던가요? 정녕 어머니께서 위태로우시다는 걸 짐작은 했으면서도 저는 그냥 지난 해 정월 그 눈발 날리던 때처럼 또 기적처럼 일어나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남의 집에 전세 살다가 새집으로 이사 온지 사흘. 어머니께서도 편안하게 몇 년은 더 살아 계실 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어머니께서는 밥숟가락을 들지 않으시고 거친 숨을 몰아쉬셨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어머니께서 백 살을 채우시고 가실 줄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 그 시각에 깜박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을까요?

죄송합니다. 변명을 하자면 며칠 밤낮을 어머니 곁을 지키다 보니 그랬다고나 할까요? 어머니! 이 불효를 어쩌면 좋습니까? 어머니! 비록 며느리랑 손녀는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었다지만…. 저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참지 못해 졸고 있었다니…. 세상에 이런 불효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어머니! 02시. 55분. 얼핏 눈을 떴습니다.

“어머니!”
“…….”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손을 잡았습니다. 손이 따듯했습니다. 맥을 짚어 봤습니다. 맥이 잡히는 듯싶었습니다. 가슴을 만져보고, 코에 손을 대 보고….아무리 살펴보아도 살아계신 듯싶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한 많은 일생. 아흔 아홉 해. 그 게 어머니의 임종이셨습니다.

어머니!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가시는 길 배웅을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정말 그날의 실수가 어찌 이리 가슴 아린 한이 될까요? 어머니! 저는 어쩌라고 그냥 가시냐고요?!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의외로 평안해 보이셨습니다. 그 험한 모습 자식들에게 보이시며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시던 어머니!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욕창에 등 팔다리 여러 군데가 헐고 상하고 껍질이 벗겨지는 아픔에다 가쁜 숨 몰아쉬시며 뒤척이시던 힘든 몸놀림도 모두 그치고 그저 편안하게 주무시는 모습이 정녕 평안해 보였습니다.

몇 년을 두 다리 펴시지 못하시고 오그리고 계시던 다리도 감쪽같이 펴시고…. 어머니! 저는 어머니께서 하늘나라로 가신 걸 믿었습니다. 그래 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달 전 아흔아홉 살에 목사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던 어머니가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참으로 위대하신 분입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어머니처럼 훌륭하신 분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가진 것 송두리째 이 못난 자식을 위해 쏟아 주시고도 모자라 한 평생을 곁에서 저를 지켜주셨던 어머니가 아니셨습니까? 어머니는 저의 수호신이셨습니다.

제가 갓난이 일적에 세상은 온통 홍역으로 흉흉하고 마을마다 어린 아기들이 죽어갔더랬지요? 그 때 홍역으로 죽어가던 저를 위해 헌신하셨다는 이야기를 마을 사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어머니! 그런데 그렇게 살려 놓은 그 잘난 아들이 사범학교에 다닐 적부터 왜 또 그렇게 어머니 마음을 아리게 했던가요.

어머니께서 1907년 8월에 태어나셨을 적엔 박 참봉네 집안 몇 백석지기 부잣집 9남매 중 셋째 딸로 호의호식하며 귀하게 사셨다는 데 시집을 가서부터 비운의 일생은….

어쩌다가 이제는 행복하게 사시는가 싶었는데 6.25전쟁 중에 남편을 여의시고 어린것들을 양육하고 상급학교에 보내시노라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한때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겠다는 아들 하나 공부 잘하는 게 기쁨이셨는데….

그 아들이 죽을병이 또 들었으니, 얼마나 세상이 원망스러웠겠습니까? 이 못난 자식 놈의 간병 8년. 어머니께서는 기적을 이루어내셨습니다. 의사마저 포기한 생명을 살려내신 겁니다.

그런 불효자였기에 어머니께서 노환으로 쓰러지셨을 때 ‘이젠 이 못난 아들이 은혜를 갚아야지’하는 마음으로 모셨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훌쩍 말씀도 없이 떠나시고 보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싶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입관. 마지막 작별의 순간이었지요. 어머니께서는 장수하시다보니 큰 아들 둘째딸을 앞세우시고 가시는 길이었지만 그래도 자손들 얼굴 보고 싶으셨겠지요. 그런데 어머니 가슴에 못이 되었던 큰 따님.기다리셨지요. 행여나 하는 맘으로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시지 않은 큰 따님.어머니께서는 차마 떨어지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발걸음이….

어머니! 죄송합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초라하지 않게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일요일이라 제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도 권사인 누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께서도 오시지 않아 마지막 하관예배는 저의 가족들만 조촐하게 드렸습니다.

어머니! 제가 30여 년 전에 어머니와 함께 교회 사택에 살면서 도암면 그 갯마을 교회의 교역자 노릇을 할 적 생각을 하며 어머님의 마지막 하관예배 집례를 했습니다. 용서하셔요. 어머니! 저는 그 자리에서 어머니의 아흔아홉 평생을 슬픔에 잠긴 자손들에게 간추려 전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결코 비굴하지 않으셨으며 비정하지 않으셨으며 참으로 열심히 살아오신 위대한 어머니이셨다고 말입니다.

어머니! 부르고 또 부르고 아무리 불러 보아도 대답이 없으신 어머니!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신 나의 어머니이셨지만 그 누가 무식하다 하였습니까? 저의 삶이요 사랑이셨으며 나의 전부이셨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셨던 나의 어머니! 나 혼자 어떡하랍니까? 이젠 제가 집안의 어른으로 남았습니다. 이젠 제가 어머니 대신 집안의 어른으로 그저 옆에 있기만 해도 좋은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사랑을 베푸는 그런 사랑의 화신이고 싶습니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자고새면 어머님의 영정 앞에 얼굴을 묻고 속울음을 웁니다. 생각할수록 저지른 불효가 생각나 한스러워서요. 생전에 더 잘 해 드릴 걸. 이제 후회한 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어머니!
자랑스러운 나의 어머니! 세상에서는 아무도 당신에게 상주시지 않으셨지만 이제 하늘나라에서 큰 상을 받으시고 영생복락 누리소서.

오!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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