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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숙 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 앞표지
ⓒ 창비
소설가 김인숙씨는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생 시절인 1983년 1월에, 그러니까 만 20세가 채 되기도 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상실의 계절>이 당선됨으로써 무척 빨리 소설가가 되었던 인물이다. 그 바람에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의 문예창작학도들한테서 무척 많은 작품 비판을 받았었다. "소설 공부 더 해야 할 때 아니야?" "심사위원의 독해력을 믿을 수 없어" 하는 독설들이 오고갔었다.

그때로부터 12년이 지난 뒤, 김인숙씨는 보란 듯이 1995년 제28회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을 시작으로, 2000년 제45회 현대문학상, 2003년 제27회 이상문학상, 2005년 이수문학상 등을 잇달아 받아 자신의 소설 필력과 문체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여자의 자서전>(2005년 8월 10일 창비 펴냄)은 <함께 걷는 길> <칼날과 사랑> <유리 구두>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에 이어지는 다섯째 소설집이다. 5년 만에 출간하는 새 작품집.

표제작인 '그 여자의 자서전'은 예술가 소설 또는 소설가 소설이다. '나'는 내레이터 겸 주인물(主人物)로서 '돈' 때문에 자서전을 쓴다. '돈'을 만들어야 소설도 쓸 수 있고 오빠도 도와줄 수 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자서전을 쓰기로 한 것이다.

자서전 대필 작업 건은 선배에게서 넘겨받은 것이다. 자서전의 주인공은 그의 말대로라면 입지전적으로 살아온 인물로서 정계 진출을 넘겨다보고 있다. 그러니까 자서전은 정계 진출을 위하여 펴내는 것이다.

아직 해본 적이 없지만 만일에 해보기로 한다면, 소설가가 평전이 아닌 자서전 대필을 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일 터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책 지독히도 안 읽는 나라, 우리나라의 소설가들은 그런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그 일거리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하고 싶어도 일은 오지 않고, 막상 하자니 자존심 구겨지는 일이 바로 자서전 대필 아니겠는가.

'나'는 '허구가 적당히 들어간 전기(傳記)'를 쓰는 게 아니라며 자위하지만, 자서전의 주인공인 이호갑은 자신이 자서전 속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탈바꿈하기를 요구한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왕년에 운동권 활동을 하였다는 허위사실을 집어넣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번민한다. 번민하며, 아버지가 가르쳐준 전집의 소중함을 돌이켜본다. 그리고 그 책 속에 나뭇잎을 꽂아두던 일을 기억해낸다.

오빠와 나는 집마당에 온갖 꽃잎들과 온갖 나뭇잎들을 뜯어, 책갈피마다 끼워넣는다. 책갈피에 노랗고 빨갛고 푸른 물이 여리게 스며든다. 밤이면 마루에 놓여 있는 책장에서 꽃냄새가 퍼져나와 온 집안을 향기롭게 적신다. -<그 여자의 자서전> 34쪽에서

'그 여자의 자서전', 소설가의 이상적인 글쓰기를 방해하는 현실의 비참한 모습을 들여다보게 만든 소설이다.

덧붙이는 글 | 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 속에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바다와 나비', 이수문학상 수상작인 '감옥의 뜰'도 들어 있다.


그 여자의 자서전

김인숙 지음, 창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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