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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은 '경계를 나타내는 땅이면서 소통하는 길이고 물을 담아두는 댐'이기도 합니다.
논두렁은 '경계를 나타내는 땅이면서 소통하는 길이고 물을 담아두는 댐'이기도 합니다. ⓒ 조태용
논두렁의 중요한 역할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댐의 역할입니다. 논두렁의 높이를 경계로 하여 물이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물을 가두어 벼를 기르는 수도작에서 논두렁은 물을 가두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논두렁은 '경계를 나타내는 땅이면서 소통하는 길이고 물을 담아두는 댐'이기도 합니다.

또한 논두렁은 논 주인의 부지런함을 측정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합니다. 논 두렁의 풀은 가지런하게 자라는 벼들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멀리서도 확연하게 눈에 들어와 그 논 주인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가 바로 나타나기 때문이죠.

논두렁의 풀은 일년에 4~5번을 풀을 베어 주어야 합니다. 논두렁 풀은 벼에 좋지 않은 벌레나 균들이 있기도 하고 풀이 길면 걷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여러 번 논두렁의 풀을 베어봤지만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닙니다. 요즘에는 예초기도 있고 제초제도 있지만 제가 논두렁의 풀을 베던 그 시절만 해도 순전히 낫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오래 있다가 다시 벨 수 있게끔 최대한 짧게 풀을 베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 논두렁은 풀을 벤다고 하지 않고 깎는다고 합니다. 머리를 깎는 것과 비슷합니다. 머리도 짧게 깎아야 오랫동안 다시 머리가 길어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땅바닥을 기어가듯 허리를 숙이고 한 여름의 태양에 속에서 낫질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논두렁을 깎다가 실신한적도 있습니다. 아마도 태양빛에 장시간 노출되어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니 머리가 핑 돌면서 그대로 논두렁에 나자빠졌던 것인데 아마 한참 동안 쓰러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고 벼 사이로 불어온 시원한 미풍이 저를 깨우더군요.

다시 일어나서 남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 다음날 학교를 가야 하니 그날 그 일을 반드시 마쳐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했고 그만 쓰러져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려 보면 쓰러진 저를 간질이던 벼 잎들이 사각거리는 노랫소리가 귀속을 맴돌곤 합니다.

논두렁은 사실 좁은 길이기는 하지만 조화로운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논두렁이 내 땅을 내어 줌으로써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양쪽에서 조금씩 양보해서 만든 길이 바로 논두렁이죠. 한쪽에서 지나치게 욕심을 내어 논두렁을 좁게 만든다면 논두렁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양쪽 모두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러니 그 안에는 나도 좋고 타인도 좋은 논두렁이 넓이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경지정리로 인해 논두렁마다 말뚝을 박아 그 경계를 정확하게 합니다. 과거처럼 논두렁의 풀이 자란다고 해서 게으른 농부라 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벼조차 없는 논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도 가끔 논두렁을 걷습니다. 걷는 저에게 논두렁들이 이렇게 속삭입니다.
내 것을 내어주고 욕심을 줄이고 공존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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