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 인공와우기계* 판매사에서 우편물이 날아왔습니다. 인공와우 신제품 출시 기념행사에 앞서 우리나라에서도 인공와우기계가 건강보험에 적용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5일, 제1회인공와우 기념행사가 있을 예정이라는 안내장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상술과 함께 하는 무슨무슨 날이 많은 판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조용품 이름까지 이름 붙은 날이 있다고 하니, 기분은 좀 마뜩치 않았지만 인공와우를 사용하는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 행사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귀걸이형 인공와우이식기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귀걸이형 와우이식기는 몸에 착용하는 배터리 박스가 없어서 편리하긴 하지만 배터리 값으로만 한 달에 5~6만 원을 써야 하는 금전적인 부담감이 있지요. 아, 이렇게 설명드려도 인공와우이식기를 접해 보시지 않은 분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지만 아무튼 그런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달랑 와우이식기에 수술한 쪽 머리에 접착시키는 자석코일뿐인 와우이식기는 분실 우려가 매우 큰 편입니다. 우리 아이야 여자 아이니까 코일 선을 머리핀으로 고정시키면 분실 우려가 덜하지만, 남자 아이의 경우엔 분실 우려가 높으며 실제로 분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체육 시간이라도 있는 날은 지레 와우기계 걱정을 해야 하는 판이었습니다.

어쨌든 오늘 우리 가족은 모두 그 행사장에 갔습니다. 어떤 제품이 출시되었을까 싶은 궁금증은 물론이었고, 몇 해 전 분실 방지를 고려해 제가 도안까지 해서 인공와우 판매점에 팩스로 이러이러하게 제품을 만들어주십사 한 일도 있어 기대감을 가지고 그곳에 갔습니다.

교통회관 2층 대강당 행사장까지 갔는데 그 입구에서 난데없는 연주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좀 이른 시각에 도착하긴 했지만 사람들은 행사장에 들어가지 않은 채 입구에서 웅성거리고 있었으며 주최 측도 굳이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지 않는 것이 좀 이상했습니다. 점심도 못 먹고 달려온 남편과 아들 딸에게 점심 먹고 오라고 이르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행사장은 인공와우수술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농성장으로 변해 있는 것이 아닙니까?

허긴 우리 동네에 사는, 특수학교를 같이 다녔던, 딸아이와 동갑인 아이는 아직도 말을 잘 못합니다. 일반학교 특수학급에서 교육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 부모의 어려움을 잘 아는 제가 인공와우 수술을 권해 보았지만 수술 위험성에 부담을 느낀 부모는 차라리 시골에 가서 살겠다면서 수술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 역시 딸아이의 인공와우 수술 결심을 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행사장에서의 농성은 행사 시간 1시간 후에 풀어졌습니다. 그분들도 모두 청각장애를 가진 분들입니다.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된 입장에서 그분들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런 마당에 굳이 인공와우의 날을 제정해야 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시력이 안 좋아서 안경을 쓰는 분들에게 안경의 날이 없듯이, 청각장애자들에게도 인공와우의 날은 어째 좀 어색해 보입니다. 같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청각장애인들에게 이 편 저 편을 가르고 있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인공와우기계 한 번 고장나면 그 부품 값도 만만치 않습니다. 조그마한 부품 하나에 십만 원을 호가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어제 갑자기 와우기계가 고장난 딸아이가 그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행사장에선 인공와우기계가 만능인 것처럼 아직 인공와우 시술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광고성 장면들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기계는 기계일 뿐입니다.

물론 인공와우기계를 착용한 후에 딸아이는 듣기 능력이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학교생활에 아무 불편도 못 느낄 정도는 아닙니다. 제 말은 기계는 기계일 뿐 만능이 아니더라는 말이지요.

인공와우의 날이라니요. 신제품이 나오면 안내해 주시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인공와우시술을 받고 싶어도 못 받는, 건강상의 이유로 또는 신체적인 어떤 이유 때문에 그 수술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느낄 소외감은 또 어떠할까요. 굳이 상술적이라는 느낌까지 드는 인공와우의 날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 인공와우기계 : 난청이거나 청각을 상실한 사람들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전자장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