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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선생님은 <자본론>을 다 읽어보셨어요?"

고등학교 1학년 정치 시간에 정치 선생님이 열심히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손이 불쑥 올라가더니, 선생님께 '자본론을 읽어보긴 했냐'는, 생각하기에 따라 다소 오만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사실 질문하는 내 태도 또한 그리 공손한 편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본론>이라는 책이 워낙 방대한 분량인데가, 경제학을 공부한 이들 가운데도 이해하는 데 애를 먹는 경우가 있다던데, 과연 정치학을 전공한 선생님이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강의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아니, 정말 읽기나 했을까 너무나 궁금했다. 내 질문이 불손했던 데 비해, 교단에 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넘쳤던 그 선생님의 답변은 솔직하면서도 친절했다.

"선생님이 <자본론>을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서 그 사상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어요."

이 정도에서 그쳤으면 될 것을, 무슨 심술이었는지, 난 그 선생님 마음을 후벼파는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선생님, <자본론>을 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학생들에게 <자본론>을 가르친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좀 무서운 선생님이었다면, 아마도 그때 난 무지하게 맞았을 것 같다. 다행히도 그 선생님은 내게 매를 대는 대신,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었고, 별 탈 없이 수업이 끝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와 학교 도서관에서 <자본론>을 빌리는 순간, 몇 년이나 지났겄만, 마음 속으로 그 선생님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되풀이 해야 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원서는 아니었지만, 최대한 <자본론>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그 책을 난 딱 30페이지 정도 넘기고 덮어버렸다. 도통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때 그 정치 선생님처럼 <자본론>이라는 책 자체로 <자본론>에 대해 이해하기보다, 강의 시간을 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본론>을 이해했다.

그러나, <자본론>을 읽어보고 싶다는 내 욕망은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끊임없이 샘솟았다. 수를 광적으로 싫어하는 내게, 복잡한 이론을 선보이는 그 책이 좋을 리 없는데도, 늘 목에 가시 걸린양 무언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느낌은 손철성 교수가 엮은 <자본론>(풀빛 펴냄)을 읽으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점차 엷어졌다. 손 교수가 엮은 <자본론>은 본래 <자본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짧다. 고등학교 시절 한 번쯤은 보게 되는 장편 문학 요약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랬기에, '이런 식으로 <자본론>을 접해도 될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는 했지만, 적어도 원서를 그대로 읽기 전에 그 문을 따기 위한 열쇠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대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는 지금이 물론 조금 더 잘 이해가 갔다. 노동가치설이라던가, 잉여가치설, 왜 자본주의 사회가 자멸할 수밖에 없는가 등에 대해서는 이미 강의 등을 통해 조금씩 익혀왔기에 검은 건 글자요, 흰 것은 종이구나라는 수준으로 책이 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이 짧은 요약본을 보면서도 몇 번이나 책을 덮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만큼, <자본론>이 내게 말하는 바는 간단하지 않았다. 이리 저리 어렵게 꼬인 얘기들만 같아 읽기 싫은 충동을 간신히 누르며 끝까지 읽어낸 시간이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적어도 <자본론>을 최대한 알기 쉽게 요약한 책 덕분에 카알 포퍼가 했던, 오래 전부터 궁금해 왔던 말 한 마디를 드디어 마음 속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 보지 않은 사람은 바보요, 늙어서까지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는 사람은 더 바보다."

손 교수가 엮은 <자본론>을 보면서 몇 번이나 잘못된 사회 구조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신봉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는 했지만, 이제 곧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라면, 또한 그의 사상이 사회에 적용되어서는 좋을 것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이미 그의 사상은 실패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위험성을 섬뜩하게 경고한 마르크스의 <자본론> 덕분에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폐해를 깨닫고 개선할 노력을 기울인 것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그의 사상은 실패한 것처럼 보일 뿐, 아직 실패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계속해서 변형된 형태로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기반을 마련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내 생각은 최근 개봉한 <홀리데이>의 한 대사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無錢有罪, 有錢無罪!"

이런 외침이 여전히 유효한 시대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유효하다면 이미 실패한 사상이라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언제든 밟는 순간 터지는 지뢰처럼, 자본주의 사회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열심히 누르고 밟아 다시 터뜨릴 시한폭탄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밟으면 터지는 지뢰로 안고 살 것인지, 아니면, 비록 19세기에 바라본 사회였지만, 없는 자에게 끊임없이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지적한 <자본론>을 교훈 삼아, 그런 구조를 조금이라도 바꾸어 하나의 예방주사처럼 쓸지는 우리에게 달린 셈이다.

덧붙이는 글 | 많은 이들이 <자본론>을 구시대의 유물로 생각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가 여전히 존재하는 지금, 어쩌면 그 책을 이 시대에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본론, 자본의 감추어진 진실 혹은 거짓

칼 마르크스 지음, 손철성 엮음, 풀빛(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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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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