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증명사진을 찍기 전에 주로 사용하던 사진, 넥타이도 안매고 안경줄도 보이고 스탬프 자국도 있는 등 성의없어 보이는 사진이라는 평을 들었다.
증명사진을 찍기 전에 주로 사용하던 사진, 넥타이도 안매고 안경줄도 보이고 스탬프 자국도 있는 등 성의없어 보이는 사진이라는 평을 들었다. ⓒ 양중모

"야, 어디를 들어간다고 해도 면접 경험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지. 안 그래?"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구직을 포기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가 남의 얘기처럼 들렸건만 거울을 보니 그건 다른 사람의 모습이 아닌 내 모습이었다. 친구들 말처럼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구직을 아예 포기하는 건 스스로를 나태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원하는 기업이나 언론사가 채용 공고를 냈을 때 바로 이력서를 넣을 수 있는 준비 정도는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력서 만들기 그 첫 번째 작업인 이력서용 증명 사진 찍기에 착수했다.

한 헤드헌터는 '좋은 인상이 나올 때까지 수십번이고 찍으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한 번 찍는데 싸도 몇 천원인데 어디 그렇게 하기가 쉽던가.

늘 싸게 찍을 것인가 돈을 더 주고 비싸게 찍을 것인가가 고민된다.
늘 싸게 찍을 것인가 돈을 더 주고 비싸게 찍을 것인가가 고민된다. ⓒ 양중모

첫 번째 이력서 사진은 정장을 입을 기회가 있어 동네 사진관에서 증명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러나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찍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별 성의 없어 보이는 그 사진관에서 몇 번이고 다시 찍어봐야 돈만 버릴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여기 저기 정보를 수집해 사진을 잘 찍는다는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다른 데보다 돈 좀 더 주고, 한 번에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으면 오히려 남는 장사 아닌가. 그렇게 힘들게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은 신촌의 A 사진관이었다.

자자한 명성에 걸맞지 않게 사진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허름해 보였다. 그러나 대신 'KBS 출연한 사진관', '무슨 스튜어디스 양성소 지정 사진관' 등 사진관을 홍보하기 위해 걸린 간판이나 포스터들이 그 명성을 입증해주고 있는 듯했다.

"자 일단 머리 모양 만지시고요."

'사진 찍으러 왔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네 사진관과 달리 그 곳 사진사는 '거울을 보며 옷이며 머리를 만지라'고 했다. 거울 앞 탁자에는 스프레이, 젤, 빗, 헤어 드라이 등이 갖추어져 있었지만 이런 걸 다 사용하려니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살짝 머리를 뒤로 넘기기만 했다. 이어 사진사를 따라가 사진 찍는 자리에 앉았다.

"자세가 좀 비뚤어졌거든요. 좀 웃으시고요"

사진사 아저씨는 바로 사진을 찍지 않고 이런 저런 교정 사항을 말해주었다. 그 말에 상당히 믿음이 갔다. 그 바람에 동네 사진관과 달리 사진찍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때였다.

"넥타이는 일부러 넓게 매신 거죠?"
"아, 예... 뭐."

사실 아직 넥타이를 매는 법이 능숙치 않아 넓게 맨 것이지만 그렇게 말하기는 어쩐지 무안하지 않은가. 게다가 "다시 좁게 안 매 드려도 되죠?"라고 묻는데 "다시 매주세요"라고 말하는 건 더 어색할 것 같아 그냥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돌아가는 길에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사진을 찍고 나니, 내가 사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머리며 옷을 만지고 있던 여학생이 여전히 얼굴과 머리 등을 만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여자라 다르긴 하지만 그 모습을 보니 내가 너무 무성의하게 찍었나 싶은 것이 약간 후회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잘 찍는 곳이라고 했으니 믿어보자 라는 심정으로 '다시 찍어달라'는 말을 꾹 참은 채 사진관 문을 밀고 나왔다.

수소문끝에 찾아간 잘 찍는다고 소문난 사진관
수소문끝에 찾아간 잘 찍는다고 소문난 사진관 ⓒ 양중모

사진을 찾으런 간 날, 그 날 역시 한 여학생이 사진을 찍으러 와 있었다.

"지난 번에는 준비가 덜 되어서 좀 이상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잘 나와야 할텐데, 사진 별로면 다음 번에는 싸게 해주실 거죠?"

그 여학생은 지난 번 여학생보다도 더하다. 대체 몇 번을 찍었고, 몇 번을 더 찍을 생각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좋은 인상의 사진이 나오려면 그 정도 노력을 기울이는 게 당연한 것일까.

"여기 있습니다."

그 여학생을 곁눈질하고 있을 때 사진사가 내게 사진이 든 봉투를 건네주었다. 바로 열어보고 싶었지만 혹시나 사진이 별로면 실망한 표정이 바로 얼굴에 떠오를 것 같아 일부러 받은 후에 밖에 나와 봉투 속 사진을 꺼내 보았다.

"으음..."

사진은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미소도 어색했을 뿐 아니라, 어떻게 보면 상대방을 비웃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동네 사진관보다 두 배 더 비싸게 치른 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 그렇게 아까울 수가. 그 사진을 친구에게 보여주며 '그 사진관 잘하더니만 별로네'라고 했더니 친구 대답이 걸작이다.

"야, 이렇게 나온 건 사진사 탓이 아니지. 니 미소가 그렇게 부자연스럽고 인상이 그런 건 니 탓이지."

그래, 내 마음이 비딱한데 좋은 사진이 나올 리 없겠지. 좀 더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자. 그러면 굳이 돈 더 주어가며 잘 찍는 사진관 찾아 헤맬 필요 없겠지...

덧붙이는 글 | 취업 강좌에서 사진에 대해서도 많이 강조하는데요. 기본적인 사항들만 갖추어져 있다면 사실 사진 찍는 기술보다 자신이 살아온 생애가 얼굴에 어떻게 표현되어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아무리 웃어도 늘 불만 투성이라면 그 모습이 예쁘게 나올 수 있을지, 스스로를 반성해 봅니다. 제가 찾아갔던 그 사진관 아저씨 다른데 비해서 열심히 찍어주십니다. 사진이 제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지, 친구 중에는 괜찮게 나왔다는 이들도 있었으니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