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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9일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2단계 제4차 6자회담 전체회의가 6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등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가운데 북한 김계관 수석대표(오른쪽)와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수석대표(왼쪽)가 송민순 수석대표(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악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악수가 있은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경수로의 제공 시기를 놓고 북-미 간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지난해 9월 19일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2단계 제4차 6자회담 전체회의가 6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등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가운데 북한 김계관 수석대표(오른쪽)와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수석대표(왼쪽)가 송민순 수석대표(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악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악수가 있은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경수로의 제공 시기를 놓고 북-미 간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 연합뉴스 성연재

작년 9월 19일 진통 끝에 6자회담 공동성명이 채택되자, 당시 통일외교안보팀의 수장이었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비핵화와 한반도 영구평화 구축을 향한 거보가 시작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도 '한국 외교의 쾌거'라며 자화자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의 환희는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고, 또다시 한반도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린 게 아니냐는 비판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부가 공동성명 채택에 들뜬 나머지, 그 취약성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황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비단 북한의 위조지폐 및 금융제재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게임의 법칙'을 재구성해보면 이 문제는 일부분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9.19 공동성명을 비롯해 최근의 상황을 심층적이고 동태적으로 분석해야 할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부시 행정부가 막판에 9.19 공동성명을 수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이 과정에서 미국 내 강온파의 부침은 어떻게 나타났는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주도하는 실질적인 인물은 누구인지, 대북 금융제재는 일시적인 법집행인지 아니면 부시 행정부 초기부터 구상해왔던 '맞춤형 봉쇄'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신호탄인지, 가장 본질적으로 북핵 문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의도는 무엇인지.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크리스토퍼 힐, 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지난 9월 6자회담에서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그는 부시 행정부 내 몇 안되는 협상파로 알려져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지난 9월 6자회담에서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그는 부시 행정부 내 몇 안되는 협상파로 알려져있다. ⓒ 통일뉴스 김치관
역설적으로 네오콘을 비롯한 대북강경파의 반격은 9.19 공동성명 채택과 궤를 같이 한다. 이는 공동성명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변화로 해석하면서 협상파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대북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힐은 부시 행정부 내 몇 안되는 협상파인데,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신임을 바탕으로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가진 인물인 것처럼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그는 차관보로 취임한 직후부터 딕 체니 부통령과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의 강력한 견제를 받아왔고, 9.19 공동성명 채택 직후부터 대북정책 결정과정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공동성명의 주역인 힐이 공동성명 채택과 함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9.19 공동성명 채택을 전후한 미국 내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동성명과 관련해 주목을 끈 부분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상당히 유연해졌다고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담겨졌다는 것이다. 우선 이른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의 핵 폐기)를 고수했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한다는 한층 유연해진 표현에 동의했다. 그동안 북한은 '폐기'가 강압적이고 비자발적인 표현이라며 이를 '포기'로 대체할 것을 요구해왔고, 부시 행정부는 결국 이를 수용한 것이다.

둘째는 대북 안전보장과 관련된 부분이다.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역시 과거보다는 유연해진 태도이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이 직접 북한에 안전보장 약속을 하는 방식보다는 다자간 안전보장을 선호했었다. 또한 핵무기 불사용 약속도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꺼렸다. 이는 미국의 세계전략의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셋째는 부시 행정부가 인정하기 꺼려했던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인정하고 경수로 제공 문제도 "적절한 시점"에 논의하기로 동의했다는 점이다. 이 부분과 관련해 미국의 협상 대표단은 '모호성' 남기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경수로가 공동성명에 포함되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가 막판에 부시 대통령의 지침을 받아 이를 수용했다.

넷째는 미국도 대북 에너지 지원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의 악행을 보상할 수 없다"며,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다른 나라들이 에너지를 지원하는 것은 동의할 수 있지만, 미국은 참여 의사가 없다고 말했었다.

이 밖에도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문제를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다루기로 한 점, 북미 상호간의 주권 존중 및 평화적 공존, 그리고 관계정상화 조치를 취하기로 한 점 등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과거보다 유연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등떠밀린 미국, 마지못해 동의하다

제5차 북핵6자회담 사흘째인 지난해 9월 11일 오후 중국 베이징 댜오이타이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우다웨이 중국측 수석대표가 의장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제5차 북핵6자회담 사흘째인 지난해 9월 11일 오후 중국 베이징 댜오이타이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우다웨이 중국측 수석대표가 의장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옥현
그렇다면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해온 부시 행정부가 기존의 입장보다 후퇴한 공동성명 채택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국내외 대다수 전문가들은 크리스토퍼 힐로 상징되는 대북정책 라인의 변경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즉, 네오콘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1기 때와는 달리 대북정책 라인이 부시-라이스-힐로 간소화되고 위상도 강화됨에 따라 실용주의적 접근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부시 행정부가 '마지못해' 공동성명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보고자 하는 '소극적 동기'가 강하게 투영되었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마지못해 공동성명을 수용한 이유는 두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데 있다. 첫째 요인은 중국의 강력한 경고이다. 당시 중국이 막바지에 작성한 문안에 대해 미국을 제외한 5자는 동의했었다. 그러자 중국은 미국의 반대 때문에 공동성명이 채택되지 않으면 그 책임은 미국이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만약 미국의 반대로 공동성명 채택이 무산되면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고립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당시 국내외적으로 곤경에 몰려 있었다. 이라크 정책에 대한 지지율이 40% 미만으로 떨어졌고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고조되고 있었다. 더구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에 대한 부실한 대비 및 늦장 대응까지 겹쳤다.

이처럼 중국의 경고와 국내외적 곤경이 맞물리면서, 북핵 문제까지 악화되면 부시 행정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몰릴 수도 있었다. 결국 부시 대통령이 막바지에 '경수로'가 포함된 중국 측 문안을 수용하라고 지시함으로써 극적인 합의에 도달했던 것이다.

곧바로 시작된 강경파의 반격

9월 6자회담 이후 딕 체니 부통령과 조지프 국무부 차관을 중심으로 한 미국 강경파의 반격은 한층 강화되었다. 사진은 딕 체니 미국 부통령.
9월 6자회담 이후 딕 체니 부통령과 조지프 국무부 차관을 중심으로 한 미국 강경파의 반격은 한층 강화되었다. 사진은 딕 체니 미국 부통령. ⓒ 로이터/연합뉴스
주목할 점은 강경파의 반격이 9.19 공동성명 채택과 동시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공동성명이 채택된 다음날 미국 정부의 강경파들은 작심이라도 한 듯, 미국 언론을 통해 '공동성명 폄하하기'에 나섰다. <뉴욕타임즈>는 9월 20일자 신문에서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크리스토퍼 힐이 두가지 실책을 했다"며, 핵 폐기의 일정을 담지 않고, 경수로 문제에 대해 양보를 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다른 언론들도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공동성명에 대한 비판론에 무게를 실었다. 특히 강경파들은 우라늄 농축 문제가 공동성명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집중적으로 문제삼았다. 이와 관련해 힐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이라는 표현에 우라늄 농축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지만, 강경파들은 이를 명확히 했어야 했다고 반발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 강경파들은 언론을 통해 공동성명 폄훼하기에 나서면서 '부실한 협상(?)'의 책임을 힐 차관보에게 떠넘겼다. 이는 공동성명의 주역이라는 힐이 공동성명 채택과 함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이다.

강경파의 반격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강경파들은 공동성명에 경수로가 포함되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었다. 그러나 중국의 압력에 밀려 이를 수용했지만, 곧 경수로 문제를 논의할 "적절한 시점"을 이용해 반격에 나선 것이다.

공동성명 채택 직후, 힐은 기자회견을 통해 경수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뜻밖에도 경수로 문제를 논의할 "적절한 시점"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북한이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모두 없애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를 받을 때" 경수로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북한은 바로 다음날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미국이 대북 신뢰 조성의 기초로 되는 경수로를 제공하는 즉시 NPT에 복귀하고 IAEA와 담보협정을 체결하고 이행할 것"이라고 받아쳤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경수로 문제에 대한 선공(先攻)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에서 나왔던 것이다.

문제는 왜 미국이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경수로 문제에 대해 초강수를 뒀냐는 점에 있다. 이 의문은 "적절한 시점"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조지프 국무부 차관의 주도 하에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풀리게 된다. 조지프는 대북 협상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을 갖고 있는 인물로서,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기 부시 행정부의 대표적인 대북 매파이다.

그가 의도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공동성명 채택과 동시에 경수로 문제에 대한 초강경 입장을 힐에게 발표하게 함으로써, 공동성명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6자회담 프로세스를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딕 체니와 조지프를 주목하라

이후 딕 체니 부통령과 조지프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의 반격은 한층 강화되었다. 힐은 공동성명 채택 이후 교착 상태를 타개하고자 11월에 방북을 추진했다. 그러자 체니는 "평양에 가려면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 약속을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이는 사실상 평양에 가지 말라는 뜻이다. 이로 인해 힐의 평양행은 2005년 5월에 이어 또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의 또 한가지 수법은 북한의 핵포기에 따른 '기대효과'를 크게 반감시키는 발언을 함으로써, 북한의 핵포기 동기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일례로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은 10월 하순 모스크바 방문중에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더라도 당분간 북한과는 외교관계를 수립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의 위폐 문제에 대한 금융제재는 6자회담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6자회담과 관계없이 대북 제재가 계속될 것임을 강력히 암시했다. 아울러 작년 여름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을 자극하는 것을 자제했던 것과는 달리,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의 입을 통해 "범죄정권"이라는 발언을 잇따라하고, 12월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 북한인권특사와 미국 대사 등 정부 관리를 대거 참석시켜 인권문제를 전면화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힐을 비롯한 미국 내 협상파들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반면에, 네오콘을 비롯한 강경파들의 영향력이 다시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주듯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12월 19일자 기사에서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이 대북정책을 둘러싼 내부 투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것 같다"며, 미국의 정책이 "외교적 협상에서 북한을 봉쇄하고 불법적인 외화 수입원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신문은 미국 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힐 수석대표가 대북정책을 둘러싼 내부 다툼에서 주변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해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인 <유에스 & 월드리포트> 역시 최근호에서 체니와 조지프가 힐을 밀어내고 대북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며 분석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는 '맞춤형 봉쇄'를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로, 부시 행정부 초기 때부터 구상되었던 다양한 대북 제재 및 봉쇄 방안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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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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