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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한마리가 있다면'이란 제목의 요리책이 나올 정도로 닭고기 요리법은 정말 다양합니다. 최근 홍콩에서 구입한 요리책 중에도 닭고기 요리만을 소개한 것이 있는데 무려 30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그 분량이 방대하더군요. 하나 하나 책장을 넘기는 가운데 들었던 생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식탁에 오르는 닭고기 요리는 참으로 몇 개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닭볶음탕('닭도리탕'이라 불리우는 매운 탕 요리) 아니면 닭튀김, 아니면 삼계탕 정도가 흔한 메뉴고 어쩌다 좀 새로운 메뉴에 도전을 한다고 하면 닭고기 샌드위치나 냉채 정도를 만들곤 하지요. 하긴 그 메뉴들이 가장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선호되는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오늘은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 주시던, 아니 제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께서 해 주시던 닭고기 요리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그러니까 외가쪽으로 쭉 전해져 내려오는 가정요리라고나 할까요? 딱히 어머니께 여쭈어봐도 그 요리의 이름을 모르시는 것 같아서 이름을 뭐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닭고기 찌개'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닭고기를 한 입 크기로 좀 큼지막하게 손질한 후 감자, 양파 등을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춰 푹 끓여낸 요리입니다. 닭볶음탕과는 달리 전혀 맵지 않으면서 국물도 많은 요리라 아주 깔끔하면서도 푸짐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매운 닭볶음탕을 만들 때 조금 망설이게 될 텐데, 이 맑은 닭고기 찌개를 끓인다면 그런 고민은 덜 수 있을 거예요. 매운 맛을 좋아하는 어른이 있다면 청양고추를 나중에 송송 썰어 넣어 먹으면 되니까요.
이쯤되면 술을 즐기는 애주가들은 "에이, 안주로는 영 아니올시다로군" 할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맵고 칼칼한 닭볶음탕이 소주에 제격이라면 이 맑은 닭고기 찌개는 따끈한 정종에 아주 잘 어울리거든요? 휴대용 버너나 핫플레이트에 올려놓고 국물을 보글보글 끓여가며 먹다보면 커다란 정종 한 병은 거뜬히 비워질 듯도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국물이 끓을 때 녹말물(녹말가루+생수를 1:1로 섞은 것)을 1-2큰술 넣어 걸쭉하게 만들어 밥 위에 얹어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동시에 어른들의 술안주 겸 아이들의 닭고기 덮밥이 만들어지는 거지요. 이거야 말로 한 번의 요리로 닭 두 마리를 잡을 수 있는, 그러니까 말 그대로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닭고기 찌개용 닭을 살 때에는 한 마리를 통째로 사서 잘라 사용해도 좋구요, 맛있고 질기지 않은 부위육으로 골라서 구입해도 좋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주로 이마트에서 닭봉이랑 날개를 섞어 산 후 반 씩 나눠서 만들었지요. 주의할 점은 바닥이 좀 두꺼운 냄비를 골라서 강불에서 약불로 줄여 오랫동안 끓여줘야 제 맛이 난다는 겁니다. 후다닥 끓여서 먹으면 닭고기도 제대로 안 익어서 질기고 국물도 제대로 우러나지 않아 맛이 없거든요.
날씨도 추운데 따끈한 닭고기 찌개로 저녁상을 차려보는 것 어떨까요?
재료
닭고기 부위육(약 500그램) 감자 1개, 당근 1/2개, 대파 반 개, 양파 1/2개, 다진마늘 1큰술, 후춧가루 약간, 소금, 국간장, (혹시 있다면 치킨스톡이나 파우더 1/2큰술) 물 500-600cc(종이컵으로 2와 1/2컵-3컵 정도예요). 그 밖에 첨가하고 싶은 너무 무르지 않은 부재료를 준비해요(브로콜리, 고구마, 토란, 잣, 은행, 호두 등).
1.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재료를 모두 넣어 준비합니다. 다진 마늘이 없으면 통마늘을 저며 넣어도 됩니다.
2. 국물이 끓어 오르면서 나오는 거품을 걷고 국간장과 소금, 치킨스톡(생략 가능)을 넣고
3. 약불로 불의 크기를 줄여 30분 이상 곰국 우려내듯 끓입니다.
4. 닭고기가 충분히 무르면서 간이 스며들고, 당근이나 감자가 잘 익었으면 완성입니다. 대개 양파는 거의 흐물흐물 물러집니다. 그래도 처음부터 넣어야 국물에서 '단 맛'이 나와 맛이 좋습니다. 브로콜리나 쉽게 물러지는 야채는 맨 나중에 넣어 살짝만 익혀 먹습니다.
저희 외할머니는 이렇게 만들어 놓으신 후 꼭 초간장을 곁들여서 찍어 드셨어요. 저도 어느때인가부터 그렇게 먹곤 하는데 산뜻한 맛이 입맛을 돋워주는 것이 참 좋거든요? 한 번 꼭 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아 참! 그리고 이 닭고개 찌개는 정말 만드는 법이 지극히 간단해서 남자들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요리입니다. 한가한 휴일에 남편들을 살살 구슬러서 만드는 법을 한 번 가르쳐두면 평생 두고두고 요긴한 것이 이 닭고기 찌개의 가장 큰 장점이 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멋대로 요리' 이효연의 홍콩이야기 http://blog.empas.com/happymc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희 남편도 사실 그 쉽디 쉬운 닭고기 찌개를 아직 끓일 줄 모릅니다.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배우도록 압력을 넣을 생각인데, 연초부터 뭐가 그리 바쁜지 연일 출장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