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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과 수수 농사를 짓고 있는 셋째 형 김규복씨
콩과 수수 농사를 짓고 있는 셋째 형 김규복씨 ⓒ sigoli 고향
아버지가 동네에서 고라니고기 잔치를 벌이고 난 후 끔직한 일이?

어릴 적 고향 산과 들에는 사자, 호랑이, 표범, 코끼리나 고래, 물개 따위를 빼고는 야생조수가 종류별로 거의 다 있었다. 멧돼지는 예나 지금이나 자주 출몰한다. 그러니 굳이 아까운 돈을 허비하며 도시까지 나가 동물원 구경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진한 갈색 노루와 고라니는 사슴과다. 수컷 노루가 조금 크고 뿔이 있는 점이 약간 다를 뿐 내겐 거의 동일한 존재다. 고라니와 노루가 수도 없이 많았다. 특히 겨울엔 빈 들판으로 유유히 지나가는 두 짐승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누렁개에 쫓겨 달아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별 것 아닌가 싶기도 해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는 마을 앞에서 지켜보다가 내를 건너고 논두렁을 넘어 살금살금 다가가 직접 고라니 뒤를 쫓느라 친구와 함께 1km는 족히 뛰기도 했다.

고라니와 엎치락 뒤치락 경주를 하던 우리집 누렁이가 가끔은 토끼와 꿩도 잡아온다.
고라니와 엎치락 뒤치락 경주를 하던 우리집 누렁이가 가끔은 토끼와 꿩도 잡아온다. ⓒ sigoli 고향
40년 전 동네에선 고라니를 잡았다고 집집마다 사람을 불렀다고 한다. 고라니 맛은 '쇠고기 세 근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참새고기'나 멧비둘기에 견줄 만큼 부드럽고 특이해서 남정네들은 꿩, 토끼, 오소리, 개구리와 함께 겨울철 별미 중 두 번째라면 서럽다고 한다.

그만큼 고기 맛 아는 사람은 꼭 한번 먹어보고 싶어 한다. 이제껏 접해보지 못한 나는 여전히 상상 속에만 남아 있다. 오늘도 소갈병 걸린 듯 구미를 당기고 있으니 누가 내게 속여서라도 그 맛을 한번 보여 달라.

그날 아버지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머니 몰래 노루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댁으로 가셨다고 한다. 미신 때문에 펄쩍펄쩍 뛰는 어머니가 알았을 경우엔 뒤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니 개고기 한 점을 먹을 때처럼 쉬쉬하며 다녀오셨다.

토끼 한 마리로도 대여섯 명이 소주 대병을 서너 개는 비웠을 터인데 그보다 대략 다섯 배나 큰 먹잇감을 놓고 남자들은 시끌벅적하게 고기 맛을 즐기고 노랫가락까지 한 곡씩 뽑았으리라. 아버지는 날이 저물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와 짐짓 태연한 척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맛이 좋다던 참새구이. 사실 참새와 꿩, 토끼는 무를 두껍게 채 썰어서 간장과 참기름에 달달 볶듯 짤박하게 끓이면 더 맛있다.
그렇게 맛이 좋다던 참새구이. 사실 참새와 꿩, 토끼는 무를 두껍게 채 썰어서 간장과 참기름에 달달 볶듯 짤박하게 끓이면 더 맛있다. ⓒ sigoli 고향
그런데 다음날 믿기지도 않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두 살배기 셋째형 오른발이 삐딱하게 안쪽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멀쩡하던 다리가 난데없이 기형이 되고 말았다. 의학적 진단은 애초에 생각도 않던 할머니와 어머니는 진원지를 찾기에 이른다.

어머니는 곧 마을에서 고라니고기를 먹었다는 첩보를 접하고 아버지와 대판 싸웠다. 그 날 오후엔 할머니는 나를 업고 그 집에 가서 "그토록 맛있으면 두고두고 조용히 먹을 것이지 뭐하려고 남의 서방을 불러내 아이가 이 모양이 되게 했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결국 올해 나이 마흔둘인 삐딱이 셋째형은 거동에는 큰 불편함이 없지만 발을 질질 끌어 한쪽 발이 안쪽으로 굽었다. 지금도 신발이 한쪽은 멀쩡한데 나머지 한 짝은 땅에 끌리는 바람에 이내 떨어지고 만다. 누구든 유심히 보지 않으면 정상인 걸로 여기기 일쑤고 그냥 지나치기 쉽다.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자랄 적에 철석같이 믿는 신념을 우리에게 따르도록 했다. "남의 것 넘보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치셨고 "살아 있는 날짐승은 절대 집으로 가져오지 말라. 집으로 들어온 산 짐승은 반드시 내보내야 한다"며 살생을 금지하다시피했다.

그 중에서도 영물(靈物)이라 여기던 "고라니와 노루는 '절대로! 결단코! 어떤 일이 있어도!' 먹지 말라"고 힘주어 경고하셨다.

형이 직접 수확한 메주콩 가격이 하락해 농사 잘 지어놓고도 울상이다.
형이 직접 수확한 메주콩 가격이 하락해 농사 잘 지어놓고도 울상이다. ⓒ sigoli 고향
글쎄 숙적, 노루가 뜯어먹어서 콩 농사가 더 잘 된답니다

그런 형이 어린 시절을 잘 넘겨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산다. 생김새도 우락부락하지 않을 뿐 남자답다고 해도 상관이 없겠다. 어머니 심성을 닮았는지 농촌에 사는 형은 닭 한 마리도 직접 잡지 못하는 여린 마음을 지녔다.

20대 초반을 서울 공장에서 일하다가 귀향하여 나무농사를 하다가 몇 년 전부터는 콩 전문농사꾼으로 변신했다. 수만 평에 묘목을 심다가 아주머니 인부들이 해마다 고라니 새끼를 잡았다고 한다. 오전에 잡혀 풀어주면 오후에 다시 내려왔다.

사람들은 형에게 "영감 보약해줄텡게 주라"고 사정을 하더란다. 들은 체 만 체 매번 아주머니들 몰래 고라니를 풀어주었다. 콩 농사를 하던 지난 4년 전부터도 산자락에 잇닿아 있는 밭으로 고라니 발길이 잦았다. 마찬가지로 할머니들에게 붙들려 나무에 묶여지기도 하고 가방에 담겨 있기도 했지만 보이는 족족 놓아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을 베푼 결과 해마다 다른 사람들 콩은 적은 양을 심어 애지중지 키워도 죽정이거나 수확이 거의 없었다. 콩이라면 먹는데도 일가견이 있는 형은 날씨와 땅을 가리지 않고 다수확을 거둔다.

비결이라면 남들보다 1~2주 지나 심는다는 것과 예초기로 콩이 원줄기가 자라다가 가지를 치기 시작하면 남들이 "그러다가 콩 농사 망치지"라고 해도 아랑곳 않고 잎과 줄기를 거의 바닥까지 잘라버린다.

늦가을에 거둬들여 보면 언제나 형은 예상치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 없다. 작년엔 한 해는 잘 되고 다음 해는 망치기 일쑤인 속이 푸르스름한 검정콩을 포함해 7, 8톤을 생산했다.

그 이유가 자못 궁금하다. 고라니가 도와준 걸까?

"그것들이 뜯어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우리 콩은 걔들이 뜯어 먹으니까 더 잘 돼야. 넘들은 콩잎 뜯어먹는다고 덫도 놓고 깡통도 흔들리게 하고 허수아비도 만들어. 면적이 좁다보니까 그렇게라도 건질 욕심인가 본데 그러다보면 콩잎이 무성해져서 열매가 안 맺히거든. 내껀 나도 몇 만평인지도 모르고 밭이 여러 군데 있으니까 관리하기도 힘들잖아. 그래서 뜯어먹든 말든 냅두는 것이여. 그래도 내 것이 더 낫잖아."

이태 동안 콩 농사를 지어보니 딱 맞는 이야기다.

콩은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 중 질소를 빨아들여 줄기와 잎이 무성해지므로 자란다 싶으면 꽃이 피기 전까지 마구 잘라내는 게 수확이 훨씬 많다. 고라니가 제 구실을 한 셈이다.
콩은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 중 질소를 빨아들여 줄기와 잎이 무성해지므로 자란다 싶으면 꽃이 피기 전까지 마구 잘라내는 게 수확이 훨씬 많다. 고라니가 제 구실을 한 셈이다. ⓒ sigoli 고향
고라니에게 당한 설움, 고라니에게 선행을 베푸니 이런 일도 있는가 보다. 참으로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구석이 많다. 콩잎을 뜯어먹었기 때문에 더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썩 괜찮아 보인다.

농사를 지으면 도인이 되는 걸까? 마냥 들짐승을 내칠 일도 아니다. 콩이 베게 심어졌으면 비둘기와 꿩이 찾아와 드물다 싶게 솎아주기까지 하면 그해 농사는 더 잘 되었다.

얼마 전 남부지방에 기러기가 떼로 몰려와 보리를 뜯어먹었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지만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뿌리만 살아 있으면 금방 치고 올라와 더 튼튼하게 크도록 웃자람 방지 효과를 누렸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작년에 처음으로 속이 파란 콩을 심어 실패하지 않았단다. 화순 동면에 가면 흑두부 맛이 끝내준다.
작년에 처음으로 속이 파란 콩을 심어 실패하지 않았단다. 화순 동면에 가면 흑두부 맛이 끝내준다. ⓒ sigoli 고향

덧붙이는 글 | 콩이 필요하신 분은 제 형인 김규복씨(011-9624-5549)에게 직접 연락 바랍니다. 김규환 기자는 인터넷고향신문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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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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