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이 갈수록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는 노동뿐만이 아니라 주거와 교육 등에도 뿌리를 내리며 공동체를 갉아먹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와 함께 '양극화를 넘어'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양극화해소연대는 지난해 9월 전국 136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구성한 사회·경제 개혁 추진을 위한 연대기구다. 이 글은 기획 여섯번째 임대아파트 거주민을 통해 들여다본 양극화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다. <편집자주>
|
서울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그 곳에 가자고 하면 대부분의 운전사들은 얼굴을 찌푸린다. 길이 좁고, 비탈인데다 큰 길까지 나오는 데만도 1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바둑판 처럼 뚫린 도로, 집 지척에 있는 지하철과 버스 등 다양한 대중교통 수단이 있는 강남 지역과는 판이 하다. 물론 집 값도 하늘과 땅 차이다.
강남은 8.31 부동산 대책에도 집 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서울 한편에는 쫓겨날 것을 걱정하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도 있다.
관악산 자락에 있는 신림동의 한 주공 임대아파트. 기자는 2호선 지하철 신림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20분 이상 걸려서야 겨우 그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 버스가 여기서는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신림7동 난곡에 살았던 주민들이 신림동의 주공 임대아파트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은 지난 2000년 10월. 818세대 가운데 171세대는 조합원(분양권 소유)이며 나머지 647세대는 세입자들이었다. 이들은 난곡이 개발되면서 이주했다.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 살다가 뜨거운 물 걱정 안 하는 호텔 같은 18평(전용 면적 13평)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주민들은 세상 모두를 얻은 듯 기뻐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들뜬 기쁨의 감정은 걱정과 두려움으로 변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웃다가 울게 된 임대 아파트 주민들
이들은 난곡에서 전세보증금이 평균 300~400만원인 집에서 살았다. 여기에 전기세와 연료비 3~4만원 정도가 추가됐다. 하지만 임대아파트로 옮겨오면서 조건이 확 바뀌었다.
우선 135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입주자 대부분은 무담보로 1000만원 대출을 받았다. 5% 내외의 싼 이자율이었지만, 어쨌든 원금과 이자 상환은 이들의 몫이었다. 여기다 월 임대료 16만1200원(2000년 입주 당시)과 매달 날아오는 관리비가 쌓이면서 이들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2000년 난곡에서 신림동 임대아파트로 818세대가 이주할 당시 60세 이상이 600명 가량 됐다는 점은 이들의 경제적 능력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71세 남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한영미(71, 가명)씨. 그는 생활보호대상자로 매달 50만원 정도를 받아서 임대료 19만890원(2006년 1월 현재)과 관리비(전기세, 수도세, 연료비) 5만원 정도를 내고 나면 수입의 50%가 사라져 버린다.
"난곡에 살 때는 연탄 때면서 먹는 거 입는 거 빼면 한 달에 3만원 정도면 충분했는데 여기 오니까 달라졌어. 겨우 먹고 사는 정도야. 난곡에 살 때가 오히려 좋았지. 임대료가 통장에서 자동이체 되기 때문에 연체는 하지 않았지만 임대료 연체하는 사람들 많아. 난곡 살 때가 더 나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식은 없느냐"고 묻자 한 씨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는데, 딸은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고 40세인 아들은 카드 빚 때문에 최근에 '파산 신청'을 냈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1학년 딸 3명과 아내를 책임져야 하는 이정환(가명, 48)씨는 IMF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었다. 이씨는 원래 간판 제작 회사에 다녔지만, 지금은 일이 있을 때만 나간다. 간판 다는 일을 해서 이정환씨가 하루에 버는 수입은 일당 10만원. 그러나 한 달에 많아야 5번 정도밖에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런 불안정한 삶은 이정환씨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늘 입에 술을 달고 살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아내가 겨우 인근 학교 식당에 나가 일을 해서 60만원을 버는 것이 안정된 수입의 전부다. 아이 3명 키우면서 사는 게 어려워진 이씨 가정은 지난 달부터 임대료를 연체하기 시작했다.
이씨처럼 연체가 반복되고, 임대료 내기가 만만치 않아지자 임대아파트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하나 둘 이 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물론 몇몇 집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다른 곳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난곡에서 흘러온 세입자 647세대 가운데 22%나 되는 142세대가 신림동 임대아파트를 떠났다는 사실은 주공 임대아파트가 이들에게 버거운 공간임을 말해주고 있다.
주택관리공단에서 관리하는 전국의 임대아파트의 임대료 징수율은 65%(2005년 11월 현재)에 불과하지만 이 아파트의 징수률은 43.7%에 불과하다. 10가구 가운데 5가구 이상은 임대료를 연체하고 있는 셈이다.
78세대 강제 퇴거 당할 수도
3개월 이상 관리비와 임대료, 임대 보증금 체납이 지속될 경우 주택공사는 소송에 돌입한다. 주공은 제소 위임→본안 소송→확정 판결을 거치면 임대료 연체 세대에 대한 강제 집행에 들어갈 수 있다.
이 기간까지는 2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주택공사가 강제 집행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 유예 기간을 주는 것이지만, 임대료 연체자들에게는 별반 대책이 없다. 이 임대아파트의 경우 78세대가 3개월 이상 임대료, 관리비, 임대보증금 체납으로 인해서 주공으로부터 제소 위임 이상의 조치가 취해진 상태다.
드문 경우지만 이 아파트에서는 4세대가 임대료를 내지 못해 강제로 쫓겨났다.
이 때 주택공사는 강제집행의 소송비, 불법거주보상금, 강제 집행을 위한 사다리차, 물품 보관위탁비, 열쇠 비용까지 임대인에게 모두 전가했다. 그렇게 산출된 금액은 1365만원이 넘었다. 임대보증금을 초과한 수준이다.
2004년 9월 2일 임대 아파트에서 쫓겨난 이 노부부는 자식도 돌보지 않고, 수입도 없이 살다가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강제 집행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노부부는 보증금 한푼 찾지 못하고 맨몸으로 거리로 내던져졌다. (표 참조)
강제 집행 과정을 지켜봤던 이 아파트의 60대 주민은 "냉장고에서 나온 반찬만 화단에 남기고 어디론가 모두 실어가 버렸다"고 말했다.
임대 아파트 거주자 23% 연체
신림동의 한 임대APT 현황 | | 임대보증금 | 임대료 | 평형 | 임대료 징수율 | 총세대 | 세입자 세대 | 떠난 세입자 세대 | 강제퇴거 | 퇴거소송진행 | 약 1350만원 | 19만원 (2006년 현재) | 18평 | 43% | 818 | 647 | 142 | 4 | 78 |
| ⓒ 오마이뉴스 한은희 |
| 전국 임대 아파트 연합회 수도권 연대회의 박영길 상임대표는 "임대료가 버거운 입주자들은 쫓겨날 때까지 버티자는 생각밖에 갖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정부는 입만 열면 양극화 해소를 말하면서도 기존의 임대주택 관리방식을 전혀 개선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길 대표는 "부도 임대 아파트를 양산하는 민간건설사들에게는 국민들의 혈세로 마련된 국민주택기금 몇 십조를 지원하면서 왜 임대아파트 관리 비용에는 예산 지원을 머뭇거리는지 모르겠다"며 "소득에 따라 임대료 차등 부과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대아파트 소득별 임대료 차등 부과와 관련해서는 국회 건설교통위 소속 의원들에 의해서 몇 차례 제기되기는 했지만, 주무부서인 건교부와 주택공사에서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태다.
전국 임대 아파트 연합회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임대주택(영구, 50년, 국민) 전체 가구는 2005년 말 현재 34만6000가구로 전체 주택의 2.6% 수준이다. 정부는 98년부터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국민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15평(전용면적 기준) 이하는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의 50% ,15평 이상은 70% 이하, 18평 이상은 100% 이하인 무주택소유자 대상으로 공급된다.
참여정부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0만호 국민임대주택 건설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그러나 전국 임대 아파트 연합회에 따르면 34만6000가구의 임대아파트 가운데 약 23%가 임대료와 관리비를 연체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 가운데 약 3739가구는 가계 빚 때문에 가압류를 당해 언제 거리로 쫓겨날지 모르는 위험에 내몰려 있다.
| | 4가구 중 1가구, 최저주거기준 이하 생활 | | | | 전체 4가구 가운데 1가구는 여전히 최저주거기준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주택법에서 공고한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가구가 전체 1431만 2000가구 가운데 330만 6100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구수 전체의 23.1%다.
최저주거기준은 가구 구성별 최소 주거면적과 함께 용도별 방의 수, 필수 시설 고려해 건교부가 마련한 것으로 최소면적은 1인 가구는 3.6평(방 1, 부엌 1개), 부부는 6.1평(방, 부엌 1개), 부부와 자녀 1명은 8.8평(방 2, 부엌 1), 부부와 자녀 2명은 11.2평(방 3, 부엌 겸 식사실 1개) 등으로 규정돼 있다.
최저주거기준 이하 가구는 서울이 72만5200가구로 가장 많고 경기도가 64만 가구, 부산 29만9000가구, 대구 19만9600가구로 대도시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