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터 소크라테스>의 주인공 구동혁(김래원 분)은 파란색 추리닝을 입고 불량기 가득한 삐딱한 자세로 앉아 '왜 내가 공부하냐'며 툴툴거렸다. MBC 드라마 <궁> 1회에서 채경(윤은혜 분)의 아버지(강남길 분)는 파란색 추리닝 차림으로 기자들을 유인해 채경을 집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하고, 딸이 탈 수 있도록 자전거도 집밖으로 꺼낸다. <개그콘서트> '현대생활백수'에서 "일구야, 어떻게 안되겠니"를 연발하며 백수 생활 분투기를 보여주는 고혜성도 파란색 추리닝을 입고 나온다. 만화 <추리닝>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추리닝도 파란색이다.
왠지 고집스럽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진 고치와 백수가 모두 파란색 추리닝을 입고 등장하곤 한다. 한편 <경향신문> 2005년 10월 24일자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일산주부들 "추리닝맨 좀 잡아줘요"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아파트단지에 '노출 맨'이 등장, 주부 등 여성들을 불안에 떨게하고 있다. 모자를 눌러쓴 채 트레이닝 복장을 하고있어 일산 주부들 사이에서 '추리닝 맨'으로도 불리는 이 남자는 40대 나이에 늘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다. 이 남자는 인적이 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혼자 지나는 여성을 만나면 자신의 주요 부위를 노출하는 등 음란행위를 보이다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달아난다.
이러한 기사의 내용을 표현한 삽화의 추리닝맨은 어떤 추리닝을 입고 있을까? 역시 파란색 추리닝이다.
그럼 이는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 일부에서는 몇 년 전 <좋은 친구들>이라는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서 '클놈'의 지상렬, 염경환이 파란색 추리닝을 입고 나온 이후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럼 원래 파란색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인지적, 사회 심리를 갖고 있는 것일까?
몇 년 전부터 이름을 바꾼 은행들은 간판을 모두 파란색으로 바꾸었다. 또한 새롭게 로고를 마련한 한 정유사도 간판뿐만 아니라 주유소의 색깔 자체를 파란색으로 바꾸었다. 이미 최고의 정보통신기업이 된 한 회사도 몇 년 전 상호 이름을 바꾸며 이미지 변신을 꾀할 때 파란색을 전체 브랜드 이미지로 택했다. 한 대기업 계열의 아이스크림 체인점도 모두 파란색으로 선택하며 이미지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파란색으로 바꾸는 것일까? 파란색은 바다를 연상하기 쉽고 시원함을 풍기니 그 이미지를 마케팅 하기 위해서 파란색으로 바꾸는 것일까? 이들이 노리는 것이 단지 이런 시각적인 이미지만은 아닐 것이다.
스에나 타미오가 말하듯이 독일 낭만파 시인인 노발리스는 '푸른 꽃'에서 파란색 의미를 죽음과 재생으로 형상화 해놓고 있다. '푸른 꽃'은 꿈의 이미지에 이끌려 다양한 여행을 경험하고 결국 꿈의 예고대로 동경하던 여성을 만난다는 줄거리다. 주인공인 하인리히는 진실한 사람을 추구하며 공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정신적인 성장을 이룬다. 파란색은 진실과 정신적인 성장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노발리스는 푸른 꽃에서 파란 물을 죽음과 재생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끊임없이 물결치는 푸른 파도는 삶과 죽음의 반복을 나타낸다. 파란이라는 색은 피안과 차안을 초월하는 상징으로 그려진다.
뤽 베송의 영화 <그랑블루>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파란색이 등장한다. 그랑블루는 다이버의 실제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아 뒤섞인 채 영령에 이끌리는 내성적인 성격의 자크라는 청년 다이버의 이야기이다. "네가 인어들을 위해 죽고 영원히 살기로 결심을 하면 인어들이 네게로 와서 네 사랑은 가능해지지. 네 사랑이 진실하고 순수하면, 네가 인어들 마음에 든다면 영원히 너와 함께 할 거야." 마침내 그는 생사를 초월하여 푸른 바다와 하나가 되는 잠수법을 터득하게 된다. 파란색은 생사를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라는 의미를 지닌다.
파란색은 시원한 느낌을 주지만 한편으로 절망, 고독, 이별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파란색을 좋아하게 되면 보통 ▲긴장하고 불안스런 성격이다. ▲공상적인 꿈을 많이 꾼다. ▲ 놀란다고 한다.
그러나 파란색은 자기탐구, 정화, 치유, 내적성장, 해방감, 새로운 나, 희망, 자립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불안과 공상은 새로운 희망이자 해방이요 새로운 나, 자립을 위한 전제이다. 또한 파란색에는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담겨있기도 하다. 파란색은 그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를 부각시키려고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영화에서 자주 사용된다. 무엇보다 파란색은 죽음과 재생의 의미를 지닌다. 기존의 것은 종말을 고하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생의 탄생을 드러내 주는 색이다.
새로운 출발을 나타낼 때 파란색은 기존의 이미지를 제거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그것은 새로운 나, 희망, 내적 성장을 의미한다. 기존 기업 이미지나 사업의 죽음과 새로운 이미지와 기업, 사업의 탄생을 의미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이전의 아픈 기억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파란색을 사용하는 것도 좋다. 나, 주체를 강조하고 싶을 때도 그러하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운 인간은 불안하고 사고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확실하다고 했다. 파란색은 자유로운 인간과 사고하는 인간을 나타내는 색에 가깝다. 그러나 색깔만 바꾼다고 기업이나 사업이 가지고 있던 기존 문제의 해결이자 희망은 아니다. 개인적인 고민도 마찬가지이다. 실질적인 노력이 없을 경우에는 내적 성장은 있을 수 없다. 죽음과 재생의 연속이 아니라 재생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은 당연할 듯싶다.
그러나 현재 영화와 드라마, 만화, 그리고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파란색 추리닝은 그야말로 촌스러움, 키치문화의 한 소재에 머무르고 있다. 촌스러움에 관한 감수성적 심리가 얽혀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본다면 자생적으로 독립적으로 자신의 길을 모색하는 존재를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이 모두 세련과 깔끔함으로 몰려가는 길에 촌스러워도 나는 나라고 주장하는 이미지 심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백수를 상징하는 것은 이 역시 현재는 내세울 것이 없다고 해도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자기 탐구, 치유, 내적 성장, 해방감, 새로운 나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죽음이자 재탄생이며 희망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 파란색 추리닝은 편안함을 준다.
덧붙이는 글 | * 참고문헌
스에나가 타미오, 색채심리 박필임 옮김, 예령, 2001
Faber Birren, 색채심리 김화중 옮김, 동국출판사, 1991
에리히 프롬, 건전한 사회 김병익 옮김, 범우사,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