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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평전>(푸른숲)의 겉표지
<호치민 평전>(푸른숲)의 겉표지 ⓒ 노태영
난 옆에서 <호치민 평전>(푸른숲)을 읽거나 <장일순의 노자이야기>(삼인)을 읽고 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영웅이자 사회주의 혁명가이며 건국의 아버지로서 고난과 역경을 지혜와 용기로 이겨낸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분이다. 정약용의 <경세유표>를 평생 머리맡에 두고 읽고 또 읽었다고 해서 우리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분이시다.

베트남의 독립과 건국의 과정을 보면 호치민의 넓고 깊은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우리도 호치민과 같이 훌륭한 분을 건국의 아버지로 모시지 못한 것은 우리나라의 비극처럼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은 축복받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호치민 같은 정신적 지도자를 모시고 지금도 생활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베트남에 호치민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장일순이 있다. 장일순 선생님은 유신독재시절과 경제적 어려움이 화인처럼 한반도를 찍어 누를 때 양심과 정의 그리고 자연처럼 유연한 삶을 통해 이 시대의 사표(師表)로서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에 충실히 행하신 분이시다. 김지하 시인과 이영희 교수와 같은 훌륭한 시대의 선각자를 길러내는 지혜를 가지신 분이었지만, 절대로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깊이를 지니신 우리 역사에서 몇 명 되지 않은 큰 사람인 것이다.

아내가 직접 그린 캔디
아내가 직접 그린 캔디 ⓒ 노태영
캔디는 단순한 순정만화 주인공이지만 어려웠던 시절에 인내와 정의의 승리라는 간단한 삶의 진리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웃음과 상냥함, 순수함을 잃지 않는 생활 속에서 우리는 희망의 빛을 본 것이다. 잘 사는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나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나 캔디 앞에서는 순수해질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캔디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사고와 의지는 독자들에게 많은 용기와 삶의 지혜를 주었다.

그런데 캔디나 호치민 그리고 무위당 장일순은 전혀 다른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비슷한 점도 많은 것 같다. 모두다 마음이 순수하다. 거짓과 악 그리고 자만심을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괴로워도 슬퍼도 절대로 좌절하지 않는 의지를 갖고 있다. 호치민의 고난과 역경은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베트남의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것은 그 사람의 사람 됨됨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무위당 장일순은 평생 무소유에 충실하면서 좁쌀 한 알이라는 '일속(一粟)'이라는 호처럼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다른 사람을 한울님처럼 섬기며 일생을 사는 분으로 유명하다.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사신 그분의 삶에서 이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캔디>를 다시 읽는 아내와 <호치민 평전>을 읽고 있는 나는 같은 집에서 정말 어느 누구보다도 더 서로 이해하고 서로를 인정하면서 살고 있다. 극과 극의 캔디와 호치민이 같은 집에서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동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캔디와 호치민의 정서는 화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캔디를 좋아하는 아내와 호치민을 좋아하는 나
캔디를 좋아하는 아내와 호치민을 좋아하는 나 ⓒ 노태영
아내와 나를 보면 이해와 서로에 대한 관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감정의 최고의 가치인 사랑이, 우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도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게 한다면, 다름과 차이를 서로 인정할 수 있는 사회는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병술년 새해 마지막으로 다짐 하나를 마음 속에 새겨본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나와 다른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한 해로 삼자. 이 시대의 최대의 화두인 양극화를 극복하는 방법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갈등과 대립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든 박정희든 아니면 이건희든 이해하고 그들을 인정하자. 나의 사고의 출발점은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다. 지난 시절 그들의 존재 자체를 거부했던 나의 미숙함을 겸허하게 반성하면서 올 한 해는 다름과 차이가 주는 상대적 무관심을 극복하는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하겠다. 이런 나의 다짐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더라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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