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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잘 삶아진 참꼬막. 이렇게 피가 질질 흘러야 한다. 너무 삶으면 질기고 영양도 달아난다.
가장 잘 삶아진 참꼬막. 이렇게 피가 질질 흘러야 한다. 너무 삶으면 질기고 영양도 달아난다. ⓒ sigoli 고향

지극히 예술적인 꼬막 맛, 비유도 기막혀

“아아, 생물 선생입니다. 알려드리겠습니다. 39번 지문에서 ‘감씨’를 ‘사과씨’로 바꿔주세요.” 고등학교 생물 시험시간에 급한 방송이 흘러나왔다. 50문제 중 6번을 풀 무렵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알만한 학생들은 시험을 보다가 “피식피식” “키득키득” “헤죽헤죽” 웃다가 잠시 시험 시간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자 반도 그랬을까는 모른다. 그냥 뒀어도 될 일을 자상한 선생님은 괜스레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분위기를 망쳤다. 여선생님께서 문제제기를 하자, 고치기로 한 모양이다.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감씨의 배젓이다. 숟가락 모양이 무척 귀엽다.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감씨의 배젓이다. 숟가락 모양이 무척 귀엽다. ⓒ sigoli 고향
감씨와 유사한 비유로 쓰이는 조개가 있다. 누군가 자주 그랬다. 꼬막을 여인네 그것이라 했다. 왜일까? 모양이 닮아서? 맛이 그럴까? 전라남도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이유가 궁금하다. 음식 하나 먹으면서 별별 상상과 질펀한 농을 버무리면 더 맛이 있기 때문인가.

이왕 시작한 김에 압권을 빠트릴 수 없으니 한 대목 볼까.

“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히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 소나기를 맞았던지 언덕 깊게 패였구나. 도끼날을 맞았는지 금 바르게 터져 있다. 생수처(生水處)의 옥답(沃畓)인지 물이 항상 고여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옴질옴질 하고 있노. 천리행룡(千里行龍) 내려오다 주먹바위 신통하다. 만경창파 조개인지 혀를 삐쭘 빼였으며, 임실(任實) 곶감 먹었는지 곶감 씨가 장물(臟物)이요, 만첩산중 으름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영계백숙 먹었는지 닭의 벼슬 비치였다. 파명당(破明堂)을 하였는지 더운 김이 그저 난다. 제 무엇이 즐거워서 반쯤 웃어 두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영계 있고, 제사상은 걱정 없다”

명창 신재효가 개작한 판소리 <가루지기타령>이다. 변강쇠가 옹녀(雍女) 두 다리를 번쩍 들고 옥문관(玉門關)을 굽어보며 여성의 비밀스러운 곳 여음(女陰)을 이렇게까지 표현했다. 관찰력이 얼마나 뛰어나면 조개 하나 가지고 별의별 상상을 늘어놓아 후대 사람을 기죽게 하는가. 참 대단한 솜씨다.

‘꼬막 맛’ 본 사람이 내린 상세한 진단

벌교에 가면 꼬막 파는 집이 많다. 고흥과 보성 일대에서 나는 꼬막은 여기를 거친다. 시중에서는 1kg 5,000원이다.
벌교에 가면 꼬막 파는 집이 많다. 고흥과 보성 일대에서 나는 꼬막은 여기를 거친다. 시중에서는 1kg 5,000원이다. ⓒ sigoli 고향
소설 <태백산맥>에서 우익 청년단장 염상구가 외서댁을 범하고 나서 입맛을 다시며 "꼬막 맛 같다"고 하는데 맛이 어쨌기에 그렇단 말인가. 꼬막 맛을 본 사람이 이렇게 입맛이 아둔해서야.

조정래 선생은 네 가지 맛으로 간단히 요약했지만 이건 오묘하고 신비하며 결코 물리지 않는 꼬막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다.

먼저 간간하다고 했다. 간을 더할 수고와 덜어낼 필요가 없다. 바다사람이든 산골사람이든 그 상태로 족하다. 짭조름하지 않다. 국물은 간이 더 된 듯 해도 살을 씹다보면 약간 싱거워진다. 이때 하나를 더 까 드시라. 4년간 먹었던 산해진미를 뱉기를 반복하는 그야말로 더도 말고 덜도 말 천연미네랄이 쏟아져 나온다.

왼쪽이 새꼬막이라 물에 씻겨진듯 하고 오른쪽 참꼬막은 뻘이 아직 묻어 있다.
왼쪽이 새꼬막이라 물에 씻겨진듯 하고 오른쪽 참꼬막은 뻘이 아직 묻어 있다. ⓒ sigoli 고향
쫄깃쫄깃하단다. 한번으로 쫄깃하다고 하지 않았다. 반복함으로써 흐물흐물한 일반 조개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물컹거리지 않으면서 씹는 맛이 절로 나매 중용의 미를 갖췄다. 참꼬막이라 허접한 새꼬막 질감에 견줄 수 없다. 쫀득쫀득하기도 하니 곁반찬이 있으면 오히려 맛을 앗아간다.

알큰하기까지 하다. 얼큰하면 그만이지 알큰하다니! 알근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톡 쏘는 알알하거나 얼얼한 맛도 아니다. 홍어가 팍 쏘는 음식인지라 잔칫상에 돼지고기와 함께 차려지지만 한 가지가 빠졌다. 자체로 알큰해 뒤끝이 깔끔한 꼬막이다.

아무리 숙달된 사람이 삶은들 육지 고기면 누린내가 있고 식초 범벅을 한 홍어무침은 고리한 맛이 난다. 심해와 육지를 연결하는 갯벌에서 자란 꼬막이 중재를 나선 이유다. 신삼합(新三合) 등장이로세!

마지막으로 배리단다. 맛을 버릴 만큼 비리지 않다. 바다에서 난 물건에서 약간 그 맛이 나지 않으면 해물이라 하기 거북하므로 태생을 속이지 않을 만큼 선보인 것뿐이다.

날 것으로 먹는 피꼬막이다. 전혀 비리지 않다. 빨간 피와 간간한 맛 때문일까.
날 것으로 먹는 피꼬막이다. 전혀 비리지 않다. 빨간 피와 간간한 맛 때문일까. ⓒ sigoli 고향
간간하고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고 배린 참꼬막을 벌써 차릴 순 없다. 꼬막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전복과 키조개, 바지락, 홍합, 가리비 등 지금껏 맛본 조개 중 으뜸이라 왕실에 진상하였던 8진미 중 단연 으뜸인 꼬막을 아직도 먹을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나름대로 서비스 좀 하련다.

최고급 붓으로 쓰던 담비 털이 입술을 간질인 듯 보드랍다. 잘 삶아서 아직 껍데기 한쪽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양귀비 볼 마냥 통통한 속살을 입에 갖다대면 묘한 충동이 일어난다. 입안에 가득 찬 기분에 미역이 슬며시 밀려오는 파도물결에 닿아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다.

살 겹겹은 지구에 처음 이끼가 생겼을 때 마냥 처녀지다. 쪽 빠는 소리도 참 이상야릇하다. “훕!” “쭙!” 엄마 젖 빨던 시절 오랜 기억 속 미궁에서 헤매게 한다. 혀에 닿아 질금질금 씹으면 원시인의 순박한 질감이 감싸 일순간 매료되고 만다.

미치도록 환장할 환상의 맛에 빠져 손이 바빠지매 쉬지 않고 까대도 입주댕이는 잠시 쉴 짬도 주지 않고 보드랍고 쫄깃하고 배릿한 느낌표(!)를 찍기에 바쁘다.

‘음음음 음냐 음냐 음냐리음냐.’

순천만을 여자만이라 불렀다. 고흥군 산정리에서.
순천만을 여자만이라 불렀다. 고흥군 산정리에서. ⓒ sigoli 고향

고흥 여자만 주변에선 힘자랑 마시라

‘꼬막’도 표준말이니 구태여 ‘고막’이라 소리 내지 말자. 왠지 벌교나 고흥 출신이 아닌 짝퉁으로 오해받겠다.

영일만 친구는 과메기를 먹는다. 벌교 건달은 꼬막을 즐긴다. 그것도 가장 알차게 속을 채운 놈들이다. 홍어는 맛 대 맛 대결에서 호불호가 너무 뚜렷하니 제외하자. 서쪽사람들보다 남쪽바다 사람들이 동쪽 인심 좋은 사람들 멀어진 마음을 풀기에 좋을 성 싶기에 앞으론 꼬막을 대접하자.

영덕대게가 영덕이 본고장이 아니듯 벌교 꼬막 대부분은 고흥 ‘여자만’에서 난다. 여자만 있는 걸까? 여자만 꼬막을 캐는 걸까? 아니다. 여수와 마주보는 여자만(汝自灣) 서쪽은 물줄기가 따로 빠지지 않아 오염원이 거의 없는 청정해역이다.

벌교에서 주먹자랑하지 말고 장성에서 인물자랑 하지 말라고 했다. 여수에선 돈자랑 말라던가. 그럼 벌교와 맞닿아 있는 고흥에선 무엇을 뽐내면 안 되는가? 힘자랑이다. 골격이 튼튼하고 힘이 장사인 건 매일같이 꼬막을 먹기 때문이다.

서해중부 해안은 공장 폐수와 수온상승은 물론이고 시멘트로 벽을 막고 도로가 육지와 바다를 단절시켜 물고기와 해조류가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이다. 오죽하면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우리나라 서해안 천일염을 젓갈 염장하는데 쓰지 못하도록 금지했을까?

크리스마스이브, 소한, 설날 가장 맛있는 날

꼬막 까다가 손톱이 물러져 갈라져도 아랑곳 않는다. 휴지를 아예 한 통 갖다 놓고 숟가락도 하나 준비하자.
꼬막 까다가 손톱이 물러져 갈라져도 아랑곳 않는다. 휴지를 아예 한 통 갖다 놓고 숟가락도 하나 준비하자. ⓒ sigoli 고향
어떤 날 먹으면 맛있을까? 무조건 이것도 추운 날이다. 꼬막은 그믐께 캔 것이 살이 알차다. 그래서 설날 맛있다. 3한4온 중 마지막 날에 사와서는 첫 추위가 문풍지를 뒤흔들 때 먹는 게 제일인데 그 날이 딱 3일 정도다.

대개 10월말 11월 초에 토실토실 살이 올라 봄철 알을 품기 전까지이지만 그 첫 물때가 성탄절 전야다. 약간 날이 풀리려다 북극과 시베리아 벌판에 있던 온갖 된바람을 몰고 오는 때가 대한(大寒)도 울고 간다는 소한(小寒)이다. 보름 동안 여유롭게 즐기자.

이제 딱 하루 남았다. 바로 설날이다. 설에는 추석보다 생나물만 다소 부족할 뿐 힘써 농사지은 음식감이 논과 밭, 들과 산, 바다에서 그야말로 풍성하기 이를 데 없어 푸짐해도 꼬막이 빠져서야 되겠는가?

덤으로 잔칫집 마당에 꼬막껍데기가 나뒹군다. 여기도 꼬막, 저기도 꼬막이다. 질컥거리지 말라고 깔아둔 지푸라기 위에도 껍데기가 박혀 있고 문정성시 오가는 길목 땅바닥엔 쏙쏙 박혀들어 한 몸이 되었다. 자연스레 사람들이 넘어질 일도 없어졌다.

꼬막은 술먹는 하마, 술 축내는 귀신이다. 쉬 취하지도 않는다. 배 깔고 먹으면 맛있다.
꼬막은 술먹는 하마, 술 축내는 귀신이다. 쉬 취하지도 않는다. 배 깔고 먹으면 맛있다. ⓒ sigoli 고향

어사또 이도령 순행하던 길은 꼬막 나르던 장수벨트

벌교를 거쳐 순천에서 조계산을 넘고 옛 승주에서 구례와 곡성에 이른다. 순창과 담양 두 갈래로 나눠 남루한 옷차림의 어사또 이몽룡이 기웃기웃 갈지자(之)로 산골짜기를 이 잡듯 뒤지고 다니는 <열녀여춘향수절가> 한 대목을 들여다보자.

추상같이 호령하며 서리와 중방역졸에게 각기 좌도, 우도로 내려오라 하고, 종사 불러 "익산 금구 태인 정읍 순창 옥과 광주 나주 창평 담양 동복 화순 강진 영암 장흥 보성 흥양 낙안 순천 곡성으로 순행하여 아모날 남원읍으로 대령하라." 한다.

여기서 태인부터 순창까지는 전라북도지만 인접지역이다. 옥과(곡성군)나 광주, 창평(담양군), 담양, 동복(화순군), 화순, 낙안(순천시), 순천, 곡성은 마음먹기 또는 길잡이로 누구를 쓰느냐에 따라 맘껏 오갈 수 있다.

여기에서 열거한 현(縣)과 군(郡)은 예로부터 꼬막을 잔칫상에 올리지 않으면 화를 버럭 내는 지역과 100% 일치한다. 이도령이 우왕좌왕 좌충우돌 주마간산했던 이유는 필시 어느 초상집에 들어 꼬막을 먹으려던 건 아닐까.

다 먹고 난 후 장독대에 뒀다가 암탉에게 쪼아 먹이면 칼슘이 풍부한 알을 낳는다.
다 먹고 난 후 장독대에 뒀다가 암탉에게 쪼아 먹이면 칼슘이 풍부한 알을 낳는다. ⓒ sigoli 고향

이 맛있는 걸 안 먹는다구? 에라 이번 설에 한번 먹어봐?

꼬막은 술 먹는 하마다. 한 개 까서 소주 한잔에 딱 맞다. 한 소쿠리 가득해도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설날 오후 집을 비웠다가는 바닥을 보기 십상이고 친구집에 놀러 갔을 때도 맨 먼저 손이 가는 음식이다.

소화흡수가 잘 될 뿐만 아니라 고단백, 저지방 알칼리성 식품으로 비타민류 칼슘, 철분 함유량이 높다. ‘감기 석 달에 입맛이 소태 같아도 꼬막 맛은 변치 않는다’ 할 정도로 허약체질 회복식품으로 빈혈예방과 어린이 성장발육에도 좋다. 저혈압 환자가 자주 먹으면 혈색이 좋아진다. 간장 질환과 담석증 환자에게도 아주 좋은 식품이다.

특히 여성은 매달 한번 먹어줄 필요가 있다. 그날이 지나면 조금은 어질어질한 상태로 바뀌게 된다. 올 명절에 나 먹을 것 없을까 두려워 철분 보충효과는 거론하지 말았어야 했다. 패류 가운데 헤모글로빈을 함유한 것이 몇 가지나 될까. 빨간 핏물이 철분 즙, 응축된 철분 덩어리라 보면 틀림이 없다.

다만 꼬막은 조리가 간편하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삶은 듯 만 듯 넣었다가 뺄 준비를 해야 한다. 채반에 끓는 물을 끼얹기만 하는 방법으로 삶은 몇 개가 한 망 푹 삶아먹은 것보다 많은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까먹으면 안 된다.

데치듯 한쪽으로만 돌려 건져서 얼른 김을 날리라. 살포시 입을 벌리고 화답하리라. 못된 양념 만들어 끼얹지 말고 그냥 까먹으라. 칫솔질을 하고 입을 대충 닦고 밖으로 나가면 입술이 트듯 꼬막을 먹고 나면 방안에서도 어김없이 입술이 텄다.

꼬막 한 접시라고 우습게 보지 말라. 한 개에 술 한잔.
꼬막 한 접시라고 우습게 보지 말라. 한 개에 술 한잔. ⓒ sigoli 고향
빗금이 40줄인 피꼬막, 30줄로 털이 나 있는 새꼬막을 똥꼬막이라도 좋다. 제일로 치는 참꼬막을 빗살이 20개로 선명하고 맛은 천지차이지만 무슨 상관인가. 꼬막부침개도 좋고 꼬막 된장국과 꼬막젓갈은 또 어떨까? 꼬막을 구워먹으면 감질나지.

비싸야 1kg에 시장가격으로 5000원 하니 꼬막 한번 사보자. 다 먹고는 시골집 장독대에 훅 뿌려놓으면 그대들이 많이도 왔다 갔다는 걸 알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 창간을 서두르고 있다. 방문하면 만드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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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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