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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과학적 거짓말에 분노하면서 정치인의 거짓말에는 너그럽게 눈감아 주는가. 사진은 논문 조작과 관련해 대국민사과 성명을 발표하는 황우석 교수.
왜 우리는 과학적 거짓말에 분노하면서 정치인의 거짓말에는 너그럽게 눈감아 주는가. 사진은 논문 조작과 관련해 대국민사과 성명을 발표하는 황우석 교수. ⓒ 오마이뉴스 남소연
황우석 교수의 '거짓말'로 인해 전 세계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을까. 검찰에선 황 교수,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 등 지금까지 조작의 핵심 책임자로 의심받아 온 두 사람이 실무책임자의 자료 조작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보도(<문화일보> 1월 17일자)도 나오고 있지만, 진실이 무엇이든 2004년 논문과 2005년 논문 모두 취소됐으므로 어쨌든 이 상황에서 황 교수가 책임져야 할 '자연적 실수+인위적 실수'에 의한 거짓말의 피해 범위는 만만치가 않다.

그렇더라도 그의 거짓말은 사회적으로 '특별대접'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과학자는 결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우리들의 '편견(?)'이 세계 최첨단의 과학자에 의해 보기 좋게 깨진 데 대한 문화적 충격 때문이라는 면도 있다. 나는 이 진부한 편견은 2005년과 같이 2006년에도 당연히 계속 간직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은 직업상 거짓말을 해도 된다?

하지만 2006년에는 반드시 사라져줬으면 하는 편견이 하나 있다. '정치인은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거짓말을 밥 먹듯 해도 괜찮다'는 편견이다. 혹 이런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같이 한번 고민해 주기 바란다.

'정치인의 거짓말'이 '황우석의 거짓말'에 비해 미디어로부터 혹은 국민들로부터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그 피해 규모가 황 교수의 그것에 비해 보잘 것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비밀스런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5·18과 관련해 "나는 광주에서 개미 새끼 한 마리 죽이지 않았다"는 정호영씨의 뻔한 거짓말처럼 목숨 걸린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금강산 댐 수공을 당하면 서울이 물에 잠긴다"는 거짓말로 잃은 금전적 손실도 황 교수의 연구비에 비해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가 않다. 그런데 '금강산댐의 비밀'이 밝혀진 뒤에도 내 기억엔 '황 교수의 비밀'이 밝혀진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싱겁게 넘어갔다.

정치인의 거짓말에 비해 황 교수의 거짓말에 흥분하는 것은 실제로 입은 피해액보다는 잘하면 있을 것으로 기대한 수십 조 혹은 그 이상의 금전적 가치에 대한 박탈감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런 건 어떤가? 예컨대 70년대 우울했던 어느 날 시커먼 기름 몇 방울 가지고 "우리나라에서도 석유가 나왔다"고 뻥친 박정희의 거짓말. 이런 거짓말은 지금은 기억하고 있는 사람조차 별로 없다는 면에서 역시 대단히 관대하다.

정치인의 말은 진위여부를 가릴 수 없다?

"개정 사학법을 방치해 전교조에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개정 사학법을 방치해 전교조에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 오마이뉴스 권우성
좀 웃기는 걸로 계속해 보자. 가령 "불법대선자금이 이회창 후보의 1/10을 넘으면 대통령 직을 사임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거짓말은 아주 신선했다. 이 거짓말을 믿고 노 대통령의 사임에 대비해 다음 대선에 출마하려고 서두르다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멍청한 누군가가 실제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이가 없더라도 무형의 국민적 피해를 생각하면 이런 웃기는 거짓말도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는 별로 안 웃기는 거다. "개정 사학법을 방치해 전교조에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현재진행형 썰렁한 거짓말(?)은 어떨까? 물론 단순한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과는 달리 사실관계에 추론을 덧붙이는 주장의 경우는 좀 난해한 측면이 있긴 하다.

왜냐하면 '개정 사학법=전교조의 교육수권법'이라는 식의 주장은 박 대표 본인이 정말 그 논리적 결과를 믿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렇게 믿지 않지만 그렇게 주장하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자라면 거짓말쟁이라는 비판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전자라면 '이념병'이라는 진단은 몰라도 거짓말쟁이라는 비판은 불가능하다. 나는 박 대표가 '이념병'이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돈 피해난 거, 그냥 돈 꿈만 풍비박산 난 거, 웃기는 거, 안 웃기는 거 모두 포함해 정리하면 정치인의 경우 그 거짓말에 대한 국민들과 미디어의 관심이 황 교수의 과학적 거짓말에 대한 열정적 관심에 비해 적은 이유는 정치적 거짓말은 그것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도 아니고 그 피해의 규모가 황 교수의 거짓말에 비해 작아서도 아니다.

정치적 거짓말, 상황논리 그리고 염치

이 비밀스런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나치의 괴벨스는 이렇게 풀었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다음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두 믿게 된다." -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교양인, 2006)

괴벨스를 패러디하는 것이 좀 '거시기' 하지만 이렇게 업그레이드시켜 풀면 어떨까?

"거짓말이 들통 났을 때의 변명도 처음에는 부정되고, 다음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두 믿고 싶어 한다."

조금 관대하게 말하자면 정치인의 말이란 언제나 상황에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과학자의 언어와는 다른 점이 있다. 그리고 정치인의 그런 상황 적응논리가 자칫 거짓말로 들릴 요소가 분명히 상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상황논리'란 것도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염치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관대할 수 없는 낯 뜨거운 거짓말이 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분당한 것은 민주당이 '지역주의 부패세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명분이었다. 그 사이 상황이 어떻게 돌변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는 열린우리당 리더들 입에서 민주당은 '평화개혁세력'이므로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산발적으로가 아니라 당 의장 경선의 공개적인 이슈로 나오기 시작한다. 두 주장 중 하나는 논리적 거짓말이다. 상황논리로 정치적 거짓말을 포장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의 거짓말, 올해는 제대로 '대접'하자

'민주당은 지역주의 부패세력'이라며 분당했던 열린우리당에서 '민주당이 평화개혁세력'이므로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주장하며 출마를 선언한 임종석 의원의 기자회견 장면.
'민주당은 지역주의 부패세력'이라며 분당했던 열린우리당에서 '민주당이 평화개혁세력'이므로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주장하며 출마를 선언한 임종석 의원의 기자회견 장면. ⓒ 오마이뉴스 이종호
과학적 거짓말의 좋은 점은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 타협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반면 정치적 거짓말이 나쁜 것은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 타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과학적 거짓말의 좋은 점은 그 말을 언제까지나 진실로 믿고 잘 살아갈 수는 없다는 점이다. 반면 정치적 거짓말이 나쁜 점은 그 말을 언제까지나 진실로 믿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황 교수의 연구실에서 '배반포의 진실'과 '줄기세포의 거짓'이 섞이는 것은 용서가 안 되지만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일본 제국주의 장교 박정희의 진실'과 '민족주의자 박정희의 거짓'이 형용모순적으로 섞여도 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고통 없이 지금껏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이런 건 < PD수첩>이 아무리 떠들어도 꿈쩍도 않는다.

이런 일을 가지고 민족적으로 우울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 국제적으로는 더하다.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거짓말(?)'과 허블의 진실이 섞이는 것은 참을 수 없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보듯 "대통령의 사소한 거짓말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민주주의적 허풍과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거짓말로 학살을 자행하는 부시의 파시즘이 섞여도 그저 행복하기만 한 미국인들도 많다. 이런 건 마이클 무어 감독이 아무리 떠들어도 꿈쩍도 않는다.

2006년에는 제발 이런 웃기지도 않는 정치적 모순이 사라지고 정치적 신뢰라는 게임의 법칙에 도달하기 위한 지루한 과정을 비약적으로 압축 발전시켰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적 거짓말에 절대로 관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정치적 거짓말에 황 교수의 거짓말에 실망한 것의 1/10만큼만이라도 '자연적 실망+인위적 실망'을 하기로 하자. 그렇게만 한다면 언젠가 그 한 맺힌 진짜 줄기세포가 만들어질 때쯤엔 이 땅의 진짜 민주주의도 활짝 꽃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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