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홍보처에서 만드는 <국정 브리핑>(www.news.go.kr)에 들어가면 '박호성의 상식론'이란 칼럼을 만날 수 있다. '서강대 교수'로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 박호성'이 맞다.
'그 박호성'이라면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매체에다 글을 쓰느냐"는 핀잔을 들어도 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박호성'은 '진보 지식인'라는 낱말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인물로 <국정 브리핑>과는 도무지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박호성'은 2004년부터 2005년 12월까지 <국정 브리핑>에 몇 년 전 안식년을 맞아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캐나다에 머물면서 끼적거리던 '고독한 산보자의 몽상'을 기초로 한 여러 칼럼을 연재했고, 그 글을 모아 '새로운 휴머니즘을 위하여'란 부제를 단 <우리시대의 상식론>(랜덤하우스중앙 펴냄)이란 책을 펴냈다.
1월17일 오후 서강대에서 박호성(58·서강대 사회과학대 학장 및 공공정책대학원 원장) 교수를 만나 인터뷰 했다.
팔자에 없는 '국'자 들어간 매체에 칼럼 쓰기
"나는 정치학도로서 참으로 무지몽매했다. 4·15총선에서 민노당의 약진이 던지는 정치적 의미가 무엇인지 간략히 분석해 달라는 원고청탁을 받았음에도, '국정 브리핑'의 정체가 도대체 뭔지 모른 채, 그저 민노당에 눈이 팔려 대뜸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박호성 교수는 자신과 <국정 브리핑>의 관계를 '갓 쓰고 도포 입은 채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느꼈던지 <우리시대의 상식론> 앞에 실은 '책장을 열며'에서 <국정 브리핑>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고백해놓았다.
첫 만남 이후 <국정 브리핑>은 그에게 시간, 분량, 주제 등 모든 것에 '마음대로'라는 조건(?)을 달아 연재를 제의해왔고, 그는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내 삶의 원칙에 충실하며 이 기회를 균형 잡힌 자중자애의 심성을 배워나가는 흔치 않는 수련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세상에 태어나 처음 팔자에도 없는 나라 '국(國)'자가 들어간 매체에 글을 쓰기로 하고 자신의 코를 들이밀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상식적인 소재를 상식적인 글 본새로, 상식적으로 따지고, 상식적으로 풀어쓰려고 했습니다. 나 자신 상식에 미치지 못하는 언행을 일삼은 경우가 허다하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군중보다 한 발짝 앞에 나가면 지도자가 되고, 두 발짝 앞서 가면 방해꾼이 되며, 세 발짝 앞으로 나아가면 미친 사람'으로 의심받는다는 경구를 새기며 책상에 앉아서도, 또한 드러누워서도 읽을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상놈의 이웃사촌화'가 진보입니다"
"황우석 사건도 1995년에 일어났던 삼풍백화점 붕괴의 정신적 버전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붕어빵에 붕어가 없어도 되는 '표리부동'의 정신과 후딱후딱 대충대충 한 건 크게 올리기만 하면 되는 '뻥튀기' 문화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박호성 교수는 '황우석 파동'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한 과학자의 '인위적 실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온갖 부실과 허위가 속속들이 까발려지고 대중과 언론, 그리고 정부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의 총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난 사례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가격 인하'란 구호론 만족하지 못하고 '가격 파괴' 정도는 돼야 눈길을 끕니다. 겉은 점점 요란해지고 속이 점점 비어가는 거죠. 단적인 예가 담벼락에 철심이 박혀있는 한국의 주택이 담벼락이 없는 미국 주택보다 안방 침입이 용이하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담만 넘고 나면 창문과 방문이 허술하기 때문이죠. 반면 미국 주택은 현관문과 창문이 물샐 틈 없이 방비돼 있어 담이 없어도 안방 침입이 용이치 않습니다."
박호성 교수는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식으로 동물적인 포효를 앞세우다가도 불리하다 싶으면 "인간적으로 처리합시다"를 외치는 우리들에게 그 '인간적으로'의 '인간'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에 메스를 가한다. 사회적 문제의 근원은 잘못 이해되고 있는 상식에서 비롯된다며 그러한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건전한 상식의 정립을 통해 가능해질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그는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갈파한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을 밑천 삼고, "미래를 예언하고 싶다면 과거를 공부하라"는 공자의 말을 좇아 우리 사회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점검을 통해 우리 땅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숱한 삶의 다양한 모습을 사회과학적으로 조명하려 했다.
도로 표지판과 식당 안내문의 차이
박호성 교수는 '도로 표지판'과 '식당 안내문'을 통해 공익과 사익의 갈림길을 설명한다.
어떤 곳을 찾아갈 때 도로 표지판에 의지하다보면 낭패 보기 일쑤지만 "오른쪽, 왼쪽, 어느 쪽으로 돌아서 몇m 정도 오면 무슨 식당이 보인다"는 식당안내문을 따라 차를 몰면 거의 틀림이 없다는 것.
"도로 표지판을 만들어 거는 사람은 대부분 그것과 아무런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당 안내판은 그걸 내다 건 사람의 생사를 좌우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국민은 공익과 관련된 일은 무참할 정도로 홀대하지만 사익만은 임전태세 완비 정신으로 하등의 오차도 없이 철두철미하게 추구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렇지만 그는 "설령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해도, 사람이라면 자기의 조카보다는 자기 자식을 더 사랑하며, 자기의 사촌보다는 조카를 더 사랑하고, 모르는 사람보다 사촌을 더 사랑'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지만 마냥 이기주의에만 안주할 수 없으므로 공익을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공익을 위해 박 교수는 관용(tolerance)의 정신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했다. 관용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 및 자기규율을 요구하는, 따라서 사회의 문화적 발전수준이 높은 곳에서 기대할 수 있는 공적이고 개인적인 덕망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를 더불어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애틋한 화해와 격려, 또 이 공동체가 그 뿌리를 드리우고 있는 자연에 대한 숭고한 사랑, 그리고 이러한 인간과 자연을 서로 따스하게 이어주는 푸근한 문화적 공감대를 넓혀나가야 합니다."
신휴머니즘 위한 전통적 진보주의
이 같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박호성 교수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전통적 진보주의를 내세운다.
그래서 그는 헤겔의 변증 철학에서 말하는 '지양'(aufheben)의 의미를 되새겨보자고 했다. 그것은 단순히 '제거하다' '없애다' 정도의 가벼운 의미를 지닌 말이 아니라 '위로 끌어올리며 극복해나간다'고 하는, 보다 심오한 역사적 뜻을 함축한 철학적 개념이란다.
요컨대 '지양'이라 함은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부정적인 요소는 제거해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은 심화·발전시켜야 한다는 역사적 요청을 담고 있는 개념이라는 것.
따라서 전통이란 스스로를 키워나가려 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부인하는 끝없는 진통의 연속. 전통은 이러한 진통을 겪으며 미래에 만개하게 될 꽃망울을 자신의 내면에 동시에 품고 있다는 것. 거목도 처음에는 새싹이었다. 즉 전통이란 뿌리이자 동시에 새싹인 셈이다. 그가 말하는 전통적 진보주의란 바로 전통 속에 내재해 있는 병든 뿌리를 잘라내면서 동시에 새싹을 올곧게 키워 거목으로 성장하도록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이런 전통적 진보주의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신휴머니즘'. 이 신휴머니즘이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조화를 추구하는 삶의 정신을 말한다.
공동체의식, 위계질서 있어야 공존할 수 있어
| | | 박호성 교수는 누구인가 | | | | 6.25동란이 일어나기 바로 한 주일 전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자갈치 시장에서 부산오뎅과 국밥을 얻어먹으며 자란 박호성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정치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2003년 송두율 교수 귀국에 큰 역할을 했던 그는 늘 우리 사회의 핵심과제인 계급과 민족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발언해왔다.
그의 이런 진보적 실천의지는 학술단체협의회, 역사문제연구소, 한국정치연구회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했고 또 <한겨레> 창간 직후에는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1991년에는 의사, 법조인, 예술인, 교수 등 전국의 많은 진보지식인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든 <월간 사회평론>의 편집인을 맡기도 했다.
그가 1991년에 펴낸 <평등론: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맑스주의의 이론과 현실>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평등에 관한 체계적 연구라는 평가를 받아 1996년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또 그는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전망> 등의 학술서와 시론집 <수렁의 정치, 수레바퀴의 정치학> 수상록 <인간적인 것과의 재회> 등을 냈다. | | | | |
박호성 교수는 이론의 상아탑주의를 배격한다고 했다. 대신 이론의 '공설시장화'를 고대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가슴 속에 강단의 사상이 아니라 거리의 사상이 채워지길 바라면서 평소 아카데미즘의 경직성과 폐쇄성을 뛰어넘어 사무치는 형태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박호성 교수는 이 책이 '허드렛 벗'들이 읽어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허드렛 벗'은 내세울 게 있다면 질박한 몸가짐과 투박한 말투밖에 없는 사람들, 보살펴줄 사람이 없는 탓에 스스로 보살필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항상 무릎을 꿇고 엎드려 무거운 짐을 싣고 뜨거운 모랫길을 떠날 채비를 차리고 있어야 하는 '인간낙타'들이다.
하나 더 욕심을 부린다면 주변 동료교수들의 평가처럼 젊은이들, 특히 논술공부를 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의 상식이 도움 되길 기대한다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상놈의 이웃사촌화'가 진보라고 말하는 그는, 서로 평등하게 어울릴 수 있도록 개인의 해방과 해방된 개인 상호간의 인간적 결속을 지향하면서 '새로운 십계명'을 제시했다
"부드러워도 나약하지 않고, 굳세어도 사납지는 않으며, 너그러워도 어리석지는 않고, 신중하되 느슨하지는 않으며, 무심한 것 같지만 냉담하지는 않고, 솔직하지만 거칠지는 않으며, 명랑하지만 들떠 있지는 않고, 잠자코 있지만 어두운 기색은 없으며, 의연하지만 각박하지는 않고, 품위를 지키되 우쭐대지는 않는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甘呑苦吐) 식으로만 살아갈 것이 아니라 '써도 삼키고, 달아도 내뱉은 수 있'어야 하는 역설도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는 "원칙 없는 타협은 야합이고, 타협 없는 원칙은 독선"이라는 좌우명에 충실하고자 애쓴다는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끝냈고, 내가 내민 책에 이런 글귀를 담아 사인을 해주었다.
"봄바람처럼 따스하게 남을 사랑하옵고, 가을물처럼 서늘하게 자신을 다스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