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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쯤 지나서인가 봅니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우유와 빵도 제법 먹어 치웠습니다. 아마도 우리 집에 적응이 된 듯했습니다. 마음이 놓였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 갈등 아닌 갈등을 했습니다. 계속 저렇게 낑낑거리고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제 엄마에게 도로 갖다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말입니다.
그때쯤 강아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딸아이와 친정 부모님과 남편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 복길이로 결정이 났습니다. 딸아이 이름이 복희이다 보니 식구들 모두 '복'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제일 좋겠다고 은연 중에 생각한 듯했습니다. 그때부터 복길이는 우리 집 식구로서 당당하게 제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 어머니가 복길이를 데리고 오실 때는 마당에서 키울 심산이셨습니다. 하지만 이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라 복길이를 밖에다 내놓기가 영 안쓰러웠습니다. 결국 복길이는 거실 한쪽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작은 박스에서 지냈던 복길이에게 새 집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 복길이 털만큼이나 부드럽고 따스한 작은 담요로 복길이 이불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복길이의 개구쟁이 짓에 하루 해가 짧았습니다. 소변과 대변을 가리지 못하던 복길이는 아무 데나 실례를 하고 다녔습니다. 하루 종일 걸레를 들고 따라다녀야 했습니다. 또 걸레를 삶아 빨아 짧은 가을볕에 말리는 일도 여간 아니었습니다. 대소변 가리는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역시 복길이는 영특했습니다. 훈련시킨 지 일주일쯤 지나자 복길이는 기특하게도 깔아놓은 신문에다 소변과 대변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복길이가 이가 나기 시작할 때쯤이었습니다. 잇몸이 가려운지 입 닿는 것마다 마구 물어뜯고 다녔습니다. 장판, 벽지, 소파 등등. 누가 술래인지도 모르는 복길이와 저의 숨바꼭질은 하루 온종일 계속 됐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했습니다.
온갖 개구쟁이 짓에 하루 종일 복길이 꽁무니를 따라 다니느라 피곤하기도 하련만 좀체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길이는 밋밋한 제 일상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내 고요한 일상을 그리 휘저어 놓는데도 전혀 밉지가 않았습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지 몰라도 복길이를 대하는 마음이 더도 덜도 말고 꼭 갓난아기 대하는 마음 같았습니다. 말간 눈동자로 무심하게 저를 바라볼 땐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과자를 먹고 있는 딸아이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복길이를 볼라치면 '얼마나 먹고 싶을까' 싶어 한 주먹 나눠줘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외출할 일이 생기면 복길이 생각에 마음부터 짠해졌습니다. 혼자 남겨져 얼마나 외롭고 심심할까 싶어 서둘러 집을 향하는 저를 발견할 땐 빙그레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도 마당에 발을 들여 놓기가 무섭게 복길이를 불러댔습니다.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다보면 기척을 알아챈 복길이가 미리 안에서 '낑낑' 댔고 문을 열라치면 와락 안겨들어 꼬리를 흔들어대며 저를 반겼습니다. 친정어머니께서 복길이에게 유난히 마음을 쓰는 제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렇게 깔끔을 떨어대는 네가 어떻게 집안에서 개를 다 키워? 참, 천지개벽할 일이다. 암. 천지개벽할 일이고 말고."
그런데 막상 복길이와 생활해보니 깔끔 떠는 거 하고 개하고는 전혀 상관 없었습니다. 그건 복길이를 우리 식구라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복길이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걸레질을 하게 되고 환기도 더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집안은 더 깨끗해지고 상쾌해졌습니다. 복길이가 저를 더 부지런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참 고마운 녀석입니다.
복길이는 이제 우리 집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녀석입니다. 딸아이도 남편도 집으로 들어설 때면 언제나 복길이부터 찾습니다. 그들의 귀가를 꼬리를 흔들어대며 반갑게 맞아주니 어찌 예쁘지 않겠습니까. 저녁시간. 딸아이가 던진 공을 날렵하게 물어다 제 앞에 갖다 놓을 때는 재롱둥이로, 남편 곁에 바투 다가앉아 함께 TV를 볼 때는 귀염둥이로 식구들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복길이와 생활하기 전 저는 그랬습니다. 동물은 동물일 뿐이지 사람과 같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의 잘못된 편견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물이건 사람이건 서로가 마음을 교류하는 데 있어서는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복길이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녀석의 맑고 까만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도 같고 또 한없이 착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아마도 녀석은 사람을 너그러워지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듯 합니다.
요 며칠 겨울햇살이 너무 따스하여 복길이에게 햇볕구경을 시켜줄 요량으로 마당으로 자주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당으로 내려서기가 무섭게 제 품을 빠져 나간 복길이가 온 마당을 돌아다니며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구는 모습에 어찌나 웃었던지 나중엔 옆구리까지 결릴 지경이었습니다.
어제는 복길이집을 보러 철물점에 다녀왔습니다. 초록색 벽에 빨간 지붕이 예쁜 집 하나를 눈독들이고 왔습니다. 이제 따스한 봄이 오면 복길이를 마당에 내놓을 생각입니다. 우리 집에 온 지 석 달. 이제 복길이는 강아지가 아닌 어엿한 개가 되었습니다. 집안에서 식구들의 재롱둥이로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복길이가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봄을 향한 기다림에 조급증이 생깁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따스한 햇살, 또 향긋한 꽃향기를 복길이에게 빨리 선물하고 싶습니다. 복길이의 눈에 비친 세상의 봄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까만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며 세상구경에 신바람이 날 우리 복길이. 봄이 어디쯤 왔는지 복길이와 봄마중이라도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