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줄 알았다.
지난 2002년 대한주택공사가 강제 토지 수용권을 앞세워 경기도 고양시 풍동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내쫓았을 때' 이들은 싸움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주공이 가옥주 305가구 가운데 1주택인 224가구에게 27평과 33평 아파트를 주겠다고 했는데, 분양 금액이 일반 분양자들과 같은 2억 900만원(33층 기준층 기준)이었어요. 주공이 준 보상금으로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했어요. 집 강제로 빼앗고, 그 대가로 아파트 분양권 주면서 2억 900만원에 들어가라니 말이 됩니까?"
풍동 특별공급 아파트 원주민 대책위(이하 원주민 대책위) 한상록(49)위원장의 설명이다. 원주민 대책위는 토지보상법 제78조 4항을 근거로 주공에 "원주민들에게 원가로 주택을 공급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주공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원주민 대책위는 싸우다 싸우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를 찾았다.
그 결과 2004년 2월 23일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풍동 개발사업으로 생활의 근거지를 상실하게 된 원주민들에게 이주 대책 시행에 필요한 생활기본시설비 등을 공제한 가액 이하(원가 이하)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주택공사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의결 내용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마저도 거부했다.
결국 원주민 대책위 101명은 지난 2004년 8월 주공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냈다. 1년 5개월의 기다림 끝에 결국 원주민 대책위는 주공에 맞서 소송에서 승리했다.
지난 18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제2민사부(장진훈 부장판사)는 원주민 대책위 101명이 "이주대책으로 특별 분양권만을 부여하고 분양대금을 일반 분양자와 동일하게 정한 것은 부당하다"면서 주공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가 원고들과 분양계약을 체결하면서 분양대금을 일반인들과 동일하게 정한 것은 이주민에게 종전 생활을 회복시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게 하는 법 취지에 위반하는 내용"이라면서 "토지 매입원가와 택지조성비, 건축비 등 원가를 초과한 분양대금 채무는 원고에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1가구당 건설원가 이상인 1억 5000만원에 대해서는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주택공사는 150억원의 돈을 떠 안게 된 셈이다.
풍동 33평 아파트 원가는 5440만원?
재판부는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분양원가 문제와 관련해서 중요한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주공)가 건설원가를 공개하지 않아 원고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서도 "원고들이 피고에게 갚아야 할 미지급 분양금액은 각각 계약서상 분양금액(1억 9800만~2억 1100만원) 중 원가에서 기 지급금 500만원을 뺀 4800만~5440만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원주민 대책위가 주공 토지 보상가와 도급 계약서 등을 토대로 작성한 풍동 아파트 원가는 33평의 경우 5440만원(토지 매입원가와 택지조성비, 건축비 포함)이면 된다는 것이다. 평당가로 환산하면 164만원에 불과한 금액이다.
원주민에게 아파트를 공급할 경우 아파트 원가만을 적용해야 한다는 이번 판결은 강제 수용으로 인해 주거권을 침해당했던 원주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33평 아파트 원가가 544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분양원가 공개 여론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7월 1일 경기도 고양시 풍동 주공아파트계약자대표회의(위원장 민왕기, 이하 계약자 대표회의)가 주택공사를 상대로 지난 2004년 5월 "아파트 분양원가 산출 근거를 공개하라"며 낸 행정정보 공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번 판결과 관련 주공 관계자는 "판결문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판결문을 보고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승소한 원주민 대책위 한상록 위원장은 "주공이라는 골리앗과 싸우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어려웠지만, 억울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면서 "철거민들의 생존권 요구가 평가받게 돼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