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은 24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둘러싼 굴곡에 대한 일화를 몇 가지 소개했다.
정 고문은 우선 지난 2002년 대선 전날 노 대통령 후보의 '종로 발언', 즉 '민주당에 추미애·정동영 같은 인물도 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머리가 띵했다, 막판의 재앙을 내가 제공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노 대통령과의 '코드'를 묻는 질문에 정 고문은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생각이 일치한다"면서도 견해차로 인해 통일부 장관직에서 중도하차할 뻔했던 비화를 소개했다. 작년 2월 북한의 '핵보유 선언'이 발표 난 직후 대통령과 조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선회가 필요하다"면서 이종석 당시 NSC 사무차장의 사표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에 정 장관은 "(대북 정책) 전체를 바꾸는 책임자는 접니다"라면서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이에 노 대통령이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자'고 했고, 그 때 마련된 것이 '200만 킬로와트 대북 송전계획'이었다고 한다. 이 때의 위기를 넘긴 것이 이후 방북특사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는 것에 이르렀다는 것.
다음은 일문일답.
- 2002년 대선 전날 '종로 발언'(정동영도 있고 추미애도 있습니다)을 듣고 기분이 어땠나. 결국 이 말이 사단이 돼 후보단일화가 깨졌는데 불안하지 않았나.
"내가 없는 현장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내가 촉발을 했다. 연설로 '낡은 정치를 깨야 한다. 낡은 정치는 돈이 있고, 지역이 있고, 또 하나 기회주의 정치였다'면서 '기회주의' 청산을 이야기했다. 이에 정몽준 캠프의 김민석 전 의원이 열 받았다. 그때 나는 다른 데 갔다."
- 얘기를 전해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마지막 유세 피날레를 동대문에서 했는데 그곳서 종로발언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머리가 '띵'했다. 막판의 재앙 아니냐. 그 책임을 내가 제공했다고 생각하니까…. 당사 앞으로 달려왔는데, 그 앞에서 올라갈 수 없었다. 15분 정도 당사 앞 차 속에 앉아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 솔직이 기분이 좋지 않았나.
"정권이 뒤집어 지는데 무슨…. 그 순간은 모든 비난이 나에게 쏠릴 것을 생각하면서 너무 많은 압박을 느꼈다. 지구의 무게로 나를 압박하는 것 같았다. 기도를 했다. '저에게 왜 이렇게 시련을 주느냐, 열심히 한 죄밖에 없는데…'라고."
- 한편으론 노 대통령이 '은혜'를 베푼 것 아닌가.
"일이 잘 돼서 그렇지, 일이 잘 안됐으면 온 국민의 원망을 받았겠지."
"김 전 대통령의 남북관계 철학과 노 대통령의 철학을 내가 접목"
- 노 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나.
"남북 관계에 있어서 이 정부, 대통령의 철학과 방향에 대해서 공감한다. 내가 갖고 있는 생각과 일치한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북 관계 철학과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 철학을 내가 접목시켰다. 남북관계에서 충돌은 없었다. 김 전 대통령의 설명도 듣고, 충고도 반영하면서 접점에서 설명했다."
- 지난 1년 6개월 정부에 있는 동안 김근태 전 장관과 달리 노 대통령과 거의 갈등이 없었다.
"지난해 2월인가, 북측이 핵보유 선언을 하고 (대통령과) 아침 조찬이 있었다. 이 때 방향을 선회했다. '이젠 전면적인 재검토와 선회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남북 관계를 '병행 발전론'에서, '연계론'으로 가는 정책을 전반적으로 리뷰하자는 대통령의 말씀이 있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이) 이종석 NSC 사무차장(현 통일부 장관 내정자)에게 사표를 이야기했다. 정책 노선을 전면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전체를 바꾸자는 책임자는 접니다'라면서 내가 사의를 표명했다.
그 다음날 대통령이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자'고 했고, 그때 마련된 것이 '200만 킬로와트 대북 송전계획'이었다. 이것을 갖고 2, 3, 4월에 북에 편지도 보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 어쨌든 작년 6월에 특사로 김정일 위원장과의 소통한 것이 대단히 중요했다고 본다."
- 6자회담 재개 등 남북관계 성과가 있었지만 그 뒤 대통령의 '대연정' 발언 등에 묻혔다.
"그래서 정치에 있어서는, 정책도 마찬가지인데 내용이 중요하고 타이밍, 수순이 중요하다. 그게 엉킨 것이 안타깝다."
- 정 전 장관의 실적에 비해 참여정부가 소위 '장사를 못해' 서운한 것은 없나.
"대통령도 당과의 관계 속에서, 당이 제 발로 살아가는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정부의 당'이 아니라 '당의 정부'가 아니냐. 적어도 당이 한나라당은 상대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청와대를 상대하지 않는가. 대통령은 대통령의 아젠다를 중심으로 가는 것이고, 현실 정치, 즉 여의도 정치에서 한나라당의 상대는 열린우리당의 몫이다. 열린우리당이 제대로 못해냈다."